‘개저씨’ ‘눈먼 돈’ 여전…차별·자살 보도 반복…언론 윤리 기준, 왜 작동하지 않나

지난해 언론중재위원회 시정권고 1049건 가운데 차별 표현과 자살 관련 보도가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규정은 존재하지만 실제 기사 작성 과정에서는 반복적으로 위반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언론중재위원회에 따르면 2025년 시정권고 건수는 총 1049건이다. 이 가운데 차별 금지 위반이 240건으로 22.9%를 차지했고, 자살 관련 보도는 226건으로 24.0%에 달했다. 두 유형이 전체 시정권고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한 셈이다.
매체별로 보면 인터넷신문 비중이 압도적이다. 전체 1049건 가운데 931건(88.8%)이 인터넷신문에서 발생했다. 중앙·지방 일간지는 67건(6.3%), 뉴스통신은 48건(4.6%)에 그쳤다. 시정권고 대부분이 온라인 매체에 집중된 구조다.
차별 표현 유형도 구체적으로 확인된다. 제목과 본문에서 ‘눈먼 돈’, ‘절름발이’, ‘벙어리 냉가슴’과 같은 장애 관련 표현이 반복적으로 사용됐다. ‘개저씨’, ‘된장녀’, ‘딸배’ 등 특정 성별이나 직업군을 낮춰 부르는 표현도 포함됐다. 특정 국가를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문장 역시 시정권고 대상에 포함됐다.
자살 보도에서는 기준 위반 사례가 지속됐다. 사망자의 신상을 공개하거나, 자살 장소와 방법을 구체적으로 묘사한 기사, 자살을 미화하는 표현을 사용한 보도가 다수 확인됐다. 이는 보건복지부와 언론단체가 제시한 자살보도 권고 기준과 배치되는 내용이다.
이 같은 결과는 특정 시기의 문제가 아니다. 언론중재위원회는 2024년과 2025년 모두에서 차별 표현과 자살 보도 관련 시정권고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반복적으로 문제가 발생하는 영역이라는 의미다.
문제는 규정 부재가 아니다. 국내 언론은 이미 윤리 기준을 갖고 있다. 한국기자협회 윤리강령과 언론중재위원회 심의 기준, 자살보도 권고안 등 기본 원칙은 비교적 명확하다. 차별 표현 금지, 신상 보호, 자극적 묘사 제한 등이 포함돼 있다.
그럼에도 위반이 반복되는 이유는 기사 생산 환경과 연결된다. 인터넷신문 중심 구조에서 기사 생산 속도가 빠르게 증가했다. 소수 인력이 하루 수십 건의 기사를 처리하는 경우도 많다. 이 과정에서 표현 검증이 후순위로 밀리는 경우가 발생한다.
포털 중심 유통 구조도 영향을 미친다. 기사 제목이 노출과 클릭으로 직결되는 환경에서 자극적인 표현을 사용할 유인이 커진다. 단기 트래픽 확보를 위해 강한 표현을 선택하는 방식이 반복된다.
윤리 기준의 성격도 한계로 지적된다. 대부분 권고 수준에 머물러 있어 강제력이 제한적이다. 시정권고는 사후 조치다. 이미 기사가 확산된 이후 내려지는 경우가 많다. 반복 위반에 대한 실질적 제재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사생활 침해와 기사형 광고 문제도 같은 맥락에서 나타난다. 지난해 사생활 침해 관련 시정권고는 182건, 기사형 광고는 135건으로 집계됐다. 개인 정보 보호와 광고 구분 문제 역시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영역이다.
결국 문제는 단어 선택이 아니라 제작 구조에 있다. 기사 생산 속도, 유통 환경, 평가 방식이 결합되면서 윤리 기준 적용이 약화되는 상황이다. 규정을 강화하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이유다.
해외와 비교하면 접근 방식 차이가 드러난다. 일부 국가는 자살 보도 기준을 사실상 의무 규정에 가깝게 운영하거나, 언론사 내부 심의 절차를 강화해 사전 검증을 진행한다. 반면 국내는 자율 규제 중심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향후 과제는 명확하다. 기존 기준을 추가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적용 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기사 작성 단계에서의 검토, 제목 작성 기준, 편집 과정의 윤리 점검이 함께 작동해야 한다.
언론중재위원회는 올해도 차별 표현과 자살 보도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할 계획이다. 다만 사후 대응 중심 체계로는 한계가 있다는 점에서 사전 예방 중심으로의 전환 필요성도 함께 제기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