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학생 늘어나는데 지원 조례는 ‘선언’에 그쳐…“교육감 책임 명확히 해야”
다문화 학생이 학교 현장에서 꾸준히 늘고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 시·도교육청 차원의 제도적 기반은 여전히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특히 다문화교육을 안정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교육감의 책무를 선언적 수준에 머물게 할 것이 아니라, 정책 수립과 예산 확보, 지원체계 운영을 의무화하는 방향으로 조례를 개정해야 한다는 제안이 제기됐다.

6일 국회입법조사처 학술지 ‘입법과 정책’ 제18권 1호에 실린 ‘교육청 다문화교육 진흥 조례 비교 연구’에 따르면, 연구진은 전국 15개 시·도교육청의 다문화교육 관련 조례를 비교·분석했다. 분석 대상은 강원, 경기, 경남, 경북, 대구, 대전, 부산, 서울, 세종, 울산, 인천, 전남, 전북, 충남, 충북교육청이다.
연구진은 각 교육청 조례를 대상으로 조례의 목적성, 교육감 책무 수준, 적용 대상 범위, 지원 내용의 포괄성, 재정 책임, 전달체계의 통합성과 책임성, 전문 인력 확보 여부 등을 살폈다. 단순히 조례가 존재하는지를 넘어 실제 현장에서 작동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 있는지를 검토한 것이다.
분석 결과, 일부 지역의 조례는 다문화교육 정책 수립의 근거부터 충분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강원·서울·충북교육청 조례에는 다문화교육 정책 수립과 관련한 명시적 규정이 없었다. 대전 등 일부 지역의 경우에도 교육감이 정책 마련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수준에 그쳐, 실질적인 행정 책임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평가가 나왔다.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된 부분은 교육감의 책무가 구체적 의무가 아니라 추상적 선언에 머물고 있다는 점이다. 다문화교육은 학생 개인에 대한 학습 지원을 넘어 언어, 문화, 정서, 진로, 학교 적응까지 복합적으로 다뤄야 하는 영역이다. 그럼에도 상당수 조례가 교육감에게 명확한 실행 의무를 부여하지 않아 지역별 정책 추진력과 지원 수준에 차이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다문화교육지원센터 관련 규정도 한계를 드러냈다. 분석 대상 15개 교육청 조례는 모두 센터를 설치·운영할 수 있다는 조항을 두고 있었지만, 대부분 임의 규정에 그쳤다. 센터 설치와 운영을 교육청의 필수 책무로 규정하지 않다 보니, 지역 상황이나 행정 의지에 따라 지원체계의 안정성이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현장 전문성 확보 장치도 충분하지 않았다. 특히 강원은 15개 시·도교육청 가운데 유일하게 교직원 연수 규정이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다문화교육이 실제 학교에서 효과를 내려면 교사와 학교 구성원이 다문화 학생의 언어적·문화적 배경을 이해하고, 차별과 편견을 줄이는 교육 역량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연수 규정이 조례에 명시돼 있지 않으면 전문성 강화가 일회성 사업에 그치거나 학교별 편차로 이어질 수 있다.
외부 전문가 참여와 관련한 조항도 일부 지역에서 미흡했다. 경북과 울산은 외부위원 위촉에 관한 규정이 없어, 정책 수립 과정에서 이주배경 학생 지원 전문가나 현장 활동가, 학부모, 지역사회 기관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다문화교육이 학교 안의 문제에 그치지 않고 지역사회 복지, 상담, 통번역, 가족 지원과도 연결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외부 전문 인력과의 협력 체계는 정책 실효성을 높이는 핵심 요소로 꼽힌다.
보고서는 다문화교육 조례가 단순한 방향 제시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조례의 목적은 다문화 학생에게 교육 기회를 보장하고, 학교 공동체 안에서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존중하는 기반을 마련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해서는 교육감이 지원 계획을 수립하고, 필요한 예산을 확보하며, 전담 조직과 센터 운영을 책임지도록 하는 강행 규정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지원 대상 확대도 과제로 제시됐다. 현재 조례가 재학생 중심으로 설계돼 있을 경우, 입학을 앞둔 다문화 배경 아동이나 중도입국 학생에 대한 사전 지원이 부족해질 수 있다. 보고서는 입학 예정 학생까지 지원 대상에 포함해 학교 진입 전 단계부터 언어와 적응 지원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봤다. 이는 학교 적응 실패나 학습 격차를 사전에 줄이는 예방적 접근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사업 범위 역시 보다 폭넓게 운영해야 한다는 제안이 나왔다. 다문화교육은 한국어 교육이나 문화 체험 프로그램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학습 지원, 심리·정서 상담, 진로 교육, 학부모 지원, 교직원 연수, 또래 학생 대상 상호문화 이해 교육까지 종합적으로 설계돼야 한다. 특히 다문화 학생만을 별도로 지원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모든 학생이 다양성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학교 문화를 만드는 방향으로 확장될 필요가 있다.
중앙 차원의 지원체계와 지역 교육청의 연계 강화도 중요하게 다뤄졌다. 보고서는 교육부 산하 중앙다문화교육지원센터와 각 시·도교육청 다문화교육지원센터 간 협력을 강화해 사업의 중복을 줄이고, 우수 사례와 전문 인력을 공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지역별 여건이 다른 만큼 자율성은 보장하되, 최소한의 지원 기준과 운영 책임은 제도적으로 분명히 해야 한다는 취지다.
이번 연구는 다문화교육 정책의 핵심 과제가 ‘조례 유무’가 아니라 ‘조례의 실행력’에 있음을 보여준다. 관련 조례가 마련돼 있더라도 교육감의 책임, 예산 근거, 센터 운영, 전문 인력 확보, 교직원 연수 등이 구체적으로 담기지 않으면 현장 지원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
다문화 학생 증가와 함께 학교 현장의 다양성은 이미 일상적인 교육 과제가 됐다. 이제 필요한 것은 일회성 프로그램이나 선언적 지원이 아니라, 지역 교육청이 책임 있게 작동시키는 안정적인 제도 기반이다. 보고서가 제안한 조례 개정 논의는 다문화 학생을 위한 별도 지원을 넘어, 모든 학생이 차별 없이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교육 환경을 만드는 출발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