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가쁜 마지막 말도 유언이었다”…대법, 산소호흡기 환자 구수증서 유언 인정

폐암 말기 환자가 산소호흡기를 착용한 채 남긴 마지막 유언을 두고 벌어진 예금 지급 소송에서 대법원이 유언의 효력을 다시 판단하라는 취지로 사건을 하급심에 돌려보냈다. 환자가 스스로 글을 쓰거나 또렷한 음성으로 녹음 유언을 남기기 어려웠다면, 말로 유언 취지를 전하고 이를 받아 적는 ‘구수증서 유언’도 유효하게 볼 수 있다는 판단이다.
대법원 2부는 A씨가 우리은행을 상대로 제기한 예금 청구 소송에서 A씨 패소로 판단한 항소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환송했다. 사건의 핵심은 고인이 사망 직전 남긴 유언이 민법상 예외적 방식인 구수증서 유언의 요건을 충족했는지였다.
고인은 2021년 4월 폐암으로 입원 치료를 받던 중 이부형제인 A씨에게 자신의 예금채권과 전세보증금 반환채권 등 재산을 넘기겠다는 취지의 유언을 남겼다. 당시 현장에서는 변호사 등이 참여해 유언 과정을 영상으로 남겼고, 고인이 말한 내용을 A씨가 문서로 정리한 것으로 전해졌다. 고인은 유언 뒤 사흘 만에 숨졌다.
이후 A씨는 고인의 예금 약 9600만원을 지급해 달라고 은행에 요구했지만, 은행은 유언의 효력에 의문을 제기하며 지급을 거부했다. 이에 A씨는 2022년 소송을 냈다.
1·2심의 판단은 엄격했다. 항소심은 고인이 당시 자신의 재산 상황과 유언의 의미, 재산을 받을 사람을 인식하고 있었고 일정한 의사표현도 가능했던 만큼, 녹음 방식의 유언이 불가능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구수증서 유언은 일반적인 유언 방식이 어려운 급박한 경우에만 허용되는 예외적 절차라는 이유에서다.
민법은 구수증서 유언을 질병이나 그 밖의 급박한 사유로 자필증서·녹음·공정증서·비밀증서 방식의 유언을 할 수 없는 경우에 허용한다. 유언자는 2명 이상의 증인이 참여한 상태에서 유언의 취지를 말해야 하고, 이를 들은 사람이 받아 적어 낭독한 뒤 유언자와 증인이 정확성을 승인하고 서명 또는 기명날인해야 한다. 또 이런 방식의 유언은 급박한 사유가 끝난 날부터 7일 안에 법원 검인을 신청해야 한다.
그러나 대법원은 하급심이 고인의 신체 상태와 의사표현 가능성을 지나치게 좁게 판단했다고 봤다. 대법원은 고인이 호흡곤란으로 산소호흡기를 착용하고 있었고, 발음과 지속적인 발화에 상당한 제약이 있었던 점에 주목했다. 이런 상태에서는 고인이 혼자서 유언 내용을 직접 작성하거나, 녹음 유언에 필요한 성명·날짜·유언 취지를 주도적으로 또렷하게 말하기가 쉽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번 판단은 구수증서 유언의 예외성을 유지하면서도, 말기 환자나 중증 환자의 현실적인 의사표현 한계를 고려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법원은 그동안 유언 방식의 엄격성을 강조해 왔다. 유언은 사망 뒤 효력이 발생하기 때문에 본인의 진정한 의사인지 사후에 확인하기 어렵고, 상속인 사이의 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공정증서 유언에서도 유언자가 유언 취지를 말로 전달하는 ‘구수’ 요건은 엄격하게 해석돼야 한다는 판례가 유지돼 왔다.
다만 대법원은 형식 요건을 완화한 것은 아니다. 이번 판결은 단순히 “말로 했으니 유언이 된다”는 취지가 아니라, 환자의 질병 상태와 산소호흡기 착용, 발음 장애, 지속적 발화 곤란 등 구체적 사정을 종합하면 다른 방식의 유언을 기대하기 어려웠다고 본 것이다. 결국 구수증서 유언의 보충성, 즉 다른 유언 방식이 어려울 때만 허용된다는 원칙은 유지하되, 그 판단은 의료 현장의 실제 상황을 반영해야 한다는 메시지로 읽힌다.
환송심에서는 대법원이 제시한 기준에 따라 고인의 유언 당시 상태, 증인 참여와 필기·낭독·승인 절차, 검인 신청 등 나머지 요건이 다시 심리될 전망이다. 이번 사건은 고령화와 1인 가구 증가로 임종 직전 재산 처분 의사를 둘러싼 분쟁이 늘어나는 가운데, 위중한 환자의 마지막 의사표시를 법적으로 어디까지 보호할 것인지에 대한 중요한 기준을 제시한 판결로 평가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