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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어린이도 시민,보호의 대상에서 권리의 주체로

어린이날을 하루앞둔 4일 한쇼핑몰에서 어린이날 이벤트가 진행중이다 [C]파르트

어린이날이 되면 어른들은 아이에게 무엇을 해줄지 묻는다. 어디에 데려갈지, 무엇을 사줄지, 어떤 추억을 만들어줄지 고민한다. 거리에는 행사 안내가 붙고, 상점에는 선물이 진열되며, 가족 단위 나들이객이 공원과 놀이시설을 채운다. 모두가 어린이를 위한다고 말하는 날이다. 그러나 정작 그날의 주인공인 어린이에게 우리는 얼마나 자주 묻고 있을까.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이 힘든지,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 어떤 하루를 보내고 싶은지 말이다.

어린이날의 의미는 아이를 잠시 즐겁게 해주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더 근본적인 질문은 어린이를 어떤 존재로 바라보느냐다. 우리 사회는 어린이를 사랑하고 보호해야 한다고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어린이는 폭력과 방임, 차별과 위험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 그러나 보호라는 말이 언제나 존중을 뜻하지는 않는다. 때로 보호는 통제의 다른 이름이 된다. 아이를 위한다는 이유로 아이의 말을 끊고, 아이의 감정을 가볍게 여기고, 아이의 선택을 대신 결정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어린이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어른이 아니다. ‘나중에 시민이 될 존재’도 아니다. 어린이는 지금 이 순간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한 사람이다. 몸은 작고 경험은 적을 수 있지만, 기쁨과 불안, 자존심과 수치심, 바람과 의견을 가진 독립된 인격이다. 아이에게도 말할 권리가 있고, 쉬고 놀 권리가 있으며, 거절할 권리와 안전하게 자랄 권리가 있다. 어린이를 존중한다는 것은 아이가 원하는 모든 것을 들어준다는 뜻이 아니다. 아이의 말을 들을 가치가 있는 말로 대하고, 아이의 감정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며, 아이가 자기 삶의 일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일이다.

현실은 그 반대일 때가 많다. 가정에서는 “어른 말 들어야지”라는 말이 너무 쉽게 나온다. 학교에서는 규칙과 성적이 아이의 개별성보다 앞선다. 사회는 아이를 귀엽다고 말하면서도 공공장소에서 아이의 울음과 움직임을 불편해한다. 정책은 어린이를 위한다는 이름으로 만들어지지만, 그 과정에서 어린이의 목소리는 자주 빠진다. 아이를 위한 공간을 만들면서 아이에게 묻지 않고, 아이를 위한 제도를 설계하면서 아이의 경험을 듣지 않는다면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배려가 아니다.

어른들은 종종 아이가 아직 어려서 모른다고 말한다. 그러나 아이가 모든 것을 다 알 필요는 없다. 어른도 모든 것을 알고 결정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아이가 자기 방식으로 느끼고 생각한다는 사실이다. 아이의 말이 서툴다고 해서 그 마음까지 미숙한 것은 아니다. 아이의 표현이 짧다고 해서 그 고통이 작은 것도 아니다. 우리는 아이의 언어를 어른의 기준으로 평가하기보다, 아이가 말할 수 있는 방식으로 말하도록 도와야 한다.

어린이날은 선물을 주는 날이기 전에 태도를 바꾸는 날이어야 한다. 아이에게 무엇을 사줄지 고민하기 전에, 아이의 말을 얼마나 들었는지 돌아봐야 한다. 아이가 조용하고 말을 잘 들을 때만 예뻐한 것은 아닌지, 아이의 반항을 모두 버릇없음으로만 해석한 것은 아닌지, 아이의 피로를 게으름으로, 아이의 불안을 예민함으로 넘겨버린 것은 아닌지 생각해야 한다.

어린이를 시민으로 대한다는 것은 거창한 선언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식당 메뉴를 고를 때 아이의 의견을 묻는 일, 가족 일정에 아이의 피로를 반영하는 일, 학교와 지역사회가 어린이의 안전과 놀이를 우선순위에 두는 일, 어린이 관련 정책에 실제 어린이의 목소리를 듣는 절차를 마련하는 일에서 시작된다. 아이에게 “네 생각은 어때?”라고 묻는 순간, 어린이는 자신이 존중받는 존재라는 것을 배운다. 그리고 그런 경험을 한 아이가 다른 사람의 권리도 존중하는 시민으로 자란다.

어린이날의 주인공은 어린이다. 그러나 그 의미를 완성해야 할 책임은 어른에게 있다. 어린이를 사랑한다는 말은 쉽다. 어린이를 존중하는 일은 훨씬 어렵다. 사랑은 때로 일방적일 수 있지만, 존중은 반드시 상대의 목소리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올해 어린이날에는 아이에게 선물과 함께 질문을 건네면 좋겠다. 오늘 무엇을 하고 싶은지, 요즘 무엇이 힘든지, 어떤 어른이 곁에 있으면 좋겠는지. 그리고 아이가 대답할 때 서둘러 고치거나 가르치려 하지 말고 끝까지 들어보면 좋겠다.

어린이는 미래의 주인공이 아니다. 이미 오늘을 살아가는 시민이다. 어린이날이 진정 어린이를 위한 날이 되려면, 우리는 아이를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만 보던 시선에서 벗어나야 한다. 아이를 한 사람으로 인정하는 일, 그것이 어린이날이 우리에게 남기는 가장 오래된 약속이자 가장 새로운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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