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전시

사라지는 것으로 말하는 예술…국립현대미술관 ‘소멸의 시학’展

고사리의 ‘초사람’.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작품의 변화와 해체, 그리고 사라짐 자체를 예술의 일부로 바라보는 전시를 선보이고 있다. 오는 5월 3일까지 열리는 **‘소멸의 시학: 삭는 미술에 대하여’**는 시간이 흐르며 분해되고 변형되는 작업들을 통해 동시대 미술이 환경과 생태, 공동체를 어떻게 사유하는지 보여준다.

이번 전시는 형태를 고정된 것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작품이 닳고, 썩고, 무너지고, 다른 상태로 바뀌는 과정을 전면에 내세운다. 미술관은 이러한 작업들을 ‘삭는 미술’이라는 이름 아래 묶어 소개하며, 인간 활동이 지구 환경에 끼친 영향이 커진 시대에 예술이 어떤 방식으로 반응하고 있는지를 탐색한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흙을 매개로 한 작업이 관람객을 맞는다. 미국 작가 아사드 라자는 서울에서 수집한 폐기물을 활용해 새로운 토양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선보인다. 시민 참여자들이 직접 흙을 일구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이 작업은, 버려진 물질이 다시 생명력을 얻는 과정을 보여주는 동시에 공동체의 기억과 순환의 의미를 환기한다. 관람객이 원하면 이 흙을 조금씩 가져갈 수 있도록 한 점도 인상적이다.

전시에 참여한 다른 작가들 역시 변화와 소멸을 하나의 표현 방식으로 삼는다. 연기와 향, 썩어가는 물질, 발효와 분해 같은 현상들은 작품의 일부가 아니라 그 자체로 작업의 핵심이 된다. 어떤 작품은 썩어가는 과일에서 비롯된 에너지로 빛과 소리를 만들어내고, 또 다른 작품은 시간이 흐르며 형태가 달라지는 과정을 통해 관람객에게 지속적인 변화를 체감하게 한다.

이 전시의 또 다른 특징은 미술관 공간을 하나의 살아 있는 환경처럼 바꾸어 놓는 데 있다. 천과 흙, 식물, 발효액, 곤충, 곰팡이 등 다양한 요소가 개입한 작업들은 전시장을 단순히 작품을 걸어두는 장소가 아니라 생태적 순환이 일어나는 현장으로 바꾼다. 건물 바깥과 안쪽 곳곳에 놓인 작업들은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계절의 흐름 속에서 조금씩 다른 모습을 드러낼 예정이다.

결국 이 전시는 완성된 결과물만을 보여주기보다, 변화와 소멸의 과정까지 미술의 일부로 받아들이자고 제안한다. 사라지는 것, 부패하는 것, 형태를 잃는 것이 더 이상 결핍이나 실패가 아니라 새로운 감각과 질문을 만들어내는 예술적 사건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이번 전시가 동시대의 환경 감수성을 반영하는 동시에, 변화하는 작품에 맞춰 미술관 역시 어떤 방식으로 달라질 수 있을지를 상상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하고 있다. 관람객에게도 이번 전시는 작품을 ‘보는’ 경험을 넘어, 시간이 지나며 달라지는 예술을 함께 ‘겪는’ 경험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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