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정책에 창작자 반발 확산…“저작권 허물면 산업도 무너진다” 저작권·헌법 충돌로 번진 정책

정부가 추진 중인 인공지능(AI) 정책을 둘러싸고 문화계 반발이 확산되고 있다. 저작물 학습 과정에서의 이용 범위를 넓히려는 정책 방향이 저작권 체계와 충돌하면서 논쟁이 법적·산업적 영역으로 번지고 있다.
한국방송협회, 한국음악저작권협회, 한국작가회의 등 16개 창작자 단체는 13일 공동 성명을 내고 대통령 직속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의 ‘AI 액션플랜’을 수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들은 “AI 기업이 저작권자의 이용 허락 없이도 저작물을 ‘법적 불확실성 없이’, ‘사실상 무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방향이 드러났다”며 정책 전면 재검토를 요구했다.
논란의 중심은 ‘액션플랜 32번’이다. AI 학습·평가 목적의 저작물 활용을 활성화하겠다는 내용으로, 정부는 현행 저작권법상 공정이용 규정의 불확실성을 해소하기 위한 입법을 검토하고 있다. 이에 따라 문화체육관광부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과 협력해 올해 2분기까지 AI 관련 법 개정 또는 특별법 제정을 추진할 계획이다.
창작자 단체들은 이 방향 자체가 저작권 제도의 취지와 충돌한다고 보고 있다. 이들은 “공정이용은 저작자의 정당한 이익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제한적으로 허용되는 제도인데, 이를 사기업의 영리 목적까지 확대하는 것은 저작권의 본질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정당한 보상을 통한 창작 동기 부여라는 저작권법의 기본 구조가 무너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글로벌 흐름을 둘러싼 해석도 엇갈린다. 창작자 단체들은 “국제적으로는 저작권자의 허락을 전제로 협상을 통해 이용을 허용하는 방향이 일반적”이라며 “일부 비영리 목적 면책 사례를 확대 해석해 정책 근거로 삼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또 “AI 산업을 이유로 저작권 면책을 확대하는 것은 특정 산업의 이익을 위해 창작자 권리를 희생시키는 정책”이라고 주장하며, “권리 보호 장치가 미흡한 상태에서 면책 규정까지 도입하는 것은 책임과 위험을 창작자에게 전가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옵트아웃 제도에 대한 문제 제기도 이어졌다. 창작자 단체들은 “AI 학습에서 자신의 데이터를 제외하려면 기계가 인식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의사를 표시해야 하는데, 이는 기술과 자본이 없는 개인 창작자에게는 사실상 불가능한 요구”라며 “결국 대부분 창작자의 권리는 보호받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논쟁은 헌법적 쟁점으로도 확장되고 있다. 법학계에서는 저작권이 단순한 규제가 아니라 헌법이 보호하는 재산권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헌법은 저작자와 예술가의 권리를 보호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재산권 제한 시 정당한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정책 방향에는 보상 체계가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정책 접근 방식 자체에 대한 문제 제기도 이어진다. 한 법학자는 “AI 혁신을 이유로 기본권을 ‘규제’로 보는 관점 자체가 헌법 질서와 충돌할 수 있다”며 “저작권 제한을 논의하려면 보상과 이용허락 체계를 먼저 설계하는 것이 순서”라고 지적했다.
산업 측면에서도 이해관계는 뚜렷하게 갈린다. AI 기업은 대규모 데이터 확보가 경쟁력의 핵심이다. 반면 콘텐츠 산업은 개별 저작권을 기반으로 수익이 형성된다. 데이터 활용 확대와 권리 보호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구조다.
이미 시장에서는 유사한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음악, 영상, 텍스트 분야에서 AI 학습 데이터의 출처와 보상 문제를 둘러싼 논쟁이 확대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저작권 시장 자체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특히 K콘텐츠 산업은 IP 기반 수익 비중이 높다. 콘텐츠가 영상, 공연, 상품으로 확장되면서 저작권이 핵심 자산으로 작동한다. 이 구조가 흔들릴 경우 산업 전반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창작자 단체들은 성명에서 “글로벌 AI 경쟁이 중요하더라도 창작자 권리를 희생하는 방식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며 “사전 이용허락과 정당한 보상을 전제로 한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정부는 AI 산업 경쟁력 확보를 강조하고 있다. 다만 입법 과정에서 권리 보호와 산업 육성 사이 균형을 어떻게 설정할지가 중요해 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