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조원 돌파한 대중문화예술산업…외형은 커졌지만 현장은 얼마나 나아졌나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내놓은 ‘2025 대중문화예술산업 실태조사’는 국내 대중문화예술산업이 다시 한 번 몸집을 키웠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2024년 기준 산업 매출 규모는 15조3845억원으로 집계됐다. 2022년 11조4362억원보다 34.5% 늘었다. 기획업 매출은 9조5076억원으로 39.5%, 제작업 매출은 5조8769억원으로 27.1% 증가했다. 2014년 이후 장기 추세로 봐도 기획업의 연평균 증가율은 20.2%, 제작업은 9.6%다. 산업 전체로는 성장의 방향이 분명했다.
이번 조사에서 먼저 눈에 들어오는 대목은 성장의 축이 더 선명해졌다는 점이다. 기획업에서는 매니지먼트 매출이 3조462억원, 연관 콘텐츠 제작이 3조8624억원으로 커졌고, 공연기획 및 제작도 1조7937억원으로 2년 새 89.1% 급증했다. 제작업에서는 영상물 제작이 5조2686억원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고, 공연물 제작은 165.2% 늘었다. K팝 중심의 해외 팬덤 확대, 공연 재개, 아티스트 IP를 활용한 2차 콘텐츠 확장이 동시에 작동한 결과로 읽힌다. 단순히 음반 판매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확장 국면이다.
실제로 기획업 내부의 매출 구조도 달라졌다. 2022년에는 행사활동 비중이 45.4%로 압도적이었는데 2024년에는 27.1%로 내려왔다. 반면 드라마 출연 비중은 14.0%에서 24.2%로 뛰었고 광고 출연도 8.6%에서 13.9%로 높아졌다. 기획사가 아티스트를 행사 위주로 운용하던 구조에서 드라마, 광고, 제작 연계 사업으로 수익원을 넓히고 있다는 뜻이다. 제작 분야 안에서도 음원·음반 제작 비중은 여전히 63.1%로 가장 높지만 광고 제작 비중이 11.2%로 커졌다. 수익 모델이 다변화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한 긍정 신호다.
계약 문화의 개선도 이번 조사에서 확인된 성과다. 대중문화예술인 대상 표준전속계약서 사용률은 95.3%로 2022년 90.8%보다 올랐다. 기획업 소속직원의 표준계약서 사용률은 92.9%, 제작업 소속직원은 86.8%였다. 제작 스태프 서면계약률이 90%대를 넘겼다는 보도자료의 설명은 현장에서 최소한 계약서를 쓰는 관행이 과거보다 널리 자리 잡았다는 점을 보여준다. 구두계약이나 무계약 비중이 장기 추세상 낮아진 것도 사실이다. 산업이 커지면서 제도와 문서가 뒤따라온 셈이다.
해외 진출 기반도 넓어졌다. 현재 진출 지역은 기획업의 경우 일본이 42.9%로 가장 높고, 동남아와 중화권이 뒤를 이었다. 제작업은 중화권 비중이 36.4%로 가장 높았다. 향후 희망 시장으로는 기획업과 제작업 모두 중화권을 가장 많이 꼽았다. 특히 제작업은 65.5%가 중화권 진출을 희망했다. 최초 해외 진출 경로로 ‘해외 에이전트·유통사’를 꼽은 비율이 기획업 61.0%, 제작업 45.3%였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해외 판매망과 중개 네트워크가 산업 성장의 핵심 통로가 되고 있다는 뜻이다.
다만 이 실태조사를 읽을 때는 가장 먼저 단서를 달아야 한다. 보고서 자체가 매출 규모를 해석할 때 주의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보고서의 매출 수치는 응답 사업체 매출액을 가중치 없이 단순 집계한 값이다. 보고서는 산업 전체 매출 총액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고 명시했다. 다시 말해 15조3845억원은 산업의 팽창 방향을 보여주는 지표로는 의미가 크지만, 이를 곧바로 ‘정확한 산업 총매출’로 받아들이는 데는 한계가 있다. 특히 상장 기획사와 대형사의 실적이 증가한 국면에서는 평균과 총액이 현장 체감과 다를 수 있다.
이 지점에서 이번 조사의 두 번째 메시지가 드러난다. 외형 성장과 현장 체감이 반드시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대중문화예술인의 월평균 개인소득은 315만1000원이지만, 이 가운데 대중문화예술 관련 소득은 150만7000원으로 47.8%에 그쳤다. 절반 이상이 본업 외 소득에 기대고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예술인 가운데 다른 소득활동이 있다고 답한 비율은 56.9%였다. 산업 매출은 급증했지만 그 과실이 예술인의 본업 소득으로 고르게 연결되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중앙값 기준으로 보면 예술 관련 소득은 월 80만원이다. 평균보다 체감이 더 낮을 가능성도 있다.
만족도 지표는 이런 간극을 더 분명하게 보여준다. 대중문화예술인의 활동 전반 만족도는 36.3%였다. 개인 역량 강화 만족도는 37.5%였지만 작업 환경은 27.6%, 보수 및 소득 만족도는 12.8%에 그쳤다. 산업은 화려하게 성장했지만, 그 안에서 일하는 개인이 느끼는 보상 수준은 여전히 낮다는 의미다. 보도자료가 ‘공정 거래 관행 안착’을 강조했더라도, 종사자의 체감은 아직 거기까지 가지 못한 셈이다.
제작 스태프 쪽은 다른 의미에서 더 무겁다. 스태프의 월평균 개인소득은 327만5000원, 이 중 본업 관련 소득은 277만4000원으로 84.7%다. 예술인보다 본업 의존도는 높다. 그러나 주 평균 노동시간은 54.7시간으로 조사됐다. 평균적으로 이미 주 52시간을 넘는다. 직업 전반 만족도도 42.7%에 그쳤고, 보수·소득 만족도는 21.0%, 직장 안정성은 18.8%, 복리후생은 18.3%였다. 산업을 떠받치는 제작 노동이 여전히 장시간·불안정 구조 위에 놓여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임금 체불 문제도 남아 있다. 제작물 스태프의 임금 체불 경험은 2024년 13.1%로 줄었지만, 두 자릿수라는 사실 자체가 가볍지 않다. 대응 방식도 ‘기다림’이 여전히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법적 대응 비율이 높아진 점은 권리의식이 커졌다는 뜻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현장에서 분쟁을 감수해야만 돈을 받는 일이 적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서면계약이 늘었다고 해서 곧바로 지급 질서까지 안정된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연습생 문제는 이번 조사에서 가장 민감한 대목 중 하나다. 기획업 4471개 업체 가운데 실제 소속 연습생을 보유한 곳은 211개, 비율로는 4.7%였다. 연습생 수는 963명으로 2022년보다 줄었다는 보도자료 설명과 맞물린다. 규모 축소 자체는 무분별한 연습생 확장 경쟁이 줄었다는 신호로도 볼 수 있다. 하지만 계약 지표를 보면 안심하기 어렵다. 연습생의 표준계약서 사용률은 52.7%에 그쳤고, ‘사용하지 않음’이 44.6%였다. 예술인 본계약에서는 표준계약이 정착됐는데, 데뷔 이전 단계에서는 여전히 제도 바깥이 넓게 남아 있는 셈이다. 산업의 가장 약한 고리가 아직 연습생이라는 점을 이 수치가 보여준다.
공정성 인식에서도 미묘한 온도차가 보인다. 사업체 응답에서는 대중문화예술인과의 계약 관련 법적 분쟁에 대해 ‘불공정 계약이 없는 편’ 또는 ‘대부분 공정 계약을 한다’는 응답이 70.8%였다. 반면 종사자 조사에서는 대중문화예술인의 20.0%가 불공정계약 체결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다수는 개선됐다고 보지만, 여전히 5명 중 1명은 문제를 겪었다는 뜻이다. 제도는 나아졌지만 현장에서는 계약 조항, 정산, 활동 범위, 불이익 우려 같은 문제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결국 이번 실태조사는 양면을 보여준다. 하나는 K팝과 영상, 공연, 광고, 연관 콘텐츠가 함께 산업의 외형을 밀어 올리는 성장 산업의 얼굴이다. 다른 하나는 예술인 다수가 본업만으로 생계를 꾸리기 어렵고, 스태프가 여전히 장시간 노동을 견디며, 연습생 보호는 취약한 노동 산업의 얼굴이다. 표준계약서 확산, 서면계약 정착, 해외 진출 확대는 분명한 진전이다. 그러나 매출 15조원 시대가 곧바로 ‘건강한 생태계’의 완성을 뜻하지는 않는다.
이제 산업의 다음 과제는 대형 기획사와 핵심 IP가 끌어올린 성장을 예술인 본업 소득과 스태프 노동조건, 연습생 권리 보호로 연결하는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