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학습과 저작권 규칙 전쟁, 한국 문화산업은 준비돼 있나

AI가 무엇을 만들 수 있는지는 이제 놀라운 일이 아니다. 더 첨예한 질문은 그것이 무엇을 보고 배웠느냐다. 미국은 소송으로, 유럽은 규제로, 중국은 행정 통제로, 영국은 제도 협의로 이 충돌에 대응하고 있다. 한국 문화산업도 더는 비켜설 수 없다. K-콘텐츠가 이미 학습되고 있는 이상, 2026년의 승부는 기술 도입 속도가 아니라 저작권 규칙을 누가 먼저 세우느냐로 옮겨가고 있다.
생성형 AI는 이미 문화산업의 일상으로 들어왔다. 텍스트를 쓰고, 이미지를 만들고, 음악과 영상을 조합하는 일까지 AI가 파고들고 있다. 그러나 산업의 긴장은 결과물보다 학습 과정에서 먼저 터지고 있다. 창작자와 권리자는 자신의 저작물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학습 데이터에 들어갔는지 알기 어렵고, 기업은 그 학습 없이는 경쟁력 있는 모델을 만들기 어렵다고 말한다. 창작을 돕는 도구라는 설명과 무단 이용이라는 반발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국은 소송으로, 유럽은 규제로 간다

미국의 대응은 아직 사후 판단 중심에 가깝다. 미국 저작권청은 2025년 5월 공개한 「Copyright and Artificial Intelligence, Part 3: Generative AI Training」 보고서에서, 저작권이 있는 저작물을 AI 학습에 사용하는 데 권리자의 동의가 필요한지, 보상이 필요하다면 어떤 방식이 가능한지, 공정이용 원칙은 어디까지 적용될 수 있는지를 핵심 쟁점으로 제시했다. 보고서는 이 문제를 둘러싼 소송이 미국에서 다수 진행 중이며, 법원이 개별 사안별로 공정이용의 범위를 가려가는 국면이라고 설명한다.
기술 기업과 창작자, 출판사와 이미지 권리자, 음악 산업과 플랫폼이 각기 다른 이해를 내세운 채 결국 법원의 판단을 기다리는 구조다.
이 방식의 장점은 유연성이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법원이 구체적 사안에 따라 선을 그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화산업 입장에서는 비용이 크다. 분쟁이 길어지고 판례가 쌓일 때까지 규칙이 불명확한 상태가 이어진다. 대형 기업은 그 시간을 버틸 수 있어도, 협상력이 약한 창작자와 중소 콘텐츠 기업은 그 불확실성을 감당하기 어렵다. 미국 모델이 곧장 산업의 안정으로 이어지지 않는 이유다.
유럽의 대응은 훨씬 사전 규칙 중심에 가깝다. 유럽연합은 AI Act 체계 아래 범용 AI 모델 제공자에게 EU 저작권법 준수 정책을 마련하고, 학습에 사용된 데이터에 대한 충분히 상세한 공개 요약을 제공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이 요약 공개 의무가 권리자들이 자신의 저작물이 어떤 방식으로 활용됐는지 파악하고, 유럽연합 법 아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장치라고 설명한다.
미국이 소송과 판례를 통해 공정이용의 경계를 사후적으로 그려가는 나라라면, 유럽은 저작권 준수와 투명성 의무를 먼저 제도화해 AI 산업이 따라야 할 기준을 미리 세우는 쪽에 가깝다. 다시 말해 유럽의 핵심은 학습 자체를 금지하는 데 있다기보다, 무엇을 학습에 썼는지와 그에 대한 책임을 더 분명히 드러내게 하는 데 있다.
학습 데이터와 표시 의무 앞세운 중국
중국을 빼고 이 규칙 전쟁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중국은 2023년부터 생성형 AI 서비스 규칙을 통해 학습 데이터는 합법적 출처를 써야 하고 지식재산권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고 못 박았다. 이어 2025년에는 AI 생성·합성 콘텐츠 표시 조치를 내며, 텍스트·이미지·오디오·비디오 등 AI 생성 콘텐츠에 명시적 또는 암묵적 표시를 요구했다.
미국이 소송으로, 유럽이 투명성 의무로 움직인다면, 중국은 서비스 운영과 콘텐츠 표시를 직접 규율하는 행정 중심 모델을 택한 셈이다.
중국식 접근은 기술 산업 통제와 저작권, 플랫폼 책임을 하나의 틀에서 다룬다는 점에서 별도의 모델로 읽힌다. 창작자 권리 보호라는 논리뿐 아니라, 서비스 안정성과 정보 통제까지 함께 묶인 구조이기 때문이다. 문화산업 입장에서 보면 이는 단순 저작권 규칙이 아니라, 생성형 AI 유통 질서 전반을 국가가 더 직접 설계하는 방식이다. 국제 비교에서 중국이 빠지면, 규칙 경쟁의 또 다른 축이 사라지는 이유다.
영국은 왜 ‘법적 확실성’을 먼저 말하나

영국 정부는 2024년 12월 17일부터 2025년 2월 25일까지 「Copyright and Artificial Intelligence」 공식 협의를 진행했고, 2026년 1월 23일 그 응답 요약 자료인 「Copyright and AI Consultation: Government Response to Technical Review and Call for Evidence」를 공개했다. 이 문서에서 정부는 현재 영국 저작권법이 AI 모델 학습에 어떻게 적용되는지는 여전히 분쟁적이며, 권리자들이 자신의 저작물이 학습에 사용되는 것을 통제하고 그 사용에 대해 보상받기 어렵다고 인정했다. 동시에 정부는 창작산업과 AI 산업 모두의 장기 성장을 위해 더 큰 법적 확실성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영국식 접근의 핵심은 균형보다도 예측 가능성에 있다. 창작산업은 저작권이 느슨해질까 우려하고, AI 산업은 지나친 규제가 성장을 막을까 걱정한다. 영국 정부는 이 둘 중 하나를 택하기보다, 어떤 기준 아래 학습을 허용하고 어떤 보상·투명성 장치를 둘 것인지 정리해야 둘 다 장기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본다. 이는 문화산업이 원하는 것이 무제한 자유가 아니라, 계약과 투자 판단에 쓸 수 있는 명확한 기준이라는 사실을 다시 보여준다.
이미 학습되고 있는 K-콘텐츠

이런 저작권 문제는 우리와 먼 이야기가 아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023년 12월 국문판 「생성형 AI 저작권 안내서」를 먼저 내놓은 데 이어, 2024년 4월에는 영문판을 별도로 배포했다. 문체부는 그 배경으로 K-콘텐츠가 해외에서 AI 학습에 활용되거나 유사 생성물이 만들어지는 현실을 들며, 관련 법적 불확실성을 줄이고 국제적으로 한국의 대응 원칙을 알리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정부가 이런 안내서까지 낸 배경에는 한국 콘텐츠가 이미 글로벌 AI 생태계의 학습 재료이자 변형 대상이 되고 있다는 현실 인식이 깔려 있다. 우리는 아직 규칙을 만드는 논의가 충분치 않은데, 콘텐츠는 이미 국경 밖에서 학습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흐름은 한국 문화산업의 구조와도 맞물린다. 웹툰과 드라마, 음악과 캐릭터, 공연 이미지와 팬덤 콘텐츠까지 한국 문화자산은 온라인에서 빠르게 확산되고 쉽게 데이터화된다. 한 번 세계 시장에 퍼진 콘텐츠는 저장되고 재조합되며, 그 과정에서 AI 학습 대상이 될 가능성도 커진다. 한국 문화산업이 더 이상 “규칙은 남이 정하고 우리는 창작만 한다”는 위치에 머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미 시장 밖에서 결정된 기준이 한국 콘텐츠의 가치와 협상력에 직접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도 공정이용 충돌이 시작됐다

국내에서도 긴장은 더 이상 원론에 머물지 않는다. 2026년 1월 서울중앙지법에서는 지상파 3사가 네이버를 상대로 제기한 AI 뉴스 학습 관련 저작권 침해 소송 3차 변론이 열렸다. 재판부는 이 자리에서 “공정이용에 대한 항변은 안 나올 수가 없다”며 공정이용 관련 주장과 근거 제출을 요구했다. 미국에서 공정이용이 AI 저작권 분쟁의 핵심 쟁점이라면, 한국도 이제 같은 질문을 법정에서 피할 수 없는 단계에 들어섰다는 뜻이다.
이 소송의 의미는 단순히 지상파와 포털 사이의 분쟁에 머물지 않는다. 지상파 3사는 네이버가 자사 뉴스 저작물을 무단으로 생성형 AI 학습 데이터에 활용했다고 주장했고, 9만7000여 개 침해 저작물 목록을 제출했다. 더 나아가 전체 피해 추정 저작물 수는 500만~600만 건에 이를 수 있다고 했다. 반면 네이버 측은 개별 저작물 특정이 돼야 방어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결국 쟁점은 학습 데이터가 된 뉴스 저작물을 어디까지 보호 대상으로 볼 것인지, 그리고 그 사용이 저작권법상 공정이용으로 허용될 수 있는지로 모인다.
재판부가 제시한 방향도 상징적이다. 법원은 현실적으로 개별 저작물을 일일이 다투기 어렵다고 보면서도, 사실 전달에 불과한 시사보도는 저작권 보호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다는 저작권법 조항을 언급했다. 이는 한국의 AI 저작권 분쟁 역시 결국 “어떤 콘텐츠가 보호 대상이고, 그 보호 범위는 어디까지인가”라는 기준 싸움으로 들어서고 있음을 보여준다. 기술 자체보다, 학습 재료가 된 저작물의 성격과 권리 범위가 더 중요해지는 국면이라는 뜻이다.
창작의 도구와 침해의 경계는 누가 정하나
실제 산업이 원하는 것은 추상적 선언이 아니다. 시장은 무엇이 가능한지보다 무엇이 위험한지를 먼저 묻는다. 학습에 동의가 필요한지, 보상은 어떤 방식으로 가능한지, 학습 데이터 공개는 어느 수준까지 요구할 수 있는지, 유사 생성물은 어떤 기준으로 판단할지 같은 질문은 모두 계약과 투자, 제작 과정에 곧바로 연결된다. 기술은 빨라졌지만, 규칙은 여전히 고르지 못하다. 그래서 문화산업의 불안은 기술 부족보다 법적 불확실성에서 더 크게 자란다.
이 지점에서 한국 정부와 공공기관의 문제의식도 분명하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생성형 AI를 기술 자체보다 사람의 창작활동을 돕는 도구로 본다면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창작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콘텐츠 산업의 대전환을 이끄는 일이라고 설명해 왔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역시 AI 활용 확산을 단순한 제작 혁신이 아니라 산업 구조와 권리 질서 변화의 문제로 보고 있다. 기술 확산을 막겠다는 것이 아니라, 기술이 시장의 신뢰와 권리 구조를 무너뜨리지 않도록 기준을 먼저 세우겠다는 인식이 정책과 진흥기관 안에서 함께 자라고 있는 셈이다.
산업이 원하는 것은 자유가 아니라 예측 가능성이다

이제 문화산업의 핵심 질문은 더 분명해졌다. AI가 무엇을 할 수 있느냐보다, 어떤 활용을 정당한 도구 사용으로 보고 어디서부터 권리 침해로 판단할 것인가다. 미국식 모델은 소송을 통해 원칙을 세우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고, 유럽식 모델은 기준은 분명하지만 산업 부담 논란이 따른다. 중국식 모델은 통제력은 강하지만 표현과 유통 자유에 대한 우려를 함께 남긴다. 영국은 양쪽의 비용을 인정하면서 법적 확실성의 필요성을 먼저 말한다. 한국은 어느 한 모델을 그대로 따라가기보다, 창작자 보상과 산업 예측 가능성을 함께 담는 질서를 설계해야 하는 위치에 서 있다.
정부가 2024년 말 진행한 인공지능 저작권 제도 개선 의견수렴도 같은 문제의식을 보여준다. 문체부와 한국저작권위원회는 당시 핵심 쟁점으로 인공지능 학습용 저작물의 적법 이용 권한 확보, 학습데이터 공개, 산출물 표시, 산출물의 저작권 등록 문제를 제시했다. 지금 문화산업이 느끼는 불안이 AI 활용 자체보다, 학습과 생성의 범위를 어디까지 허용할지에 대한 기준 부재에 있다는 점이 정책 문서 안에도 드러난 셈이다.
세계지식재산기구도 생성형 AI 시대에 권리 귀속, 보상, 권리관리 체계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고 본다. 이는 결국 문화산업의 경쟁력이 단순히 모델 성능이나 제작 효율만으로 정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강한 저작권 인프라와 예측 가능한 질서, 그리고 국경을 넘는 규칙 대응 역량이 함께 있어야 산업도 오래 버틸 수 있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규칙의 수준이 더 직접적으로 산업의 체력을 가르는 시대가 오고 있는 것이다.
문화산업은 늘 기술을 받아들이며 성장해 왔다. 인쇄술도, 디지털 플랫폼도, 스트리밍도 처음에는 혁신으로 불렸지만, 결국 산업의 승부는 언제나 규칙을 누가 먼저 정하느냐로 옮겨갔다. 생성형 AI도 예외가 아니다. 지금 세계 주요국은 같은 질문 앞에 서 있다. 누구의 창작물이 학습 재료가 될 수 있는가. 그 사용은 어디까지 허용되는가. 창작자는 어떤 통제권과 보상을 가져야 하는가. 기술 기업은 무엇을 공개하고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가.
한국 문화산업도 더는 이 질문을 늦출 수 없다. K-콘텐츠는 이미 해외에서 학습되고 있고, 유사 생성물은 이미 시장을 돌고 있다. 남은 문제는 한국이 이 변화를 뒤쫓을 것인가, 아니면 스스로 기준을 만들 것인가다.
기사작성: 김현주기자 /최창호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