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리수 사례로 본 성소수자 연예인 인권…가십아닌 구조의 문제

방송인 하리수가 데뷔 초 성희롱 피해를 고백하면서 성소수자 연예인이 겪는 인권 문제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연예산업 구조와 제도 공백이 결합된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하리수는 10일 공개된 유튜브 웹예능 ‘파자매 파티’에 출연해 데뷔 초기 “여자인지 확인해보겠다”는 요구와 함께 성관계를 강요받거나 옷을 벗어보라는 요구를 받았다고 밝혔다. 성정체성을 밝힌 이후 계약이 무산된 사례도 많았다고 했다.
이 발언은 성소수자 연예인을 신체와 정체성의 ‘검증 대상’으로 다루는 관행을 드러낸 사례로 읽힌다. 성별 정체성을 확인하려는 요구는 성희롱이자 차별에 해당할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연예산업의 고용 구조도 영향을 미친다. 방송과 공연 분야는 프리랜서 비중이 높다. 계약이 단기 단위로 이뤄지고 내부 신고 체계가 제한적이다. 문제 제기가 곧 계약 해지로 이어질 수 있는 구조가 형성돼 있다는 지적이 이어져 왔다.
제도적 보호의 공백도 반복적으로 지적된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21년 인권상황보고서에서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을 이유로 한 차별이 지속되고 있으며 제도적 보호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다만 이를 포괄적으로 규율하는 차별금지법은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법적 해석에서도 쟁점은 분명하다. 헌법재판소는 외국인뿐 아니라 모든 개인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기본권의 주체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해 왔다. 성정체성 역시 개인의 인격과 밀접하게 연결된 영역으로 보호 대상이 된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특정 정체성을 이유로 신체 확인이나 성적 요구를 하는 행위는 인격권 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근로기준법상 직장 내 괴롭힘 금지 규정도 적용 가능성이 거론된다. 근로기준법 제76조의2는 사용자 또는 근로자가 직장에서의 지위나 관계를 이용해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연예산업의 프리랜서 계약 구조에서는 적용 범위가 제한될 수 있지만, 제작 과정에서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요구가 있었다면 법적 판단 대상이 될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국가인권위원회 역시 성소수자 차별에 대해 일관된 입장을 밝혀왔다. 인권위는 2017년 결정에서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을 이유로 한 차별은 합리적 이유가 없는 경우 허용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채용과 계약 과정에서 불이익을 주는 행위 역시 차별에 해당할 수 있다는 취지다.
실태 조사에서도 구조적 문제가 확인된다. 인권위 조사에서는 트랜스젠더 응답자의 상당수가 취업 과정에서 차별을 경험했거나 구직을 포기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성정체성 공개가 곧 기회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인식이 반영된 결과다.
미디어 재현 방식도 영향을 미친다. 성소수자 인물이 ‘특이 사례’나 ‘화제성’ 중심으로 소비되면서 산업 내부에서도 이를 하나의 콘텐츠 코드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형성됐다. 하리수가 언급한 영화 제안 사례 역시 이러한 흐름과 맞닿아 있다.
해외에서는 제도와 산업 기준을 통해 문제를 완화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UNDP와 국제노동기구(ILO)가 2021년 발표한 공동 연구에서는 성소수자 차별 금지 정책이 있는 직장에서 괴롭힘 경험이 낮고 직무 만족도가 높게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영국영화TV예술아카데미(BAFTA)는 2019년부터 영화상 출품 조건에 다양성 기준을 도입해 제작 과정 전반에서 차별 요소를 줄이도록 하고 있다.
노동 보호 체계도 차이를 보인다. 미국 배우노조(SAG-AFTRA)는 성희롱과 차별 대응 절차를 제도화해 신고와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계약 단계에서 권리 보호를 명문화하는 방식이다.
국내는 이러한 장치가 아직 제한적이다. 프리랜서 중심 구조 속에서 성소수자 연예인 인권 문제는 제도적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제작 현장에서 차별을 규율하는 구체적 기준도 부족한 상황이다.
결국 쟁점은 구조다. 성소수자 연예인을 ‘이례적 존재’로 소비하는 방식이 유지되는 한 유사한 문제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노동 구조, 법 제도, 미디어 재현 방식이 동시에 작동하는 문제라는 의미다.
하리수의 고백은 과거의 일로만 보기 어렵다. 우리 사회에서 소수자를 향한 배타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