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정치인이 책을 내면 베스트셀러가 되는가…지지층 소비 괜찮나?

정치인이 출간한 책이 단기간에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오르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최근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신간이 예약판매 직후 주요 온라인 서점 실시간 1위에 오르면서, 정치인 저서가 출판 시장에서 갖는 역할을 둘러싼 논의가 다시 이어지고 있다.
이재명 전 대표의 책은 출간 직후 예스24와 교보문고에서 상위권에 진입했고, 구매층은 40~50대가 중심을 이룬 것으로 집계됐다. 유사한 흐름은 다른 정치인에게도 나타난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의 저서 역시 출간 직후 실시간 1위를 기록하며 초기 판매가 집중되는 패턴을 보였다.
이 같은 현상은 시장 데이터에서도 확인된다. 예스24가 2025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사회·정치 분야 도서 판매는 전년 대비 두 자릿수 증가세를 보였으며, 정치 이벤트가 발생한 시기에는 판매량이 급증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특정 정치인의 책이 아니라 ‘정치 콘텐츠 전체’가 하나의 소비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의미다.
출판업계에서는 이러한 흐름을 일정 부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대한출판문화협회 관계자는 2023년 출판 시장 관련 인터뷰에서 “사회적 이슈와 맞물린 정치·사회 분야 도서는 독자 유입을 확대하는 역할을 한다”며 “침체된 출판 시장에서 특정 장르가 시장을 견인하는 현상은 자연스러운 측면도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정치인의 책이 정책과 사회 이슈를 장문 형태로 전달하는 통로라는 점도 긍정적 요소로 꼽힌다. 짧은 영상이나 발언 중심의 정치 커뮤니케이션과 달리, 책은 보다 체계적인 메시지 전달이 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반면 비판적 시각도 분명하다. 정치인의 책 판매가 ‘지지층 동원’ 방식으로 이루어질 경우, 출판 시장의 공정 경쟁을 왜곡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특정 시점에 구매가 집중되며 베스트셀러 순위가 급등하는 구조는 콘텐츠 자체의 평가보다 조직된 소비에 의해 순위가 결정될 가능성을 내포한다.
법적 관점에서도 논란은 이어져 왔다. 정치인의 출판기념회는 오랜 기간 ‘사실상 후원금 통로’로 활용될 수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정치자금법은 개인 후원금에 대해 한도를 두고 있으나, 책 구매 형태로 이루어지는 금전 거래는 상대적으로 규제가 느슨한 영역에 속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과거 여러 차례 유권해석을 통해 “출판기념회에서 통상적인 도서 가격을 초과하는 금액을 수수하는 경우 정치자금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이는 책 판매가 단순한 출판 행위를 넘어 정치자금과 연결될 가능성을 제도적으로 인정한 판단으로 해석된다.
실제 정치권에서도 제도 개선 필요성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국회에서는 출판기념회를 통한 금전 수수를 제한하거나, 정치자금으로 포함해 관리해야 한다는 법안이 여러 차례 발의된 바 있다. 다만 표현의 자유와 정치 활동 보장 문제와 맞물리면서 입법은 진전되지 못한 상태다.
이처럼 정치인의 책은 출판물과 정치 활동의 경계에 위치한다. 독자에게는 콘텐츠 소비이지만, 정치권에서는 메시지 전달과 지지층 결집 수단으로 기능한다. 출판 시장에서는 판매를 견인하는 콘텐츠인 동시에, 공정성 논란을 불러오는 요소가 된다.
해외에서도 유사한 논의는 존재한다. 미국에서는 정치인의 회고록과 정책서가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출판기념회 자체가 정치자금 조달 방식으로 활용되는 경우는 제한적이다. 정치자금 규제가 비교적 엄격하게 분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결국 정치인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현상은 출판 시장의 변화라기보다 정치 커뮤니케이션 방식의 전환을 보여주는 사례에 가깝다. 책은 더 이상 독립적인 콘텐츠가 아니라, 지지층을 결집하고 메시지를 확산시키는 하나의 플랫폼으로 기능하고 있다.
문제는 이 구조가 출판 시장과 정치 제도의 경계를 흐리고 있다는 점이다. 조직된 구매를 기반으로 형성된 베스트셀러 순위는 콘텐츠 경쟁력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으며, 출판기념회와 결합될 경우 사실상 정치 자금과 연결되는 통로로 작동할 여지도 남아 있다.
출판의 자유와 정치 활동 보장은 존중돼야 하지만, 시장 공정성과 제도적 투명성 역시 동시에 요구된다. 정치인의 책이 문화 콘텐츠로 기능할 것인지, 정치적 도구로 자리 잡을 것인지는 결국 제도와 시장이 어떤 기준을 마련하느냐에 달려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