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대중화 10년…문화 현상 아닌 정치적 확산의 과정

한국여성학회가 ‘페미니즘 리부트 10년’을 돌아보는 추계 학술대회를 열고, 지난 10년간 한국 사회에서 진행된 페미니즘의 확산을 단순한 문화적 유행이 아닌 정치적 변화의 과정으로 봐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제기했다.
한국여성학회와 광주대 라이즈 사업단은 지난 8일 광주대 호심기념도서관에서 추계 학술대회를 공동 개최했다. 이번 학술대회는 한국 사회가 마주한 민주주의의 위기를 복합적 불평등 구조 속에서 진단하고, 성평등 사회로의 전환을 위한 여성학의 지식 과제와 이론적 전략을 모색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학술대회에서는 기조 세션을 포함해 모두 10개 세션이 진행됐고, 28명의 발표자가 참여해 페미니즘 리부트 10년의 쟁점, 자본주의와 경제 분석, 교차적 페미니즘과 연구 방법론 등 다양한 주제를 놓고 논의를 이어갔다.
참가자들은 2015년을 한국 페미니즘 흐름의 중대한 분기점으로 짚었다. 당시 여성 혐오 담론이 노골화되면서 이에 반발한 젊은 여성들이 해시태그 운동과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중심으로 집단적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이는 이후 페미니즘 대중화의 물결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다만 학계는 이 흐름이 확산되는 동시에 강한 반발도 뒤따랐다고 진단했다. 여성 혐오 표현이 더욱 노골화됐고, 젠더 갈등을 둘러싼 사회적 대립 역시 심화됐다는 것이다.
류진희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초빙교수는 ‘여혐’과 ‘페미’로 상징되는 대립적 언어 구도에 주목했다. 그는 ‘여성혐오’라는 개념이 한국 사회에서 사회 비평 용어로 자리잡는 과정을 짚으면서, 줄임말인 ‘여혐’이 뿌리 깊은 여성차별을 압축적으로 드러내는 기능을 해왔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동시에 이러한 표현이 다양한 맥락과 논쟁의 층위를 축소하는 부작용도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페미’ 역시 상대 진영을 공격하는 비어처럼 소비되면서 페미니즘 논의의 본질을 흐릴 수 있다고 보고, 관련 용어를 보다 적극적이고 정확하게 사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권김현영 여성현실연구소장은 ‘페미니즘 리부트’보다 ‘페미니즘 대중화’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고 밝혔다. 그는 “리부트라는 말은 감정의 폭발은 설명할 수 있지만 구조 변동까지 담아내지는 못한다”며, 지난 10년의 흐름을 문화적 현상이 아니라 정치적 과정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권 소장은 2015년 이후 여성들의 집단적 행동주의를 기존 여성운동의 연장선에만 놓기보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포스트 페미니즘과의 관계 속에서 분석해야 한다고 봤다. 그러면서 안티 페미니즘과 신자유주의 페미니즘이 지닌 허구성을 비판하고, 최근의 페미니즘 운동이 분노와 해방의 정서를 공유하며 여성 일반을 호명하는 방식 속에서 뚜렷한 정치적 성격을 드러냈다고 평가했다.
그는 특히 ‘대중화’란 페미니즘이 희석되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 윤리와 비판적 사유가 사회 전반으로 확장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페미니즘은 본래부터 대중운동을 지향해왔으며, 지금 필요한 것은 대중화라는 이름으로 페미니즘의 정치를 다시 써나가는 일이라는 점도 함께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