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크데이’가 놓친 것, 마케팅에도 기억의 윤리가 필요하다

기업의 마케팅은 늘 관심을 먹고 산다. 더 짧고 강한 문구, 더 눈에 띄는 이미지, 더 즉각적인 반응을 끌어내는 이벤트가 좋은 마케팅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모든 기억이 홍보의 재료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한 사회의 고통과 희생이 새겨진 역사 앞에서는, 재치보다 먼저 필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감수성이고, 더 정확히 말하면 기억에 대한 예의다.
스타벅스코리아의 ‘탱크데이’ 논란은 바로 그 예의가 무너졌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여준다. 5·18민주화운동 기념일에 ‘탱크’라는 단어를 앞세운 판촉 행사가 진행됐고, 여기에 “책상에 탁!”이라는 문구까지 더해졌다. 하나만 놓고 봐도 민감할 수 있는 표현들이 한국 현대사의 가장 아픈 장면들과 겹쳐졌다. 1980년 광주의 국가폭력, 1987년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말들이 소비 촉진의 언어로 등장한 것이다.
물론 기업은 이것이 의도된 조롱이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다. 담당자는 단순히 상품명과 행사명을 연결했을 수도 있고, 문구는 가볍고 경쾌한 광고 표현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의도만으로 판단되지 않는다. 사회적 상처를 건드리는 표현은 “그럴 뜻이 아니었다”는 해명만으로 사라지지 않는다. 역사적 기억은 개인의 사적 감정이 아니라 공동체가 오랜 시간 쌓아온 공적 감각이기 때문이다.
광주는 단지 한 도시의 이름이 아니다. 5·18은 국가가 시민에게 총을 겨누었고, 시민들이 폭력 앞에서 민주주의의 존엄을 지켜낸 사건이다. 박종철 열사 사건 역시 한 청년의 죽음을 권력이 은폐하려 했고, 그 거짓이 무너지며 1987년 민주화의 물길을 열었던 역사다. 이 기억들은 교과서 속 문장이 아니라 여전히 유족과 생존자, 그리고 시민들의 삶 속에 남아 있다. 그런 기억을 건드리는 언어가 할인 행사 배너 위에 올라가는 순간, 소비자는 단순한 광고 실수가 아니라 가치의 훼손을 보게 된다.
이번 논란이 특히 뼈아픈 이유는 스타벅스라는 브랜드의 성격 때문이다. 스타벅스는 단순히 커피를 파는 공간이 아니라 감각과 라이프스타일을 파는 브랜드다. 매장의 조명, 음악, 컵의 디자인, 계절 한정 메뉴의 이름까지 모두 세심하게 관리해온 기업이다. 그런 기업이 한국 사회의 역사적 기념일과 언어의 맥락을 읽지 못했다면, 이는 한 담당자의 실수라기보다 조직 전체의 검수 체계와 문화적 이해력이 실패한 결과라고 봐야 한다.
마케팅은 시대의 감각을 반영한다. 그러나 요즘의 많은 마케팅은 ‘주목받는 것’과 ‘존중받는 것’을 혼동한다. 온라인에서 화제가 되면 성공이고, 클릭이 늘면 효과가 있었다고 여긴다. 하지만 브랜드가 얻어야 할 것은 순간의 주목만이 아니다. 오래 가는 신뢰다. 역사적 아픔을 건드린 관심은 매출로 환산되기 전에 불신으로 돌아온다. 특히 사회적 책임을 강조해온 대기업일수록 그 불신의 무게는 더 크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의 직접 사과와 대표 해임은 사태의 심각성을 인정한 조치다. 그러나 진짜 과제는 그 다음에 있다. 사과문은 사건을 끝내는 문서가 아니라, 책임을 시작하는 약속이어야 한다. 조사 결과 공개, 검수 체계 개선, 임직원 교육이 실제로 이뤄져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기업 내부에서 “이 표현이 누군가에게 어떤 기억을 불러올 수 있는가”를 묻는 문화가 자리 잡는 일이다.
역사 감수성은 특별한 이념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타인의 고통을 상상할 줄 아는 최소한의 사회적 능력이다. 기업이 모든 역사적 사건을 완벽히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국가폭력, 민주화운동, 참사, 전쟁, 재난과 관련된 기념일과 표현에 대해서는 더 세심한 검토를 해야 한다. 이것은 표현의 자유를 억누르는 일이 아니라, 표현이 사회 속에서 어떤 책임을 지는지 이해하는 일이다.
문화는 기억 위에 세워진다. 우리가 무엇을 기념하고, 무엇을 조심스럽게 말하며, 무엇을 다시는 반복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는지가 한 사회의 품격을 만든다. 기업도 그 문화 바깥에 있지 않다. 오히려 대중과 매일 만나는 브랜드일수록 공동체의 기억을 다루는 방식에 더 큰 책임을 져야 한다.
‘탱크데이’ 논란은 한 기업의 홍보 실패로만 남겨서는 안 된다. 이것은 한국 사회가 역사적 기억을 소비의 언어와 어떻게 구분할 것인지 묻는 사건이다. 재미있는 광고는 많을수록 좋다. 그러나 좋은 광고는 결코 누군가의 상처 위에 서지 않는다. 마케팅에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 그 선을 알아보는 감각이야말로, 오늘의 기업이 갖춰야 할 가장 기본적인 문화적 능력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