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김광석 표절, 슈퍼등산부… 몰랐다’는 해명이 면책이 될 수 없어

일본 인디밴드 슈퍼등산부가 김광석의 ‘바람이 불어오는 곳’과 유사성 논란이 제기된 신곡 ‘산보’의 음원과 관련 영상 공개를 중단하기로 했다. 밴드 측은 곡을 만들 당시 원곡을 알지 못했다고 해명하면서도, 문제 제기를 무겁게 받아들여 철회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직접적으로 표절을 인정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논란의 무게를 외면하지는 않겠다는 태도는 보였다.
이번 일을 두고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단순하다. 지금 시대에 “몰랐다”는 말은 해명이 될 수는 있어도 면책이 되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음악은 오래전부터 국경을 넘었고, 이제는 플랫폼 하나로 전 세계 어디서든 같은 곡을 듣는 시대다. 그렇다면 창작자에게 요구되는 책임도 예전보다 훨씬 넓어질 수밖에 없다. 의도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법적 판단의 영역일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 널리 알려진 타인의 곡과 닮은 멜로디가 나왔다면 그에 대한 설명과 검증 책임은 창작자에게 돌아간다.
더 눈여겨볼 대목은 슈퍼등산부의 사과문에 담긴 표현이다. 이들은 김광석과 ‘바람이 불어오는 곳’이 한국 대중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알게 됐다고 했다. 어쩌면 이 문장이 이번 논란의 본질에 가장 가까울지 모른다. 어떤 노래는 단순한 음원 파일이 아니다. 한 사회의 기억이고, 세대를 건너 이어지는 감정의 저장고이며, 누군가에게는 청춘과 위로, 상실의 시간을 함께 견딘 언어이기도 하다. 김광석의 노래는 한국 대중음악에서 그런 자리에 있다. 멜로디 몇 마디의 유사성이 유난히 크게 받아들여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래서 이 사안을 그저 “닮았느냐, 아니냐”의 기술적 논쟁으로만 좁혀서는 충분하지 않다. 창작은 늘 이전의 작품들과 영향을 주고받으며 이루어진다. 완전히 무에서 유를 만드는 예술은 거의 없다. 문제는 영향을 받았는지 여부가 아니라, 어디까지가 창작적 소화이고 어디서부터가 타인의 고유한 정서와 구조를 침범하는가에 있다. 그리고 그 경계가 모호할수록 필요한 것은 더 높은 수준의 검토와 더 신중한 태도다.
특히 글로벌 유통 시대에는 “자국에서는 덜 알려졌을 수 있다”는 변명도 점점 설 자리를 잃고 있다. 해외 아티스트라 해도 다른 나라의 유명한 곡과 유사성 논란이 불거졌다면, 이제 대중은 즉각 비교하고 공유하고 판단한다. 플랫폼은 국적을 지워버렸고, 창작자의 책임 반경도 함께 넓어졌다. 과거에는 지역적 무지가 통했을지 몰라도, 지금은 무지가 곧 위험이 된다.
이번 논란에서 밴드가 음원 철회를 택한 것은 늦었지만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인다. 다만 철회 자체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한 더 근본적인 질문이다. 창작 과정에서 내부 검토는 있었는가. 멜로디 유사성에 대한 최소한의 점검 장치는 작동했는가. 해외 시장에 곡을 유통하면서 문화적 맥락에 대한 이해는 충분했는가.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이 없다면, 이번 일은 사과문 하나로 봉합되고 또 다른 유사 사례는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 대중 역시 이번 일을 감정적으로만 소비할 필요는 없다. 분노는 이해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 사건을 계기로 글로벌 창작 환경의 기준을 다시 세우는 일이다. 창작의 자유는 존중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 자유는 타인의 유산과 기억을 가볍게 다룰 자유까지 포함하지는 않는다. 유명한 선율일수록,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노래일수록, 그 곡이 누군가의 문화 안에서 가진 무게를 먼저 헤아려야 한다.
노래는 국경을 넘는다. 하지만 그 노래를 둘러싼 책임도 함께 국경을 넘어야 한다. 이제 창작자에게 필요한 것은 단지 좋은 멜로디를 만드는 능력만이 아니다. 자신이 딛고 선 음악의 역사와, 타인의 문화가 가진 의미를 읽어내는 감수성이다. 이번 논란은 그 오래된 상식을 다시 확인시켜 준다. 세계로 나가는 시대일수록, 먼저 배워야 할 것은 기술이 아니라 존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