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전시

추사는 제자들에게 무엇을 가르쳤나…대구간송미술관이 꺼낸 ‘그림의 기준’

‘1849년, 추사의 그림 수업‘에서 전시 중인 『예림갑을록』과 《팔인수묵산수도》ⓒ대구간송미술관

추사 김정희를 떠올릴 때 많은 이들은 먼저 글씨와 학문을 생각한다. 그러나 대구간송미술관이 마련한 기획전은 조금 다른 질문에서 출발한다. 추사가 남긴 회화는 무엇이었고, 그는 제자들에게 그림을 어떻게 보라고 가르쳤는가. 탄신 240주년을 맞아 열린 이번 전시는 작품 자체만이 아니라, 추사의 미적 판단과 교육적 태도를 함께 들여다보게 한다.

전시의 핵심에는 1849년 여름의 기록인 ‘예림갑을록’이 놓여 있다. 이는 추사가 여덟 제자의 작품을 보고 남긴 일종의 비평문으로, 단순한 감상평이 아니라 회화에 대한 그의 기준을 보여주는 자료로 읽힌다. 여기서 드러나는 추사의 시선은 분명하다. 옛것을 익히되 무분별하게 섞지 말 것, 전통을 받아들이되 자기 안에서 다시 가다듬을 것, 남의 방식을 흉내 내는 데 머물지 말 것. 결국 기술보다 더 중요한 것은 창작자의 태도라는 뜻이다.

이 전시는 바로 그 지점을 오늘의 감각으로 되살린다. 같은 스승 아래에서 출발했더라도 제자들의 그림은 저마다 다른 방향으로 펼쳐진다. 조희룡, 유숙, 김수철 등으로 이어지는 작업은 추사의 영향 아래 있으면서도 단순한 반복에 머물지 않는다. 매화 그림만 보더라도 각자의 화면에는 해석의 차이와 개성의 흔적이 뚜렷하다. 전통은 답습의 대상이 아니라, 변형과 재구성을 거쳐 자기 언어로 바뀌어야 한다는 점을 이들 작품이 보여준다.

이 점에서 추사는 기법을 전수한 스승이라기보다 미적 기준을 제시한 인물에 가깝다. 제자는 많았지만, 누구도 추사를 그대로 대신할 수는 없었다. 그가 남긴 것은 특정 형식의 복제가 아니라 예술을 대하는 엄격한 태도였기 때문이다. 전시가 보여주는 것도 바로 이 부분이다. 추사의 예술은 한 양식을 정답처럼 세워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속이지 않는 창작의 자세를 끝까지 요구한 데 있었다.

기획자는 문인화를 낡은 전통 양식으로만 볼 수 없다고 말한다. 오히려 그것은 익숙한 도식을 뒤집고, 창작자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하게 만드는 회화라는 것이다. 형식만 좇으면 곧 관습에 갇히지만, 자기 안의 기준을 세우기 시작할 때 비로소 다른 경지에 닿을 수 있다는 해석이다. 이런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문인화는 과거 취향의 잔재가 아니라 오히려 가장 급진적인 자기 성찰의 미술로 다가온다.

전시는 또한 추사를 단지 조선 후기의 명필이나 고증학자로만 보지 않는다. 그는 학문과 예술을 하나의 세계 안에서 다룬 통합적 지식인이었고, 동아시아 지적 교류 속에서 활동한 문화적 중심 인물이었다. 이번 전시는 이러한 추사의 면모를 서예나 경학이 아니라 회화를 통해 풀어낸다는 점에서 기존 추사 전시와 결을 달리한다. 특히 유배 이후 말년에 더욱 정제된 조형 언어를 보여준 작품들을 통해, 극한의 시간 속에서 오히려 깊어진 추사의 예술세계를 확인하게 한다.

전시에는 국보 ‘세한도’를 비롯해 ‘불이선란도’, ‘난맹첩’, ‘계산무진’ 등 추사 회화의 정점으로 꼽히는 작품들이 함께 나온다. 이 가운데 ‘세한도’는 서울과 제주 외 지역에서는 좀처럼 만나기 어려웠던 작품으로, 영남권 공개라는 점에서 관심을 모은다. 길게 이어지는 발문까지 함께 선보여 작품을 둘러싼 사유의 흐름을 보다 입체적으로 볼 수 있게 했다. 여기에 제자들의 미공개 작품도 더해져, 추사 화파가 어떻게 이어지고 변주됐는지를 살필 수 있도록 했다.

전시가 흥미로운 것은 추사의 글씨와 그림을 따로 떼어 보지 않기 때문이다. 추사의 서체는 이미 강한 조형성을 지닌다. 한 획, 한 글자 안에 회화적인 긴장과 리듬이 스며 있다. 그리고 제자들의 그림은 그 감각을 다시 화면으로 번안한 결과물처럼 읽힌다. 말하자면 추사의 글씨가 그림이 되고, 제자들의 그림은 다시 그 정신을 자기 방식으로 번역해낸 셈이다. 전시는 이 관계를 서화일치라는 오래된 개념이 아니라, 눈앞에서 확인되는 장면으로 보여주려 한다.

왜 지금 다시 추사인가라는 질문도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전통의 형식은 넘쳐나지만 정작 자기 언어를 세우는 일은 더 어려워진 시대이기 때문이다. 이미지와 스타일이 끊임없이 복제되는 오늘의 환경은 어쩌면 19세기와도 닮아 있다. 그래서 “흉내 내지 말라”는 추사의 메시지는 단순한 미술사가 아니라 동시대 예술 전반에 던지는 질문처럼 들린다. 결국 창작의 생명력은 기교의 과시에 있지 않고, 자신이 누구인지를 끝까지 묻는 데 있다는 것이다.

물론 전시가 마냥 친절한 것은 아니다. 200년 전의 한문 비평과 전통 회화의 맥락은 오늘의 관람객에게 낯설 수밖에 없다. 도슨트와 영상 설명이 준비돼 있어도, 이해의 상당 부분은 여전히 해설에 기대게 된다. 그러나 바로 그 거리감이야말로 이 전시의 또 다른 의미일 수 있다. 쉽게 소비되는 시각 이미지에 익숙한 시대에, 한 점의 그림과 한 줄의 발문 앞에서 오래 멈추게 만드는 힘 말이다.

결국 이번 전시는 추사의 작품을 감상하는 자리를 넘어, 예술에서 배움이란 무엇이고 창작의 기준은 어디에서 오는지를 다시 묻게 한다. 추사가 끝내 강조한 것은 외형적 완성도가 아니라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 태도’였다. 그 오래된 가르침은 지금도 여전히 날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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