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 기념전 〈로드 무비: 1945년 이후 한·일 미술〉 개최

국립현대미술관이 일본 요코하마미술관과 공동 기획한 전시 〈로드 무비: 1945년 이후 한·일 미술〉을 5월 14일부터 9월 27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을 계기로 마련된 대규모 기획전으로, 1945년 이후 현재까지 약 80년에 걸쳐 이어져 온 한국과 일본 현대미술의 교류사를 조망한다.
전시 제목인 ‘로드 무비’는 길 위에서 예상치 못한 만남과 사건을 겪으며 변화해가는 영화 장르에서 가져왔다. 한국과 일본의 예술가들 역시 두 나라 사이의 복잡한 역사와 정치적 조건, 때로는 단절과 오해가 존재했던 현실 속에서도 서로를 향한 길을 만들어왔다. 이번 전시는 그 여정을 하나의 선형적 성공담으로 정리하기보다, 이동과 접촉, 긴장과 연대가 교차한 다층적 장면으로 펼쳐 보인다.
전시는 1945년 한국의 광복과 일본의 패전 이후 형성된 동아시아의 냉전 질서, 한반도의 분단,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의 문화 교류와 현대미술 네트워크를 폭넓게 다룬다. 공식 전시를 통한 교류뿐 아니라 예술가 개인의 이동, 비공식적 만남, 지역 기반의 연대, 재일 한국인 작가들의 활동까지 함께 조명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미술 교류가 늘 순조롭고 대칭적인 관계였던 것은 아니며, 비대칭과 갈등, 침묵과 오해 역시 그 역사 안에 포함돼 있음을 전시는 정면으로 다룬다.
이번 전시에는 곽인식, 곽덕준, 조양규, 박서보, 서승원, 이우환, 이불, 정연두, 남화연, 다나카 고키, 나카무라 마사토, 무라카미 다카시 등 한·일 현대미술의 주요 작가 40여 명이 참여한다. 회화, 조각, 사진, 영상, 설치, 아카이브 자료 등 200여 점이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1층 1·2전시실, 중앙홀, 조각공원에 걸쳐 소개된다.
전시의 초반부는 재일 한국인 작가들의 시선에서 출발한다. 일본에 머물며 활동한 조양규, 송영옥, 곽인식 등은 식민지와 전후 체제, 분단과 이주가 개인의 삶과 예술에 남긴 흔적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드러낸다. 이들의 작업은 1950~60년대 한·일 미술 교류의 이른 장면을 형성하면서도, 동시에 재일 한국인이 놓였던 정치·사회적 조건을 환기한다.
백남준과 일본 예술가들의 관계도 중요한 축으로 다뤄진다. 백남준은 1950년대 일본에서 미학과 음악을 공부한 뒤 독일로 건너가 전위예술가로 활동했고, 1960년대 일본 예술계와 다시 접속하며 플럭서스, 하이 레드 센터 등 실험적 예술 흐름과 교차했다. 그의 활동은 한국과 일본, 유럽과 미국을 잇는 국제적 네트워크 속에서 동시대 예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제시된다.
1965년 국교정상화 이후의 장면에서는 일본에서 열린 한국 현대미술 전시들이 주목된다. 당시 한국 현대미술은 일본의 주요 미술관과 갤러리를 통해 먼저 소개되며 양국 미술계의 제도적 접점을 넓혀갔다. 이우환과 박서보를 비롯한 작가들의 교류, 명동화랑과 도쿄화랑 등 한·일 미술 교류를 매개한 공간의 역할은 이후 더욱 복합적인 관계망을 형성하는 토대가 됐다.
1980년대 이후에는 양국 현대미술의 만남이 서울과 도쿄를 넘어 대구, 부산, 교토, 삿포로 등 지역으로 확장된다. 곽덕준은 일본에서 활동한 재일 한국인 작가로, 한국과 일본의 작가를 소개하는 전시와 출판 활동을 통해 독자적인 교류의 장을 마련했다. 그의 작품 〈10개의 계량기〉는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조각공원에서도 만날 수 있으며, 익숙한 사물인 저울을 피라미드처럼 쌓아 절대적 기준과 단일한 진실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과천 조각공원 역시 이번 전시의 중요한 무대다. 1986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개관과 함께 조성된 조각공원에는 곽덕준의 〈10개의 계량기〉, 이우환의 〈사방에서〉와 〈문에서〉, 곽인식의 〈작품 86-끝없는〉, 니즈마 미노루의 〈성 87〉, 다나베 미쓰아키의 〈서울, 벼, 열전도〉 등이 소개된다. 이 작품들은 미술관 내부 전시와 연결되며, 한·일 작가들이 공간과 물질, 자연과 문명, 관계와 시선의 문제를 어떻게 탐구했는지를 야외 공간에서 보여준다.
동시대 작가들의 작업은 한·일 관계를 현재적 질문으로 확장한다. 다나카 고키의 〈다치기 쉬운 역사들(로드 무비)〉은 재일 한국인·조선인을 둘러싼 역사와 차별, 공동체와 취약성의 문제를 다룬 영상 설치 작업이다. 작가는 타자의 고통을 온전히 공유할 수 없다는 한계에서 출발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듣고 말하며 함께 살아갈 수 있는지를 묻는다.
이불의 드로잉과 설치 관련 작업들은 1990년대 이후 한국 동시대미술이 국제 무대와 접속하며 만들어낸 감각을 보여준다. 사이보그, 신체, 장식성, 여성성과 권력의 이미지를 둘러싼 그의 작업은 한·일 미술 교류사가 단순히 국가 간 이동의 역사에 머물지 않고, 동아시아 현대미술의 미학적 전환과도 연결돼 있음을 드러낸다.
〈로드 무비: 1945년 이후 한·일 미술〉은 양국 미술의 교류를 하나의 결론으로 봉합하지 않는다. 오히려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처럼, 작가들이 서로를 오해하고 배우며, 때로는 거리를 두고 다시 접속해온 과정을 따라간다. 이번 전시는 과거의 교류를 다시 읽는 자리인 동시에 앞으로의 관계를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지 묻는 장이 될 전망이다.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1층 1·2전시실, 중앙홀 및 조각공원에서 진행되며, 관람료는 과천 전시관람권 기준 3000원이다. 주최는 국립현대미술관과 일본 요코하마미술관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