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업

K콘텐츠 수출 절반이 게임인데 세계 점유율은 7.2%…K게임의 이상한 역설

한국 콘텐츠 수출에서 가장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 장르는 영화도, 드라마도, K팝도 아니다. 게임이다.

2025년 K콘텐츠 전체 수출액은 잠정 149억달러 규모로 집계됐고, 이 가운데 게임이 약 86억달러를 차지했다. 비중으로 따지면 약 58%다. 한국의 대표적인 문화콘텐츠 수출산업이라는 표현이 과장이 아닐 정도다.

그런데 세계 게임시장으로 시선을 넓히면 다른 모습이 나타난다.

한국 게임산업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2024년 기준 7.2%다. 중국과 미국, 일본에 이어 세계 4위다. 높은 순위처럼 보이지만 2020년 이후 4위에서 더 올라가지 못하고 있고, 2023년 7.8%였던 점유율은 오히려 0.6%포인트 낮아졌다.

K게임이 한국 콘텐츠 수출의 절반 이상을 담당하면서도 세계 게임산업의 주도권 경쟁에서는 상위 3개국과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는 셈이다.

이 역설은 지금 한국 게임산업이 어디에 서 있는지를 보여준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간한 ‘2025 대한민국 게임백서’에 따르면 2024년 세계 게임시장 규모는 약 2,200억7,100만달러로 추산된다. 한국의 시장규모는 약 158억달러로 중국과 미국, 일본에 이어 네 번째다.

순위만 보면 여전히 게임 강국이다.

하지만 국가별 점유율을 보면 격차가 보다 선명해진다. 중국은 세계시장의 24.2%, 미국은 20.9%, 일본은 10.0%를 차지했다. 한국은 7.2%다. 특히 3위 일본과도 시장규모에서 약 62억달러의 차이가 난다.

더 중요한 것은 성장의 속도다.

한국 게임산업은 오랫동안 PC 온라인게임과 모바일게임을 중심으로 빠르게 성장했다. ‘리니지’, ‘던전앤파이터’, ‘메이플스토리’, ‘배틀그라운드’처럼 해외에서도 경쟁력을 인정받은 게임 IP를 만들어냈고, 중국과 동남아를 중심으로 대규모 수출시장도 확보했다.

그러나 과거의 성공 공식이 앞으로도 그대로 작동한다고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중국 게임산업의 성장 속도가 대표적이다.

과거 중국은 한국 온라인게임의 주요 수출시장 가운데 하나였다. 한국 게임을 현지에 서비스하거나 한국 개발사의 IP를 활용하는 방식이 많았다. 그러나 최근 중국 게임사는 개발력과 자본력을 동시에 끌어올리면서 세계시장으로 직접 진출하고 있다.

모바일게임뿐 아니라 PC와 콘솔, 대형 오픈월드 게임까지 영역을 넓혔다. 글로벌 시장에서 중국 게임사와 한국 게임사가 경쟁하는 장면은 이제 낯설지 않다.

일본 역시 강력하다.

닌텐도와 소니를 비롯한 플랫폼 경쟁력뿐 아니라 마리오, 포켓몬, 젤다의 전설, 파이널판타지 등 수십 년 동안 축적된 세계적인 IP를 보유하고 있다. 게임 하나가 성공한 뒤 영화와 애니메이션, 캐릭터 상품, 테마파크까지 이어지는 산업 구조도 발달해 있다.

미국은 대형 게임사와 플랫폼 기업을 동시에 보유하고 있다. 게임 제작뿐 아니라 콘솔, PC 플랫폼, 클라우드, 스트리밍 등 게임 소비 생태계 전반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런 경쟁 구도에서 한국 게임산업이 다음 단계로 올라가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가 커지고 있다.

최근 업계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답 가운데 하나가 ‘글로벌 IP’다.

좋은 게임을 만드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하나의 게임이 장기간 살아남으면서 여러 콘텐츠와 사업으로 확장되는 지식재산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다.

게임산업에서 IP가 중요한 이유는 수명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나의 게임이 흥행하면 상당한 매출을 올릴 수 있다. 하지만 이용자가 줄거나 새로운 경쟁작이 등장하면 매출은 빠르게 감소할 수 있다.

반면 강력한 IP는 게임 한 편보다 오래 간다.

후속작을 만들 수 있고 다른 장르의 게임으로 확장할 수도 있다. 영화와 드라마, 애니메이션, 웹툰, 캐릭터 상품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세계관과 캐릭터가 팬덤을 확보하면 게임이 출시되지 않는 기간에도 IP 자체가 소비된다.

글로벌 콘텐츠기업들이 게임 하나의 매출보다 IP의 수명을 중요하게 보는 이유다.

한국 게임산업에도 이런 사례는 존재한다.

‘메이플스토리’와 ‘던전앤파이터’ 같은 장수 게임은 수십 년 가까이 서비스되며 하나의 IP 생태계를 만들었다. ‘배틀그라운드’는 PC게임 흥행을 넘어 모바일과 e스포츠 등으로 영역을 넓혔다.

최근에는 한국 게임사가 기존 강점이었던 온라인과 모바일을 넘어 콘솔과 패키지게임에서도 글로벌 시장을 겨냥하고 있다.

‘P의 거짓’, ‘스텔라 블레이드’ 같은 작품이 해외에서 주목받은 데 이어 한국적 서사와 세계관을 활용한 게임들이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플랫폼과 장르를 다양화하면서 북미와 유럽 시장을 직접 공략하려는 움직임도 커지고 있다.

실제 수출시장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2024년 한국 게임 수출지역을 보면 중국이 29.7%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지만 동남아 20.6%, 북미 19.5%, 일본 8.3% 등으로 시장이 넓어졌다. 특히 북미 비중은 전년보다 4.7%포인트 증가했다.

중국 의존도를 낮추고 글로벌 시장을 다변화해야 한다는 오랜 과제가 조금씩 현실로 이어지고 있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다만 글로벌 IP를 만드는 일은 단순히 해외에 게임을 출시하는 것과는 다르다.

언어를 번역하고 현지 마케팅을 진행하는 것만으로 세계적인 IP가 탄생하는 것은 아니다. 개발 단계부터 여러 국가의 이용자가 받아들일 수 있는 게임성과 세계관, 캐릭터, 비즈니스 모델을 설계해야 한다.

게임을 어떤 플랫폼에 출시할 것인지도 중요하다.

한국 게임산업은 그동안 모바일과 PC 비중이 높았다. 2024년 국내 게임시장에서도 모바일게임 매출은 전체의 59%를 차지했고 PC게임이 25.2%로 뒤를 이었다. 반면 콘솔게임의 국내 비중은 5% 수준에 그쳤다.

세계시장에서는 콘솔의 영향력이 훨씬 크다.

따라서 글로벌 시장을 본격적으로 공략하려면 모바일과 PC라는 기존 강점을 유지하면서도 콘솔과 멀티플랫폼으로 영역을 넓힐 필요가 있다.

정부가 최근 게임정책에서 IP를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6월 모태펀드 문화계정을 통해 게임 지식재산에 투자하는 총 1,200억원 규모의 ‘코나 글로벌 아이피 투자조합’을 결성했다.

문체부가 600억원, 넥슨이 588억원, 운용사 코나벤처파트너스가 12억원을 출자했다. 모태펀드 문화계정 자펀드 가운데 역대 최대 규모다.

단순히 게임 한 편의 제작비를 지원하는 구조도 아니다.

초기 단계의 게임 개발사에 투자하고 성장 가능성이 확인된 기업과 프로젝트에는 후속 투자를 이어가면서 하나의 게임이 글로벌 IP로 성장할 때까지 자본을 연결하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넥슨도 별도의 투자법인 ‘넥슨파트너스’를 만들고 추가 자금을 투입해 초기 게임 개발사 지원에 나섰다.

이 정책에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정부가 게임산업의 문제를 ‘제작비 부족’만으로 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게임 개발은 성공 가능성을 예측하기 어려운 산업이다.

수년간 수백억원을 투입해 게임을 만들어도 흥행하지 못할 수 있다. 특히 자본력이 작은 개발사는 첫 번째 게임을 완성하기 전 자금이 고갈되기도 하고, 가능성을 보여준 뒤에도 후속 투자를 받지 못해 성장 단계에서 멈추는 경우가 있다.

이른바 ‘투자 절벽’ 문제다.

1,200억원 게임 IP 펀드가 의미를 가지려면 이런 성장 단계의 공백을 실제로 메워야 한다.

하지만 돈을 많이 투입한다고 자동으로 글로벌 IP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정부와 대기업이 참여하는 대형 펀드가 이미 성공 가능성이 높은 회사에만 집중한다면 신생 개발사 육성이라는 목적은 약해질 수 있다. 반대로 초기 기업에만 자금을 나눠주는 방식이라면 세계적인 IP로 성장하기까지 필요한 장기 자본을 공급하기 어렵다.

어떤 개발사와 게임에 투자하는지, 첫 투자 이후 후속 자금이 얼마나 이어지는지, 투자받은 IP가 실제 해외시장에 진출하는지를 지속적으로 확인해야 하는 이유다.

한국 게임산업이 해결해야 할 문제는 IP 투자만도 아니다.

새로운 이용자를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다.

국내 게임시장의 성장 속도가 둔화되는 상황에서는 한국 이용자에게 익숙한 게임 구조만 반복해서는 성장에 한계가 있다. 북미와 유럽, 일본, 중동 등 서로 다른 시장의 이용자를 확보하려면 장르와 플랫폼, 비즈니스 모델을 더욱 다양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

인공지능 역시 변수다.

생성형 AI가 그래픽과 코딩, 게임 기획, 번역 등에 활용되기 시작하면서 개발 비용과 제작 방식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 자본력이 작은 개발사도 과거보다 높은 품질의 게임을 만들 가능성이 커지는 동시에 전 세계에서 더 많은 게임이 쏟아지는 경쟁 환경도 만들어지고 있다.

게임을 ‘만드는 능력’의 진입장벽이 낮아질수록 오히려 독창적인 세계관과 캐릭터, 팬덤을 가진 IP의 가치는 더 커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한국 게임산업의 7.2%라는 숫자를 단순히 낮다고 평가할 필요는 없다.

세계 4위라는 위치 자체는 여전히 강하다. 연간 80억달러가 넘는 수출 경쟁력을 갖췄고 PC와 모바일게임에서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개발 경험도 축적돼 있다.

문제는 이 위치에서 더 성장할 방법이다.

과거 한국 게임산업의 경쟁력이 빠른 개발과 온라인 서비스 운영 능력에 있었다면 앞으로는 장기적으로 살아남는 IP를 얼마나 많이 확보하는지가 더 중요해질 가능성이 크다.

하나의 게임이 흥행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후속 게임과 영화, 애니메이션, 웹툰, 캐릭터 상품으로 확장되고 세계 각국에서 팬덤을 만들어내는 구조다.

결국 K게임이 ‘게임을 잘 만드는 나라’라는 평가에서 ‘세계적인 게임 IP를 가진 나라’로 넘어갈 수 있느냐가 다음 경쟁의 핵심이다.

한국 콘텐츠 수출의 절반 이상을 책임지는 산업이 세계시장에서는 7.2%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K게임의 한계를 보여주는 숫자이면서 동시에 성장 여력이 남아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1,200억원 규모의 게임 IP 펀드와 국내 게임사들의 멀티플랫폼 전략이 실제 글로벌 IP 탄생으로 이어질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다음 K게임의 경쟁 상대가 국내 게임사끼리가 아니라는 점이다.

중국의 자본력, 미국의 플랫폼, 일본의 장수 IP와 같은 시장에서 경쟁해야 한다.

그리고 그 경쟁에서 중요한 것은 다음 달 매출 순위를 끌어올릴 게임 한 편이 아니라 10년 뒤에도 이용자가 이름을 기억하는 IP를 얼마나 만들어낼 수 있느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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