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전시

[신간] 선과 악은 언제 발명됐나…하노 자우어 《선악의 발명》, 500만 년 도덕의 진화사를 묻다

우리는 흔히 도덕을 오래된 진리처럼 여긴다. 선은 처음부터 선이었고, 악은 처음부터 악이었다고 믿는다. 그러나 독일 철학자 하노 자우어는 《선악의 발명》에서 다른 질문을 던진다. 도덕은 발견된 것이 아니라,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 만들어낸 것은 아닐까. 인간은 언제부터 타인을 돕고, 배신자를 벌하며, 낯선 사람과 협력하고, 마침내 ‘모든 인간은 존엄하다’는 생각에 도달했을까.

◇선악의 발명 / 하노 자우어 지음·김태한 옮김 / 480쪽·2만6000원 / 민음사

이 책의 원제는 《The Invention of Good and Evil: A World History of Morality》다. 옥스퍼드대 출판부는 이 책을 “변화하는 도덕 규범과 가치의 관점에서 인류사를 새롭게 조망한 책”이라고 소개한다. 독일어판은 《Moral: Die Erfindung von Gut und Böse》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으며, 독일 비소설상 후보에 오르고 《슈피겔》 베스트셀러에 오른 바 있다.

자우어가 그리는 도덕의 역사는 약 500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책의 출발점은 거창한 종교나 철학 체계가 아니다. 먼저 등장하는 것은 생존이다. 인간의 조상은 약한 개인으로는 살아남기 어려웠고, 무리를 이루어야 했다. 사냥하고, 나누고, 돌보고, 속이는 자를 경계하고, 규칙을 어긴 자를 제재하는 과정에서 도덕의 기초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의 서평도 이 책이 초기 인류에게 협력이 “첫 번째 중요한 도덕적 전환”이었다는 관점에서 출발한다고 소개했다.

책이 흥미로운 지점은 도덕을 고상한 이상이 아니라 협력의 기술로 본다는 데 있다. 도덕은 착한 마음의 장식이 아니라, 함께 살기 위한 장치다. 누가 믿을 만한 사람인가. 누가 공동체의 이익을 해치는가. 누구에게 보상하고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 것인가. 이런 판단들이 반복되며 인간 사회는 점점 복잡한 도덕 감각을 갖게 됐다.

자우어는 도덕의 역사를 집단의 확장과 연결한다. 처음에는 가족과 가까운 친족이 도덕적 관심의 중심이었다. 그러나 인구가 늘고 농업이 시작되고 도시와 국가가 등장하면서 낯선 사람과의 협력이 중요해졌다. 내 집단의 범위는 조금씩 넓어졌다. 오늘날 우리가 인권, 평등, 차별 금지, 동물 윤리 같은 문제를 도덕의 이름으로 말할 수 있는 것도 이 긴 확장의 결과라는 설명이다.

이 대목에서 책은 피터 싱어가 말한 ‘원의 확대’를 떠올리게 한다. 도덕적 고려의 원이 가족에서 부족으로, 부족에서 국가로, 국가에서 인류 전체와 비인간 생명으로 넓어졌다는 생각이다. 자우어 역시 현대 도덕의 중요한 변화로 포용성의 확대를 든다. 과거에는 특정 성별, 계급, 인종, 연령의 사람에게만 주어졌던 권리가 오늘날에는 보편적 인권의 언어로 말해진다. 100여 년 전만 해도 ‘특권’이었던 것이 이제는 ‘권리’가 된 셈이다.

하지만 이 책은 단순한 진보 서사가 아니다. 도덕은 인간을 협력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인간을 갈라놓기도 했다. 도덕은 “함께 살자”는 언어이면서 “저들은 틀렸다”는 언어이기도 하다. 오늘날 정치와 SNS에서 흔히 벌어지는 도덕적 진영화가 그 사례다. 선악의 언어는 공동체를 지탱하지만, 한편으로는 상대를 악으로 낙인찍는 무기가 된다. 《뉴요커》는 이 책이 도덕을 “발견”이 아니라 사회·문화·진화의 역사 속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본다고 평가하며, 현대의 도덕적 갈등을 이해하는 틀을 제공한다고 소개했다.

책의 장점은 방대한 시간대를 하나의 질문으로 꿰어낸다는 점이다. 인류의 진화, 수렵채집 사회, 농업혁명, 국가의 탄생, 불평등의 심화, 근대 인권의 등장, 오늘날의 문화전쟁까지 이어지는 흐름을 “도덕은 어떻게 변해왔는가”라는 질문으로 묶는다. 위트레흐트대에서 윤리학을 가르치는 자우어는 철학자이지만, 이 책에서는 철학만이 아니라 진화생물학, 인류학, 역사학, 심리학의 논의를 폭넓게 끌어온다. OUP는 저자를 위트레흐트대 윤리학 교수로 소개하며, 이 책이 재러드 다이아몬드, 유발 하라리, 데이비드 그레이버·데이비드 웽그로, 스티븐 핑커 독자에게도 호소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다만 논쟁적인 지점도 있다. 인간 도덕의 특수성을 강조하는 책의 전제는 최근 동물 인지와 생태윤리 연구의 흐름과 긴장 관계에 놓인다. 인간에게만 도덕이 있는가, 아니면 다른 동물에게도 원초적 규범과 공감, 협력의 질서가 있는가. 이 질문 앞에서 자우어의 서술은 때로 인간 중심적으로 읽힐 수 있다. 특히 인간과 동물을 대비하는 방식은 독자에 따라 설득력보다 불편함을 줄 수 있다.

그럼에도 《선악의 발명》이 던지는 질문은 작지 않다. 우리는 왜 선을 말하면서 서로를 미워하는가. 왜 평등을 말하면서 새로운 배제를 만들어내는가. 왜 도덕은 협력의 언어인 동시에 분열의 언어가 되는가. 저자는 도덕이 인간의 본성 안에 고정된 완성품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계속 조정되어온 발명품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도덕은 앞으로도 바뀔 수 있다.

책을 덮고 남는 것은 선악에 대한 확신보다 선악을 말하는 인간에 대한 의문이다. 인간은 도덕적 동물이다. 그러나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가장 위험한 동물이기도 하다. 우리는 정의의 이름으로 협력할 수 있고, 정의의 이름으로 타인을 추방할 수도 있다. 《선악의 발명》은 도덕이 우리를 얼마나 멀리 데려왔는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그 도덕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는 여전히 우리에게 남겨진 문제라고 말한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