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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환단고기를 읽는 마음, 역사가 아니라 욕망을 본다

[동이족이 세계 최초의 고대 문명을 만들었다고 기록한 『환단고기』. 학계에서는 위서(僞書)로 보고 있다.]

환단고기를 둘러싼 논쟁은 늘 비슷한 자리로 돌아온다. 누군가는 그것을 잃어버린 민족사의 복원이라 말하고, 또 누군가는 근거 없는 위서라 잘라 말한다. 논쟁은 오래됐지만, 그때마다 더 흥미로운 것은 텍스트 자체보다 그 텍스트를 둘러싼 열기다. 왜 어떤 사람들은 환단고기에 그토록 강하게 매혹되는가. 왜 누군가는 그것을 역사로 믿고 싶어 하는가. 환단고기를 둘러싼 소란은 결국 한 권의 책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역사를 통해 무엇을 얻고 싶어 하는가에 관한 질문에 더 가깝다.

환단고기의 가장 강한 유혹은 단순하다. 우리는 생각보다 훨씬 더 위대했고, 훨씬 더 오래됐으며, 세상의 중심에 있었다는 이야기다. 상처 입은 자존감일수록 이런 서사에 쉽게 반응한다. 현실의 역사는 늘 복잡하고 고단하며, 때로는 패배와 굴욕의 기억까지 품고 있다. 하지만 욕망이 만들어내는 역사는 훨씬 통쾌하다. 애매한 증거도 불편한 반론도 필요 없다. 중요한 것은 사실이 아니라 위안이다. 그래서 환단고기의 문제는 단순히 진위 여부에만 있지 않다. 더 큰 문제는 그것이 역사를 탐구의 대상이 아니라 심리적 보상의 수단으로 바꾸어버린다는 데 있다.

역사는 듣기 좋은 이야기라고 해서 곧바로 역사가 되지 않는다. 민족적 자부심을 고양한다고 해서 자동으로 사료가 되지도 않는다. 역사란 불편한 증거와 맞서는 일이고, 내가 믿고 싶은 것보다 확인할 수 있는 것을 우선하는 태도다. 그런 점에서 환단고기를 대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애국심이 아니라 검증 가능성이다.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인지, 민족 감정을 북돋우는지, 통쾌한지 여부는 역사 판단의 기준이 될 수 없다. 그것은 문학이나 신화의 영역에서는 얼마든지 존중받을 수 있지만, 역사에서는 다르다. 역사는 감동보다 근거를 먼저 요구한다.

물론 여기에는 많은 이들이 반발할 것이다. 주류 학계가 너무 오랫동안 닫혀 있었고, 식민사관의 잔재를 충분히 걷어내지 못했으며, 기존 역사 서술에도 빈틈과 편견이 있다는 비판은 충분히 제기될 수 있다. 실제로 한국 고대사 연구가 더 풍부해져야 한다는 요구 자체는 정당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빈틈을 욕망으로 채울 수는 없다. 주류 서술이 불완전하다고 해서 아무 서술이나 대안이 되지는 않는다. 의심스러운 기존 역사관을 비판하는 일과, 근거가 취약한 서사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일은 전혀 다른 문제다.

환단고기를 둘러싼 논란이 자꾸 커지는 것은 어쩌면 한국 사회가 역사 문제를 너무 자주 정체성의 문제로만 다뤄왔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역사는 사실을 따지는 학문이기 전에 민족 자존심의 전장이 되었고, 그러다 보니 비판은 곧 매국처럼, 검증은 곧 식민사관처럼 몰리기 쉬웠다. 하지만 자존심과 진실은 같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진실을 견디는 자존심이 더 강한 자존심이다. 불편한 기록까지 감당할 수 있어야 성숙한 역사 인식이 된다. 믿고 싶은 이야기만 골라 껴안는 태도는 자부심이라기보다 불안에 가깝다.

환단고기를 무조건 금기시하거나 조롱하는 태도 역시 바람직하지는 않다. 중요한 것은 신봉도 비웃음도 아니라 구분이다. 신화는 신화로, 상상은 상상으로, 역사 연구는 역사 연구로 다뤄야 한다. 상상력은 문화적으로 의미 있을 수 있고, 민족 서사는 정서적 위안을 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사료의 자리를 대신할 수는 없다. 역사는 결국 증거와 해석의 긴장 속에서 세워진다. 그 긴장을 견디지 못하고 욕망만 남을 때, 역사는 지식이 아니라 믿음의 상품이 된다.

결국 환단고기 논쟁은 한국 사회가 얼마나 역사 앞에서 냉정할 수 있는가를 묻는 시험과도 같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 위안을 얻고 싶은가, 아니면 진실에 조금 더 가까이 가고 싶은가. 두 가지가 언제나 일치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역사 인식은 늘 불편하다. 하지만 바로 그 불편함을 받아들이는 데서 성숙이 시작된다. 듣기 좋은 과거보다 확인 가능한 과거를 선택하는 사회, 자존심보다 검증을 먼저 세우는 사회만이 역사와 건강하게 만날 수 있다.

환단고기는 그래서 한 권의 책이 아니라 거울에 가깝다. 그 책을 읽는 태도 속에서 우리는 한국 사회가 역사에 기대어 무엇을 위로받고 싶어 하는지, 얼마나 쉽게 사실보다 서사에 끌리는지, 그리고 진실보다 자존심을 먼저 세우고 싶어 하는지를 본다. 문제는 환단고기 자체보다, 그것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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