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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성공담보다 추락담이 주목 받는 요즘

배우 조진웅. 키위컴퍼니 제공

요즘 대중문화에서 가장 강력한 서사는 성공담이 아니라 추락담인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복귀보다 누군가의 몰락이 더 빠르게 퍼지고, 더 자극적으로 소비된다. 연예인의 호감도는 하루아침에 비호감으로 바뀌고, 그 변화의 속도는 이제 작품의 제작 속도보다 훨씬 빠르다. 문제는 그 파장이 더 이상 당사자 한 사람에게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예능 하나, 드라마 한 편, 영화 한 편은 수많은 배우와 스태프, 제작진, 투자자와 유통사가 함께 만든 결과물인데도, 주연급 인물 한 명의 논란이 터지는 순간 콘텐츠 전체가 흔들린다. 지금 한국 콘텐츠 산업이 마주한 가장 불편한 리스크는 바로 이것이다.

예전에도 스타의 사생활 논란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차원이 다르다. 플랫폼은 24시간 돌아가고, 알고리즘은 분노와 실망을 가장 빨리 확산시키며, 대중은 콘텐츠 자체보다 콘텐츠에 얽힌 도덕적 맥락을 먼저 소비한다. 작품 공개 시점에는 이미 촬영이 끝난 뒤고, 제작 당시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논란이 불거지기도 한다. 결국 제작진은 작품을 공개해도 욕을 먹고, 공개를 미뤄도 손해를 보고, 폐기하면 엄청난 비용을 감당해야 하는 삼중의 압박에 놓인다. 누군가에게는 연예인의 일탈이 한순간의 도파민일지 모르지만, 현장에선 그것이 곧 산업 전체의 불확실성으로 돌아온다.

더 큰 문제는 판단 기준이 없다는 데 있다. 어떤 경우에는 작품이 그대로 공개되고, 어떤 경우에는 홍보만 축소한 채 밀어붙이며, 또 어떤 경우에는 공개 자체가 무기한 보류된다. 형사 사건인지, 도덕적 논란인지, 개인적 일탈인지, 사회적 해악이 큰 사안인지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고는 하지만, 지금은 그 구분조차 제각각이다. 플랫폼의 성격에 따라, 국내 방송인지 글로벌 OTT인지에 따라, 작품의 규모와 팬덤의 크기에 따라 대응도 달라진다. 같은 문제를 두고도 누구는 사실상 퇴출되고, 누구는 조용히 화면에 남는다. 원칙이 없으니 판단은 늘 임시방편이 되고, 임시방편은 곧 불신으로 이어진다.

물론 예술과 윤리를 완전히 분리할 수는 없다. 공적 영향력이 큰 인물의 심각한 위법이나 폭력 행위에 대해 대중이 문제의식을 갖는 것은 자연스럽다. 제작사가 “작품만 봐 달라”고 말한다고 해서 시청자가 그렇게 해줄 의무도 없다. 오늘날 콘텐츠 소비는 작품 자체만이 아니라 출연자와 제작 환경, 윤리적 맥락까지 포함하는 경험이 됐다. 그런 현실을 외면한 채 “한 사람 때문에 왜 작품 전체를 묻느냐”고만 말하는 것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한 가지를 분명히 봐야 한다. 콘텐츠는 특정 연예인 한 사람의 소유물이 아니다. 한 편의 드라마와 예능, 영화에는 작가의 시간과 감독의 선택, 스태프들의 장시간 노동, 다른 배우들의 경력과 인생이 함께 들어 있다. 논란 당사자 한 사람을 중심으로 모든 판단이 이뤄질 때, 그 뒤에 있는 다수의 노동은 너무 쉽게 지워진다. 그들이 쏟아부은 시간과 전문성, 생계의 문제가 한순간에 부차적인 것으로 밀려나는 것이다. 그래서 이 문제는 단순히 “논란 있는 연예인을 계속 써도 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콘텐츠를 어떤 단위로 보고 책임을 어디까지 물을 것인가의 문제다.

이쯤 되면 업계와 사회가 함께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을 고민해야 할 때다. 모든 사안을 획일적으로 재단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몇 가지 기준은 있어야 한다. 수사 단계인지 유죄 확정인지, 사안이 폭력·성범죄·중대한 사기 등 중대한 공익성과 직결되는지, 작품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대체 가능성은 어느 정도인지, 공개 연기나 편집, 프로모션 축소 같은 중간 조치는 가능한지 같은 기준 말이다. 지금처럼 매번 여론의 풍향에 따라 즉흥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으로는, 제작비는 커지고 리스크는 더 예측 불가능해질 수밖에 없다.

K-콘텐츠가 세계적 산업이라고 말하는 시대라면, 이제는 그에 걸맞은 리스크 관리의 사회적 기준도 마련해야 한다. 우리는 콘텐츠를 국가 경쟁력이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그 콘텐츠가 한 사람의 논란 앞에서 어떤 원칙으로 운용돼야 하는지는 여전히 감정과 즉흥에 맡기고 있다. 그것은 산업에도, 시청자에게도, 창작자에게도 모두 불행한 일이다.

연예인의 추락은 언제나 대중의 강한 관심을 부른다. 그러나 그 추락이 너무 손쉬운 오락이 되어버릴 때, 가장 먼저 다치는 것은 작품이고, 결국 산업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누군가를 무조건 감싸는 태도도, 무조건 매장하는 태도도 아니다. 필요한 것은 원칙이다. 도파민은 빠르지만, 기준은 느리다. 그러나 결국 산업을 지키는 것은 빠른 분노가 아니라 느리고 단단한 기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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