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서브라인

[칼럼]“촉법이라 괜찮다”는 말이 아이들을 망친다

“촉법이라 괜찮다”는 말이 아이들을 망친다[c]파르트

무인매장은 조용하다. 점원도 없고, 계산대 앞에 선 사람을 바라보는 눈도 없다. 대신 천장 한쪽에 CCTV가 있고, 계산대에는 키오스크가 있다. 편리함을 위해 사람이 빠진 공간이다. 그런데 그 빈자리를 누군가는 범죄의 틈으로 보았다. 더 끔찍한 것은 그 틈으로 먼저 밀어 넣은 대상이 어른도, 공범도 아닌 어린 중학생들이었다는 점이다.

인천에서 18세 청소년이 만 13∼14세 중학생들에게 무인매장 절도를 시킨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너희는 촉법소년이라 처벌받지 않는다”는 말로 어린 학생들을 꼬드겼다고 한다. 훔친 돈을 나눠 갖자고 했고, 범행할 매장 위치와 이동 경로까지 알려줬다. 들통난 뒤에는 더 큰 범행을 강요했다는 혐의도 받았다.

이 사건에서 가장 섬뜩한 말은 바로 “처벌 안 받는다”는 문장이다. 이 말은 단순한 유혹이 아니다. 법의 보호 취지를 범죄의 면허증처럼 바꿔버리는 주문이다. 어린아이에게 “괜찮다”고 말하면서 사실은 돌아오기 어려운 선을 넘게 만드는 말이다. 죄책감을 덜어주는 척하지만, 실제로는 범죄의 책임과 기억을 아이의 삶에 새겨 넣는 말이다.

촉법소년 제도는 아이들이 마음껏 범죄를 저질러도 된다는 허가서가 아니다. 아직 충분히 성숙하지 못한 아이들에게 처벌보다 보호와 교정의 기회를 주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장치다. 그런데 사회 곳곳에서 이 제도는 종종 완전히 다른 언어로 소비된다. “어차피 처벌 안 받는다.” “나이 어려서 괜찮다.” “잡혀도 별일 없다.” 이런 말들이 아이들 사이에, 때로는 더 나이 많은 청소년이나 어른의 입을 통해 퍼진다.

문제는 그 말이 아이들을 보호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오히려 아이들을 가장 위험한 곳으로 데려간다. 범죄를 시킨 사람은 뒤에 숨고, 직접 행동한 아이들은 현장에서 붙잡힌다. 업주는 피해자가 되고, 아이들은 가해자가 된다. 법적 처벌을 받지 않더라도 그 경험은 사라지지 않는다. 경찰 조사, 보호자 호출, 학교와 친구들의 시선, 스스로에 대한 무너진 감각이 남는다. “처벌 안 받는다”는 말은 아이를 지켜주는 말이 아니라, 아이를 방패로 쓰는 말이다.

이번 사건의 피고인 역시 아직 18세다. 법적으로는 소년이다. 그래서 더 불편한 질문이 남는다. 우리는 어디서부터 실패한 것일까. 어린 중학생을 범죄에 끌어들인 청소년도, 그에게 이용당한 중학생들도 모두 성장 과정 어딘가에서 제대로 된 제동을 받지 못했다. 누군가는 법의 빈틈을 배웠고, 누군가는 두려움 때문에 따라갔고, 누군가는 무인매장이라는 손쉬운 목표를 범행 연습장처럼 여겼다.

물론 책임은 흐려져서는 안 된다. 어린 학생들을 이용해 절도를 교사하고, 협박과 공갈을 반복했다면 엄한 판단은 불가피하다. 법원이 실형을 선고하며 “어린 청소년들을 범죄 소굴에 빠지게 하는 범행”이라고 지적한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이미 소년원 송치 처분을 받은 뒤 다시 범행을 저질렀다면, 단순한 일탈이라는 말로 덮기 어렵다.

하지만 처벌만으로 이 사건을 끝내면 우리는 같은 뉴스를 또 보게 된다. 촉법소년 논란이 나올 때마다 사회는 대체로 두 갈래로 갈라진다. 한쪽은 “더 세게 처벌해야 한다”고 말하고, 다른 쪽은 “아이들을 낙인찍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둘 다 필요한 말이다. 그러나 둘 중 하나만으로는 부족하다. 처벌은 경계를 세우지만, 경계 안으로 다시 돌아오는 길까지 만들지는 못한다. 보호는 기회를 주지만, 책임 없는 보호는 제도의 신뢰를 무너뜨린다.

지금 필요한 것은 아이들에게 정확한 언어를 가르치는 일이다. “촉법이라 괜찮다”가 아니라 “나이가 어려도 책임은 남는다”는 말. “잡혀도 처벌 안 받는다”가 아니라 “범죄는 피해자를 만들고, 너 자신도 망가뜨린다”는 말. “친구가 시켜서 했다”가 아니라 “싫다고 말하고 빠져나오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말이다. 법 교육은 교과서 속 문장이 아니라, 실제 생활의 위험을 알아보는 능력이 되어야 한다.

무인매장도 더 이상 단순한 편의 공간으로만 볼 수 없다. 사람이 없는 가게는 편리하지만, 동시에 관리의 공백을 만든다. 청소년들이 쉽게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이라면 예방 장치도 현실적으로 설계해야 한다. CCTV를 늘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지역 경찰, 학교, 지자체, 점주가 반복 피해 매장을 공유하고, 청소년 범죄가 잦은 시간대와 동선을 관리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기술만 있고 사람이 없는 공간에는 결국 다른 형태의 사람이 개입해야 한다.

무엇보다 우리는 아이들이 범죄를 ‘놀이’나 ‘미션’처럼 받아들이는 환경을 경계해야 한다. 무인매장 절도는 누군가에게는 장난처럼 시작될 수 있다. 하지만 피해 업주에게는 생계의 문제이고, 가담한 아이에게는 인생의 첫 범죄 기록이 될 수 있으며, 이를 지시한 사람에게는 더 큰 범죄로 가는 발판이 된다. 작은 절도는 작게 끝나지 않는다. 죄의식 없이 한 번 넘은 선은 다음번에 더 쉽게 넘게 된다.

이번 사건이 남긴 가장 큰 경고는 촉법소년 제도의 허점 자체보다, 그 허점을 이용하는 문화다. 법을 모르는 아이보다 더 위험한 것은 법을 반쯤 아는 아이들이다. “처벌 안 받는다”는 말만 알고, “피해자가 생긴다”는 사실은 모른다. “나이가 어려 감옥에 가지 않는다”는 말은 알지만, “그래도 삶의 방향은 망가질 수 있다”는 사실은 모른다.

아이들을 범죄로부터 보호한다는 것은 아이들을 무조건 감싸는 일이 아니다. 해도 되는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을 분명하게 알려주는 일이다. 잘못했을 때 책임을 지게 하되,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길을 열어두는 일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누군가가 아이들의 미성숙함을 이용해 범죄를 시킬 때, 사회가 훨씬 더 단호하게 개입하는 일이다.

무인매장에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그곳에서 벌어진 일은 우리 사회가 아이들을 어떻게 방치하고 있는지 보여줬다. 키오스크 앞에 선 중학생들의 뒤에는 한 명의 10대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어려서 괜찮다”는 잘못된 통념, 범죄를 가볍게 여기는 문화, 반복되는 소년범죄에 늦게 반응하는 제도가 함께 서 있었다.

아이들에게 정말 해줘야 할 말은 이것이다. “촉법이라 괜찮다”가 아니다. “너는 아직 어리기 때문에 더 조심해야 한다”다. 어리다는 것은 죄를 지어도 된다는 뜻이 아니라, 더 늦기 전에 멈춰 세워야 한다는 뜻이다. 그 멈춤을 가르치지 못한다면, 우리는 또 다른 무인매장 앞에서 같은 질문을 반복하게 될 것이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