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 보이지 않게 바뀌었다…초등 피해 5.0%, 중 2.1%, 고 0.7%로 전 학교급 증가

쉬는시간 교실 안에서 한 학생이 웃음거리가 된다. 점심시간에는 몇몇이 같은 자리에 앉지 않는다. 하교 뒤에는 단체 대화방에서 말없이 사람을 빼거나, 짧은 조롱이 캡처돼 번진다. 예전의 학교폭력이 운동장 싸움과 복도 충돌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면, 지금의 폭력은 훨씬 일상적이고 더 오래 남는 방식으로 교실 안에 스며든다. 2025년 학교폭력 실태조사가 보여준 것은 단순한 수치 상승만이 아니다. 한국 학교의 갈등이 더 눈에 잘 띄지 않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교육부와 17개 시도교육청이 발표한 2025년 1차 학교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피해응답률은 2.5%였다. 지난해 1차 조사보다 0.4%포인트 올랐다. 초등학교는 5.0%, 중학교는 2.1%, 고등학교는 0.7%로 모든 학교급에서 상승했다. 초등학생 20명 중 1명꼴로 피해 경험을 답한 셈이다. 학교폭력이 특정 학교, 특정 연령, 특정 문제학생의 일탈이라는 기존 인식으로는 더 설명하기 어려운 국면에 들어섰다는 뜻이다.
보이는 폭력보다 보이지 않는 폭력
더 중요한 것은 폭력의 성격 변화다. 피해 유형에서 가장 높은 비중은 언어폭력 39.0%였다. 그러나 전년보다 0.4%포인트 줄었다. 신체폭력도 14.6%로 0.9%포인트 감소했다. 반면 집단 따돌림은 16.4%로 0.9%포인트 증가했고, 사이버폭력은 7.8%로 0.4%포인트 늘었다. 밖으로 드러나는 거친 충돌은 줄어도, 관계에서 밀어내고 화면 속에서 반복되는 폭력은 커지고 있다는 뜻이다. 학교폭력은 줄어든 것이 아니라 더 안 보이게 바뀌었다는 해석이 가능해진다.
학교급별 수치도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자료에 따르면 학교급이 올라갈수록 언어폭력, 집단 따돌림, 사이버폭력, 성폭력 비중은 높아지고, 신체폭력과 강요, 금품갈취 비중은 낮아졌다. 사이버폭력 비중은 초등학교 6.5%, 중학교 9.6%, 고등학교 10.8%였고, 집단 따돌림도 초등학교 14.9%, 중학교 18.6%, 고등학교 19.0%로 올라갔다. 학년이 높아질수록 폭력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몸보다 관계를 겨누고 교실보다 화면 속에서 오래 지속되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는 뜻이다.
이 변화는 현장에서도 비슷하게 감지된다. 수도권의 한 중학교 교사는 “예전에는 싸움이 나면 바로 드러났는데, 지금은 교실 분위기 자체가 한 학생을 조용히 밀어내는 방식으로 가는 경우가 더 많다”며 “겉으로는 조용한데 당사자는 매일 학교 오는 게 버거운 상황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교실에서 시작해 생활권으로 번진다

조사표가 가리키는 학교의 풍경도 이 해석을 뒷받침한다. 피해 장소는 학교 안이 70.5%였고, 교실 안 28.9%, 복도·계단 16.6%, 운동장·체육관·강당 9.4% 순이었다. 피해 시간은 쉬는시간 30.1%, 점심시간 20.9%가 가장 높았다. 수업 중보다 학생들끼리 더 자주 마주치고, 말 한마디와 눈빛 하나가 분위기를 좌우하는 틈에서 갈등이 커진다는 뜻이다. 여기에 사이버공간 6.4%, 학원·학원 주변 5.5%, 집과 집 근처 4.1%가 더해진다. 학교폭력은 교문 안에서 시작해 생활권 전체로 번지는 연속된 문제로 바뀌고 있다.
가장 먼저 흔들리는 초등학교
초등학교 수치는 이번 조사에서 가장 무겁게 읽힌다. 피해응답률 5.0%, 가해응답률 2.4%, 목격응답률 10.2%로 모두 학교급 가운데 가장 높았다. 학교폭력이 중·고등학생 문화의 문제라는 오래된 인식은 이 대목에서 설 자리를 잃는다. 이미 초등학교 교실에서도 조롱, 배제, 관계 갈등이 충분히 폭력의 형태를 띠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교육부가 초등학교 저학년을 대상으로 심의 전 조정·상담을 진행하는 ‘관계회복 숙려제도’ 도입을 추진한 것도 이런 흐름을 의식한 조치로 읽힌다.
학년이 오를수록 더 은밀해진다
중·고등학교로 갈수록 폭력은 더 비가시화된다. 맞고 다치는 흔적보다, 함께 밥을 먹지 않는 방식, 대화방에서 한 사람을 지우는 방식, 말없이 분위기를 몰아가는 방식이 더 강한 상처를 남기는 구조다. 교실은 조용해 보여도 관계는 이미 무너져 있을 수 있다. 이번 조사가 던진 핵심은 학교폭력이 줄었느냐가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변형되고 있느냐에 있다. 그 변화의 방향은 분명 관계 배제와 온라인 확산 쪽이다.
경기도 지역 한 상담교사는 “학생들이 상담실에 와서 맞았다고 말하는 경우보다, ‘애들이 저를 없는 사람처럼 대해요’, ‘단체방에서 제가 빠져 있었어요’라고 말하는 경우가 더 많다”며 “아이들은 이걸 처음엔 폭력이라고도 생각하지 못한 채 오래 버티다가 무너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가해의 시작은 사소한 갈등이었다

가해 이유 역시 학교 현장의 긴장을 드러낸다. 전체 응답에서 가장 높은 항목은 “장난이나 특별한 이유 없이” 32.2%였다. 이어 “상대방이 먼저 나를 괴롭혀서” 27.5%, “상대방과 오해가 있거나 의견이 달라서” 12.0%, “상대방의 행동이 마음에 안 들어서” 11.3%가 뒤를 이었다. 물론 이는 가해자의 자기합리화가 섞인 응답일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오늘의 학교폭력 상당수가 거대한 악의보다 작은 갈등을 다루지 못하는 교실, 감정을 조절하지 못한 관계, 장난과 모욕의 경계를 흐리는 분위기 속에서 자라고 있다는 사실도 보여준다. 폭력은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되지 않는다. 사소한 말투와 반복된 조롱, 분위기에서의 배제가 쌓이다 사건이 된다.
신고보다 먼저 두려운 것
피해 학생이 모두 즉시 도움을 청하는 것도 아니다. 피해 사실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는 응답은 전체 7.8%였다. 알리지 않은 이유로는 “일이 커질 것 같아서”가 24.5%로 가장 높았고, “별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21.3%, “이야기해도 소용이 없을 것 같아서” 13.7%, “더 괴롭힘을 당할 것 같아서” 12.0%가 뒤를 이었다. 이 수치는 학교폭력 대응 체계가 학생에게 반드시 안심의 언어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신고가 보호의 시작이 아니라 더 큰 분쟁의 출발처럼 보일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교육부가 소개한 현장 간담회에서도 학생·교원·학교폭력 제로센터 지원단은 공통적으로 학교폭력에 대한 민감도가 높아진 점을 언급하는 한편, 학생 간 사소한 갈등이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 심의로 이어지는 이른바 ‘갈등의 사법화’에 대한 우려를 제기했다. 학교가 갈등을 풀어내는 공간이기보다, 갈등을 사건으로 넘기는 공간처럼 작동할 수 있다는 문제의식이다. 여기에는 학생의 감정조절과 관계 맺기 역량 부족이라는 더 깊은 배경이 놓여 있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이 지점에서 전문가 진단도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모상현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학교폭력 예방교육지원센터장은 “학생들이 스스로 갈등을 이해하고 조정할 수 있는 역량을 기르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말하며 “교육적 해결을 통해 학생들이 건강한 관계 맺기와 회복을 경험할 때 비로소 학교폭력 예방의 선순환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학교폭력의 핵심이 단순한 처벌 강화보다, 초기 갈등을 어떻게 조정하고 관계를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의 문제로 옮겨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침묵하는 교실의 다수

목격자의 태도는 더 직접적이다. 피해학생을 위로하고 도와줬다는 응답은 34.6%였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응답도 30.7%였다.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는 그 비율이 각각 35.3%였다. 가해자를 직접 말렸다는 응답은 17.3%에 그쳤다. 폭력이 보이는데도 나서지 못하는 교실이라면, 그곳은 이미 신뢰보다 침묵이 더 안전한 공간이 됐다는 뜻이다. 또래집단의 분위기를 거스르는 순간 자신도 표적이 될 수 있다는 불안, 어른에게 말해도 관계가 더 꼬일 수 있다는 불신이 방관을 만든다. 학교폭력은 가해자와 피해자 둘만의 문제가 아니라, 개입을 주저하는 다수의 공기까지 포함한 공동체 문제다.
사건 처리보다 공동체 복원이 먼저다
교육부는 이번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갈등의 교육적 해결 지원과 사회정서교육 강화를 후속 과제로 제시했다. 관계개선 지원단 확대, 학교급별·폭력 유형별 관계회복 프로그램 개발, 초등 저학년 대상 관계회복 숙려제도 도입 추진, 2026년 전면 도입을 목표로 한 사회정서교육 준비, 사이버폭력 및 디지털 성폭력 대응 강화 등이 핵심이다. 방향은 맞다. 다만 자료가 보여주는 현실은 교육자료 몇 장으로 풀릴 수준을 넘어선다. 교사는 행정과 사건 처리의 압박 속에 놓여 있고, 학생은 감정을 다루는 법을 충분히 배우지 못한 채 스마트폰과 단체방 속 관계에 더 오래 노출돼 있다. 학교폭력 대응이 심의와 처분 중심에 머물면, 폭력은 계속 더 은밀한 곳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
이해숙 교육부 학생건강정책국장도 “학교 공동체의 신뢰 제고와 사회정서 회복이 시급하다는 점을 깊이 인식하고, 학생들이 일상적 갈등을 교육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다변화되는 사이버폭력 양상에도 대응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관계부처와 긴밀히 협력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번 조사 결과를 두고 교육부가 학교폭력의 양적 증가만이 아니라, 학교 공동체의 신뢰와 정서 회복 문제를 함께 보고 있음을 보여주는 발언이다.
이번 2025년 1차 학교폭력 실태조사는 한국 학교가 놓치고 있던 장면을 다시 드러냈다. 폭력은 운동장 한복판의 싸움만이 아니다. 쉬는시간의 짧은 웃음, 점심시간의 빈자리, 하교 뒤 대화방의 침묵과 조롱도 폭력의 일부가 된다. 초등학교에서 더 빨리 시작되고, 중·고등학교로 갈수록 더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번지며, 학생들은 신고보다 관계의 악화를 먼저 걱정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학교폭력 숫자의 상승 자체에 놀라는 일보다, 학교가 학생들에게 갈등을 조정하고 감정을 다루고 관계를 회복하는 법을 가르치고 있는지 다시 묻는 일이다. 이번 조사는 그 질문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