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상생협약에 출판계 반발…“거래구조 개선 로드맵 제시하라”

쿠팡이 출판계와 상생 협약을 추진했지만, 유통 구조를 둘러싼 갈등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협약 자체보다 거래 관행과 구조 개선 여부가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출판계는 형식보다 실행 계획을 요구했다.
한국출판인회의는 22일 발표한 성명에서 쿠팡과 대한출판문화협회의 협약에 대해 “면피성 ‘상생’은 해답이 아니다”라며 “선행조치와 로드맵을 제시하라”고 밝혔다. 협약 체결 이후에도 출판계 내부에서는 플랫폼 중심 유통 구조에 대한 불신이 해소되지 않았다는 인식이 확인됐다.
앞서 쿠팡은 지난 10일 대한출판문화협회와 독서 진흥 및 출판 생태계 발전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양측은 정기 협의체를 구성해 유통 구조 개선과 산업 발전 방안을 논의하기로 했다. 쿠팡은 이를 통해 출판과 유통 간 협력 체계를 구축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그러나 출판인회의는 협약의 실질성을 문제 삼았다. 성명에서 “구조적 문제가 해소되지 않은 채 ‘상생협약’을 내세우는 것은 원인 진단 없이 해법부터 합의하려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밝혔다. 협약 체결 이전에 기존 거래 구조에 대한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출판계가 제기한 문제는 거래 전반에 걸쳐 있다. 출판인회의는 “업계 상황에 맞지 않는 거래 계약, 느린 정산, 성장 장려금 강요, 판매 데이터의 상업적 활용 등 문제가 누적돼 왔다”고 밝혔다. 유통 플랫폼 확대 과정에서 계약 조건과 거래 방식이 일방적으로 설정됐다는 인식이 반영됐다.
특히 정산 지연과 데이터 활용 문제는 중소 출판사와 지역 서점에 직접적인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판매 데이터가 플랫폼 내부 자산으로 축적되는 구조에서는 출판사와 서점이 시장 흐름을 파악하는 데 제약이 발생할 수 있다. 거래 조건 협상력 역시 플랫폼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약화되는 구조다.
출판인회의는 유통 구조 변화가 산업 전반의 가치사슬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강조했다. 성명에서 “서점 생태계가 위축되고 작가·출판사·서점·독자 사이의 공정한 가치사슬이 흔들리고 있다”고 밝혔다. 유통 채널 변화가 단순 판매 방식 변화에 그치지 않고 창작과 소비 구조 전반에 영향을 준다는 판단이다.
이 같은 갈등은 온라인 플랫폼 확장이 출판 유통 시장에 미친 영향과 맞물려 있다. 대형 플랫폼은 물류 시스템과 가격 경쟁력을 기반으로 시장 점유율을 빠르게 확대해 왔다. 반면 오프라인 서점과 중소 출판사는 판매 채널 다변화에 한계를 보이면서 플랫폼 의존도가 높아지는 흐름이 이어졌다.
출판계 내부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가격 경쟁 중심 구조를 강화시키고, 콘텐츠 다양성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특정 유통 채널에 판매가 집중될 경우 베스트셀러 중심 구조가 강화되고, 중소 출판사의 신간이나 비주류 콘텐츠는 시장 접근성이 낮아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핵심 쟁점은 협약의 실행 가능성이다. 출판인회의는 “지금 필요한 것은 명분이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고치고 언제까지 이행할지에 관한 구체적이고 검증 가능한 선조치와 이행 로드맵”이라고 밝혔다. 단순한 협의체 구성만으로는 구조 문제 해결이 어렵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또한 “상생이라는 말로 문제의 핵심을 흐리거나 성급한 형식적 조치로 책임의 본질을 회피하는 시도를 경계한다”고 밝혔다. 협약 이후 실제 거래 조건 개선과 제도 변화가 뒤따르지 않을 경우 갈등이 반복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출판인회의는 향후 대응 방향도 제시했다. “출판사·서점·작가·독자와 함께 건강한 유통 질서를 지키기 위해 업계의 연대와 공론을 계속 확장할 것”이라며 “필요할 경우 관계기관과의 제도 개선 논의에도 임하겠다”고 밝혔다. 동시에 “쿠팡이 책임 있는 조치와 성과를 투명하게 제시한다면 이후 대화에 나설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논란은 플랫폼 중심 유통 구조와 전통 출판 생태계 간 충돌이라는 성격을 갖는다. 유통 효율성과 산업 다양성 사이의 균형 문제도 함께 제기되고 있다. 협약 이후 실제 거래 방식 변화와 제도 개선 여부가 향후 출판 유통 구조 재편의 방향을 가를 변수로 떠올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