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사장’ 첫 판단 앞두고 충돌 확산…노란봉투법, 고용문화구조 바꿀까

불공정행위 근절 및 상생 방안 마련 촉구 기자회견[사진:참여연대]
개정 노동조합법 2·3조 시행 이후 원청이 하청노조의 사용자에 해당하는지를 둘러싼 분쟁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첫 판단은 이르면 23일 노동위원회에서 나온다. 이번 결정은 개별 사건을 넘어 원·하청 교섭 구조 전반에 기준을 제시하는 사례가 될 가능성이 크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법 시행 이후 9일간 하청노조 683곳이 287개 원청 사업장을 상대로 단체교섭을 요구했다. 그러나 실제 공고를 거쳐 교섭 절차에 들어간 사업장은 13곳에 그쳤다. 상당수 원청이 사용자 해당 여부를 이유로 교섭 공고를 하지 않고 있다.
현장에서는 노조와 원청의 인식 차이가 뚜렷하게 드러난다. 백화점·면세점 판매 노동자들로 구성된 노조는 롯데·신세계·현대 등 주요 유통기업을 상대로 시정 신청에 나서며 “백화점·면세점은 하청 노동자의 영업시간, 복장 등을 실질적으로 통제하는 진짜 사장”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교섭 요구를 했지만 단 한 곳도 공고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노조는 원청이 실질적 사용자 지위에 있음에도 교섭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반면 원청 측은 법적 고용관계를 기준으로 입장을 정리하고 있다. 서울 지역 주요 대학들은 노조에 공식 회신을 보내 “우리 대학이 사용자라고 판단되지 않는다”며 교섭 요구를 거부했다. 대학 측은 시설관리·미화·경비 등 업무가 외주 계약에 따라 운영되는 만큼 고용 책임은 하청업체에 있다는 입장이다.
이 같은 충돌은 법 시행 자체보다 기존 고용구조와의 괴리에서 비롯됐다. 국내 산업 현장에서는 원청이 업무 방식, 인력 배치, 근무 조건 등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면서도 법적 고용관계는 하청업체가 담당하는 구조가 일반화돼 있다. 교섭 상대와 실질 결정권자가 분리된 상태가 장기간 유지돼 왔다.
개정법은 이 구조를 직접 겨냥한다. 근로계약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거나 결정하는 경우 사용자로 볼 수 있도록 했다. 기존에는 근로계약 관계가 사용자 판단의 핵심 기준이었지만, 이제는 실질적 영향력이 판단 요소로 포함된 것이다.
문제는 ‘실질적 지배·결정’의 범위가 명확히 정립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영업시간 통제, 업무 지시, 근무 복장 규정, 인력 운영 개입 등이 어디까지 사용자 책임으로 연결되는지에 대한 판단 기준은 아직 축적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동일한 사안을 두고 노조와 원청의 해석이 크게 엇갈리고 있다.
이번 첫 판단이 주목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노동위원회 결정은 법원의 확정 판결은 아니지만 초기 기준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이후 유사 사건에서 반복적으로 인용되며 사실상 교섭 가이드라인으로 기능할 수 있다.
산업계는 이번 판단이 외주 운영 구조 전반에 미칠 영향을 주시하고 있다. 원안에 따르면 한 대기업 인사노무 부서장은 “기존 노동위의 판정례나 법원 판례가 축적되지 않은 상황에서 첫 판단이 향후 분쟁의 기준점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며 “하청 노조의 교섭 전략뿐 아니라 기업 대응 방식까지 좌우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 발언은 익명 인용으로, 현장 분위기를 보여주는 보조적 의미로 해석된다.
현장에서는 이미 변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하청노조의 교섭 요구가 급증하면서 사용자성 판단을 둘러싼 분쟁이 동시에 증가하는 흐름이다. 단일 업종에 국한되지 않고 유통, 교육, 제조 등 다양한 산업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는 법 적용 범위가 특정 산업이 아닌 구조 전반을 대상으로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정책 효과를 둘러싼 전망은 엇갈린다. 노조 측에서는 원·하청 간 책임 구조를 현실에 맞게 조정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반면 산업계에서는 기준이 명확히 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분쟁이 급증할 가능성을 우려한다. 실제로 교섭 요구가 집중되면서 노동위원회 판단 건수도 빠르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시행 초기 혼선을 줄이기 위해 판단 기준을 축적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노동위원회를 중심으로 사례별 결정을 쌓아 해석을 구체화할 계획이다. 다만 판례 축적까지는 시간이 필요한 만큼, 단기적으로는 현장 혼선이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번 판단의 핵심은 단순한 법 해석을 넘어선다. ‘계약은 하청, 통제는 원청’으로 유지돼 온 구조를 제도적으로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지가 걸려 있다. 결과에 따라 원청의 교섭 참여 범위, 비용 부담 구조, 외주 운영 방식이 함께 조정될 가능성이 있다.
첫 판단 이후에도 분쟁은 이어질 전망이다. 노사 양측이 결과에 따라 행정소송에 나설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초기 판단이 누적되면서 기준이 정리되는 과정이 불가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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