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불 회고전…기술 낙관 뒤에 숨은 불안, 리움미술관 ‘이불:1998 이후’ 4일 개막

리움미술관에 들어선 순간 시야를 가득 채우는 것은 길이 17m에 달하는 은빛 비행선이다. 반짝이는 금속 표면을 지닌 거대한 풍선 ‘취약할 의향–메탈라이즈드 벌룬’은 공중에 떠 있지만, 동시에 어디론가 추락할 듯한 불안을 품고 있다. 기술과 미래를 향한 인류의 낙관과 그 균열을 동시에 드러내는 이 장면은 작가 이불이 오랫동안 붙잡아온 질문을 압축한다. “우리가 믿어온 미래는 얼마나 견고한가.”
리움미술관에서 4일 개막한 ‘이불: 1998 이후’는 1990년대 후반부터 현재까지의 작업을 총망라한 대규모 전시다. 조각, 설치, 평면, 드로잉 등 150여 점이 출품돼 작가의 작업 궤적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2021년 서울시립미술관 전시가 초기 퍼포먼스와 신체 작업에 집중했다면, 이번 전시는 그 이후 약 30년간의 변화를 따라간다. 전시의 중심에는 급진적 신체 퍼포먼스로 주목받던 ‘여전사’ 시기를 지나, 기술과 문명, 폐허를 사유하는 단계로 이동한 작가의 전환이 놓여 있다.
대표작 ‘취약할 의향’은 이 변화의 핵심을 보여준다. 작품이 참조한 20세기 초 체펠린 비행선은 한때 기술 진보의 상징이었지만 1937년 힌덴부르크 참사 이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불은 이 이미지를 차용해 인류가 꿈꾸는 이상과 그것이 내포한 붕괴 가능성을 동시에 드러낸다. 눈부시게 빛나는 표면은 미래를 약속하는 듯하지만, 그 내부는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구조를 암시한다.

전시 공간 전반은 이러한 긴장을 확장한다. 거울과 LED 조명으로 구성된 ‘태양의 도시 II’는 빛과 반사가 만들어내는 과잉된 시각 경험을 통해 질서가 해체된 세계를 체험하게 한다. 완벽하게 설계된 미래 도시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방향 감각을 잃게 만드는 폐허의 이미지가 겹친다. 큐레이터 곽준영 전시기획실장은 이를 두고 “빛과 어둠이 충돌하며 파편화된 세계를 은유한다”고 설명했다.
이불의 초기 대표작인 ‘사이보그’ 연작 역시 같은 문제의식을 다른 방식으로 제시한다. 고대 조각을 연상시키는 매끄러운 신체는 머리와 팔다리가 결여된 불완전한 상태로 제시된다. 완전성을 향한 인간의 욕망과 그것이 만들어내는 불안을 동시에 드러내는 장치다. 기술이 인간을 보완할 것이라는 기대와, 결국 그 기술이 또 다른 결핍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냉소가 교차한다.

이번 전시에서 주목할 지점은 이러한 문제의식이 신체를 넘어 공간과 구조로 확장됐다는 점이다. DMZ 감시초소 폐자재로 만든 ‘오비드 V’, 난파선처럼 보이는 ‘애프터 브루노 타우트’, 미로 형태의 ‘비아 네가티바’ 등은 인간 신체를 중심으로 하던 작업이 건축적 스케일로 이동했음을 보여준다. 이상향을 향한 구조물은 동시에 붕괴의 이미지를 품고 있으며, 미래와 폐허가 분리되지 않는 상태로 공존한다.
이 변화는 단순한 스타일 전환이라기보다 시대 인식의 이동에 가깝다. 1980~90년대 한국 현대미술이 사회·정치적 비판을 전면에 내세웠다면, 이후 작가들은 기술과 자본, 문명 자체에 대한 질문으로 시선을 확장해왔다. 이불의 작업 역시 신체를 통한 저항에서 출발해, 기술 문명이 만들어내는 구조적 모순을 탐구하는 방향으로 이동했다.
김성원 리움미술관 부관장은 “이불은 시대와 지역, 양식을 가로지르며 인간과 기술, 권력의 관계를 탐구해온 작가”라며 “이번 전시는 그 사유의 흐름을 한눈에 보여준다”고 말했다. 실제로 전시를 관통하는 이미지는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가 분리되지 않는 상태다. 반짝이는 표면 아래 불안정한 구조가 자리하고, 완성된 형태는 동시에 붕괴의 가능성을 내포한다.
이 전시는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된다. 기술은 인류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고 있는가. 혹은 우리가 믿어온 미래는 이미 균열을 안고 있는가. 이불의 작업은 명확한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관람객을 그 경계 위에 세운다. 눈부신 미래와 무너진 폐허 사이, 그 간극을 스스로 바라보게 한다.
전시는 리움미술관과 홍콩 M+가 공동 기획했으며, 내년 1월 4일까지 이어진다. 이후 홍콩 M+로 순회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