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계층보다 앞선 ‘이념 갈등’…정치 갈등이 최상위로 고착된 이유

한국 사회에서 가장 심각한 갈등으로 ‘보수-진보 간 갈등’이 10년 이상 지속적으로 꼽힌 가운데, 갈등의 중심축이 경제·세대 문제를 넘어 정치적 정체성 영역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행정연구원이 2025년 4월 발표한 데이터 브리프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24년까지 사회통합실태조사 결과 시민들은 9개 주요 집단 간 갈등을 전반적으로 ‘심각하다’고 인식했으며, 이 가운데 보수와 진보 간 갈등이 가장 높은 수준을 유지해 왔다.
해당 조사는 전국 만 19세 이상 약 8000명을 대상으로 2024년 8월부터 9월까지 진행된 국가승인통계로, 한국 사회 갈등 인식의 장기 추세를 보여주는 대표 자료다.
이 결과는 갈등의 성격이 단순한 이해관계 충돌을 넘어 정치적 정체성 충돌로 변화했음을 시사한다. 빈곤층과 중상층, 노동자와 고용주, 수도권과 지방, 세대 간 갈등 역시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지만, 이념 갈등은 이들보다 높은 강도로 고착돼 왔다.
특히 주목되는 지점은 갈등의 ‘지속성’이다. 경제적 갈등은 상황 변화에 따라 완화되거나 재조정되는 경향이 있지만, 정치적 이념 갈등은 장기간 유지되는 특징을 보인다. 실제로 보수-진보 갈등은 조사 시작 이후 단 한 번도 최상위 갈등 위치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이 같은 구조는 정치 영역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보고서에 따르면 공공기관에 대한 신뢰 수준은 전반적으로 4점 만점 기준 2점대에 머물렀고, 국회(2.0점)와 중앙정부(2.3점)는 특히 낮은 신뢰도를 기록했다.
신뢰 저하는 정책 수용성에도 영향을 미친다. 연구원은 신뢰 수준이 낮을수록 시민들이 정책에 협조하지 않고 제도보다 집단 이익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나타난다고 분석했다.
정치권 협력 구조 역시 갈등 심화를 뒷받침하는 요인으로 나타난다. 여당과 야당 간 협력 인식은 4점 만점 기준 1.9점으로 가장 낮았고, 정부와 국회 간 협력 역시 2.1점 수준에 머물렀다.
이는 정치 시스템이 갈등을 조정하기보다 오히려 갈등을 고착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해석으로 이어진다.
갈등 구조를 보다 세밀하게 보면, ‘이념 갈등이 가장 심각하다’는 인식과 ‘사회 전체가 극단적으로 양분됐다’는 판단은 구분될 필요가 있다. 통계청의 정치 양극화 분석에서는 한국 유권자 집단이 정책 입장에서 극단적으로 분화됐다기보다, 정당 지지와 정치적 소속감 중심으로 재편되는 경향이 나타난 것으로 분석된다.
즉, 정책이나 경제적 이해 차이보다 ‘어느 진영에 속하는가’가 갈등의 기준으로 작동하면서, 갈등의 성격이 정서적 대립으로 확장되는 양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미디어 환경 변화도 영향을 미친 요인으로 지목된다. 온라인 플랫폼 중심의 정보 소비 구조가 강화되면서, 이용자가 기존 성향과 일치하는 정보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는 경향이 강해지고, 이는 정치적 입장 간 간극을 확대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결과적으로 한국 사회의 갈등은 단순히 증가한 것이 아니라 성격이 변하고 있다. 경제·계층 갈등이 상대적으로 완화됐다는 의미가 아니라, 정치적 이념 갈등이 이를 압도하는 구조로 재편됐다는 해석이다.
보고서는 이러한 상황을 ‘분열의 시대’로 규정하면서, 기존의 정부 주도 통합 방식에서 벗어나 시민 참여 기반의 통합 전략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사회적 신뢰 회복과 공동체 기반 강화 없이는 갈등 완화가 어렵다는 판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