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업

콘텐츠 강국의 역설, K콘텐츠 세계로 뛰는데 왜 국내 플랫폼 불안할까?

 

2025년 봄 한국 문화산업의 바깥 성적표는 나쁘지 않았다. 음악과 드라마, 광고를 중심으로 해외 수요가 이어졌고, 한국 콘텐츠의 국제적 존재감도 유지됐다. 그런데 국내 유통 시장의 체감 경기는 전혀 달랐다. 콘텐츠는 계속 바깥으로 뻗는데, 그것을 상영하고 붙잡아둘 안쪽 기반은 오히려 얇아지는 흐름이 이어졌다.

가장 먼저 흔들린 곳은 극장가였다

CGV로고

그 장면은 극장가에서 먼저 드러났다. 국내 1위 멀티플렉스 CJ CGV는 2025년 2월 근속 7년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했고, 약 80명이 회사를 떠났다. CGV가 희망퇴직을 단행한 것은 2021년 이후 4년 만이다. 회사 안팎에서는 OTT 확산과 흥행작 부재, 국내 극장 수익성 악화가 겹친 결과라는 해석이 나왔다. 지난해 연결 매출은 늘었지만 국내 극장 사업은 오히려 뒷걸음질 쳤다.

실적 안쪽을 보면 더 선명하다. 지난해 CJ CGV 연결 매출은 1조9579억 원으로 전년보다 26.7% 늘었지만, 국내 극장 사업 매출은 1.9% 감소했다. 연결 기준으로는 회복처럼 보였지만, 국내 극장 사업만 놓고 보면 다른 그림이 나온 셈이다. 수익은 해외와 자회사 쪽에서 만회했지만, 정작 국내 극장은 버티기 국면에 들어갔다는 뜻이다.

영화진흥위원회가 발표한 2024년 한국 영화산업 결산도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지난해 전체 극장 매출액은 1조1945억 원으로 전년보다 5.3% 줄었고, 전체 관객 수는 1억2313만 명으로 1.6% 감소했다. 2022년 이후 3년 연속 매출 1조 원, 관객 1억 명을 넘기기는 했지만, 팬데믹 이전인 2017년부터 2019년 평균과 비교하면 매출은 65.3%, 관객 수는 55.7% 수준에 머물렀다. 회복은 이어졌지만 정상화라고 부르기엔 아직 멀었다.

흥행작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해에는 천만 영화 두 편이 나왔고, 흥행권 작품도 적지 않았다. 그런데도 전체 매출과 관객 수는 줄었다. 몇 편의 성공작이 시장 전체의 하락을 막아주지 못한 것이다. 여름 성수기 대작 공백과 겨울 시즌 흥행작 부재가 한꺼번에 작용하면서, 몇 편 잘된다고 시장 전체가 살아나는 구조가 아니라는 점이 더 분명해졌다.

OTT 이용은 늘었지만 토종 플랫폼은 더 팍팍해졌다

[사진:티빙로고]

온라인 유통 시장도 사정은 비슷했다. 방송통신위원회와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주요 OTT 서비스 매출은 전년보다 6.4% 늘었다. OTT 이용률은 2021년 69.5%에서 2024년 77.0%로 높아졌고, 유료 이용자 비율도 같은 기간 50.1%에서 57.0%로 상승했다. 사람들은 더 많이 보고, 더 자주 돈을 내기 시작했다. 시장 자체는 분명히 커졌다.

그런데 이 성장의 열매가 국내 플랫폼의 안정적 수익으로 곧장 이어지지는 않았다. 시장이 커질수록 제작비와 판권비 부담도 함께 뛰었고, 이용자를 붙잡기 위한 오리지널 확보 경쟁도 더 치열해졌다.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사업자는 한국 콘텐츠를 세계 구독 기반 위에서 돌릴 수 있지만, 국내 사업자는 더 좁은 시장에서 비슷한 비용 압박을 감당해야 한다. 시장은 성장하는데 국내 플랫폼의 체력은 더 빨리 소모되는 구조가 굳어지는 셈이다.

이 대목은 극장과 닮아 있다. 바깥에서 콘텐츠 소비는 늘고, 안에서는 그 콘텐츠를 붙잡아둘 사업자의 수익성이 약해진다. 이용자는 OTT로 더 많이 옮겨갔지만, 토종 OTT는 그 이동을 온전히 자기 편으로 만들지 못했다. 시장 확대가 곧 국내 플랫폼 강화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극장과 OTT는 다른 업종이 아니라 같은 문제의 양쪽 얼굴에 가깝다.

잘 만드는 나라와 잘 버는 플랫폼의 자리가 갈라졌다

사진:넷플릭스 로고

이 역설의 핵심은 결국 돈이 어디에 남느냐에 있다. 한국에서 만들어진 콘텐츠가 글로벌 화제성을 얻더라도 최종 수익의 큰 몫은 점점 글로벌 유통 플랫폼과 해외 배급 구조로 흘러간다. 국내 플랫폼은 비싼 제작비와 판권비를 떠안고, 이용자 유지 경쟁까지 감당해야 한다. 잘 만드는 나라와 잘 버는 플랫폼의 자리가 조금씩 갈라지고 있다는 뜻이다.

극장가의 위축도 같은 구조 안에 있다. 상영할 만한 한국 영화 편수는 줄고, 흥행 불확실성은 커졌으며, 개봉 뒤 다른 유통 창구로 이동하는 속도는 빨라졌다. 관객 입장에서는 극장만의 독점성이 약해지고, 유통사 입장에서는 회수 기간이 짧아진다. 그래서 극장 체인들은 특별관 강화와 공간 다변화, 비영화 콘텐츠 확대에 나서지만, 이는 동시에 극장이 더 이상 영화 유통의 중심 축만으로는 생존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극장이 출발점이 아니라 여러 유통 창구 중 하나로 내려앉는 순간, 국내 시장의 가격 결정력도 함께 약해진다.

성장해도 남는 돈은 줄어

문제는 이것이 단순한 경기 침체가 아니라 구조 변화라는 데 있다. 과거에는 콘텐츠가 흥행하면 극장과 방송사, 배급사와 플랫폼이 함께 수혜를 나누는 모델이 가능했다. 지금은 다르다. 소비는 온라인으로 이동하고, 플랫폼은 구독과 광고, 오리지널 확보 경쟁으로 더 치열하게 쪼개진다. 그 과정에서 국내 플랫폼은 투자비는 많이 들지만 회수력은 약한 구조에 갇힌다. OTT 매출이 늘고 이용률이 올라가도, 그 성장의 과실이 국내 유통 사업자에게 고르게 남지 않는 이유다.

그래서 “K콘텐츠가 잘나간다”는 문장 하나로 산업 전체를 설명하기 어려워졌다. 2025년 봄의 현실은 훨씬 복잡하다. 만드는 쪽은 강해졌지만, 유통하는 쪽은 약해질 수 있다. 세계 시장에서 화제가 되는 드라마와 음악이 많아질수록 오히려 국내 유통 플랫폼은 더 비싼 콘텐츠를 더 낮은 수익성으로 떠안는 역설에 빠질 수 있다. 성장의 과실이 산업 내부에 고르게 남지 않는다는 뜻이다.

콘텐츠 강국의 다음 과제는 유통

그래서 이번 봄의 쟁점은 분명하다. 한국은 콘텐츠 강국이 됐지만, 그 성과를 붙잡아둘 국내 유통 기반은 오히려 얇아지고 있다. 플랫폼이 약해지면 국내 시장의 협상력은 줄고, 제작비 부담은 더 커지며, 수익 배분의 주도권도 바깥으로 빠져나간다. 많이 만드는 것만으로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어렵다. 누가 유통을 쥐고, 누가 이익을 회수하느냐가 이제 K콘텐츠의 다음 승부처가 되고 있다.

2025년 봄 한국 문화산업의 진짜 위기는 흥행 부진만이 아니다. 수출은 이어지는데 국내 유통 기반은 약해지는 이 구조적 역설이, K콘텐츠 성장의 다음 한계를 먼저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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