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종이출판 1조엔 붕괴…잡지부터 꺾였다, 시장 재편 신호

일본 출판과학연구소가 1월 26일 발표한 2025년 출판시장 자료에 따르면 종이와 전자를 합한 전체 출판시장 규모는 1조5462억엔으로 전년보다 1.6% 줄었다. 종이 출판물만 보면 9647억엔으로 4.1% 감소했다. 일본 종이 출판시장 규모가 1조엔 아래로 내려간 것은 1976년 1조엔 돌파 이후 처음이다. 전성기였던 1996년 2조6564억엔과 비교하면 종이 시장의 체력이 장기 하락 국면에 들어섰다는 뜻으로 읽힌다.
이번 수치에서 더 중요한 것은 감소 자체보다 어디서 더 크게 무너졌느냐다. 종이 서적 매출은 5939억엔으로 전년과 같았다. 반면 종이 잡지는 3708억엔으로 10.0% 줄었다. 월간지는 8.6%, 주간지는 17.9% 감소했다. 특히 주간지 반품률이 처음으로 50%를 넘긴 점은 일본 잡지 시장의 위축이 단순한 판매 부진 수준을 넘어 유통 효율 자체가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연구소는 인터넷 보급, 동네서점 감소, 편의점 매대 축소를 원인으로 제시했다. 잡지가 먼저 무너진 것은 우연이 아니다. 속보, 생활정보, 연성 콘텐츠, 화제성 소비는 이미 스마트폰으로 이동했다. 여기에 잡지 판매를 떠받치던 오프라인 진열 면적까지 줄어들면서 시장이 이중 압박을 받은 것이다.
반대로 책은 의외로 버텼다. 서적 부문은 4년 만에 소폭 플러스로 돌아섰고, 연구소는 하반기 베스트셀러 효과와 연간 반품률 개선을 함께 언급했다. 이 대목은 현재 일본 출판시장이 전 분야 동반 침체가 아니라 장르별, 형식별로 다르게 재편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빠르게 소비되는 정보형 매체는 먼저 흔들렸고, 장기 보관과 소장 수요가 붙는 서적은 아직 버틸 여지가 남아 있다는 뜻이다. 출판시장의 위기를 말할 때 책과 잡지를 한 덩어리로 보지 말아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전자출판이 해법이냐고 묻는다면 이번 일본 자료는 낙관론에 선을 긋는다. 지난해 일본 전자출판 시장은 5815억엔으로 2.7% 늘었다. 다만 성장의 중심축이던 전자코믹 증가율은 둔화했다. 전자잡지는 83억엔으로 3.5% 줄었다. 연구소도 전자코믹의 성장률 둔화가 선명해졌다고 밝혔다. 이는 디지털 전환이 곧 시장 회복을 뜻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종이에서 빠져나온 독자가 전자에서 모두 정착하는 구조가 아니라는 얘기다. 콘텐츠 소비는 늘어도 독서 지출이 같은 속도로 늘지 않을 수 있고, 플랫폼 내 무료·할인 경쟁이 심해질수록 매출 성장은 더 둔화할 수 있다. 일본 시장이 보여준 것은 종이의 쇠퇴보다 더 본질적인 문제, 곧 유료 독서시간 자체를 지키는 일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대목은 한국 출판계에도 바로 닿는다. 한국도 단행본보다 잡지와 신문형 정기간행물의 압박이 더 크고, 독자 유입 경로는 오프라인 서점보다 모바일 플랫폼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일본 자료에서 드러난 동네서점 감소와 편의점 매대 축소는 한국에서도 남의 일만은 아니다. 서점은 단순 판매처가 아니라 발견의 공간이다. 신간을 우연히 만나고, 취향이 확장되고, 비주류 장르가 독자를 찾는 통로다. 이 접점이 줄어들면 결국 대형 베스트셀러 몇 종만 남고 중간 규모 출판물은 설 자리가 좁아진다. 일본에서 종이 서적이 가까스로 버틴 것도 결국 베스트셀러 의존도가 커졌기 때문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 반대로 말하면 중소 출판사와 비주류 장르의 생존 여건은 더 나빠졌을 가능성이 높다. 이 부분은 한국 출판계도 가장 민감하게 봐야 할 지점이다.
잡지 부문의 급락은 한국 잡지와 문화저널 시장에도 분명한 시사점을 준다. 속보성과 정보성을 앞세운 잡지는 플랫폼과 경쟁해 이기기 어렵다. 남는 길은 해설, 선별, 기록, 취향 공동체 기능을 강화하는 쪽이다. 종이가 살아남으려면 느린 매체가 돼야 한다는 뜻이다. 웹에서 다 본 내용을 종이로 다시 옮기는 방식으로는 버티기 어렵다. 독자가 돈을 내는 이유를 다시 만들어야 한다. 깊이 있는 해설, 소장 가치, 디자인 완성도, 아카이브 기능이 그 기준이 될 수 있다.
전자 부문도 냉정하게 봐야 한다. 일본은 전자코믹이 전체 전자시장을 떠받쳤지만 성장 둔화가 이미 시작됐다. 한국 역시 웹툰·웹소설의 흥행을 곧바로 출판시장 전체의 건강성으로 연결해선 안 된다. 이야기 소비의 확대와 책 구매의 확대는 다른 문제다. 플랫폼 체류시간이 늘어도 서점 매출이 늘지 않을 수 있다. 출판사는 종이냐 전자냐의 이분법보다 콘텐츠를 어떤 순서와 형식으로 배치할지 다시 설계해야 한다. 연재형 콘텐츠, 전자책, 오디오북, 종이책을 따로 보지 않고 하나의 독서 생애주기로 묶는 전략이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