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노조 ‘로봇 반발’ 논란…AI 도입, 갈등보다 ‘절차’의 문제

현대자동차 노조가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 도입에 반발하면서 기술과 노동의 관계를 둘러싼 논쟁이 확산되고 있다. 외부에서는 이를 기술 진보를 가로막는 저항으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현장에서는 도입 방식과 절차를 둘러싼 문제 제기가 핵심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노조는 성명을 통해 로봇 도입 과정에서 노동자가 배제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현대차 노조 관계자는 “기술 도입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결정 이후 일방적으로 통보받는 방식이 문제”라며 “도입 단계부터 함께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기술 자체보다 ‘누가, 어떤 기준으로, 어떤 속도로 도입을 결정하느냐’가 쟁점이라는 설명이다.
이번 논란은 AI 기술의 성격 변화와 맞물려 있다. 전문가들은 AI가 기존 자동화와 질적으로 다른 단계에 진입했다고 보고 있다. 과거 자동화가 반복적이고 물리적인 작업을 대체하는 수준이었다면, AI는 인간의 판단과 숙련을 학습해 이를 대체하거나 재구성하는 방향으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사회공공연구원 박재범 연구위원은 “AI는 효율화 도구가 아니라 노동자의 숙련 자체를 데이터로 전환해 활용하는 기술”이라며 “노동자가 데이터 제공 주체임에도 도입 과정에서 배제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AI 도입이 설비 교체가 아니라 노동의 성격을 바꾸는 문제라는 점에서 사전 협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이 과정에서 ‘데이터 주권’ 문제가 함께 제기된다. 생산 현장에서 축적된 작업 방식과 숙련이 AI 학습에 활용되는 만큼, 노동자 역시 기술 전환의 이해당사자로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 연구위원은 “도입 목적이 노동 보조인지, 대체인지 명확히 해야 한다”며 “노사 간 협의 없이 진행될 경우 갈등 비용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기술 도입 과정에서의 협의는 효율성 문제로도 연결된다. 현장 검증 없이 기술이 적용될 경우 생산 공정에서 오류가 발생하거나 추가 비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초기 단계에서의 협의가 오히려 시행착오를 줄이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해외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제도적으로 다루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독일은 ‘공동 결정 제도(Mitbestimmung)’를 통해 기술 도입이 노동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사전에 검토하고, 노사가 함께 대응 방안을 마련한다. 작업장에 새로운 기술이 도입될 경우 노동자 대표가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것이 제도적으로 보장돼 있다.
유럽연합(EU)도 유사한 방향을 취하고 있다. AI 도입이 노동 환경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기업이 기술을 도입하기 전 노동자와 협의하도록 하는 기준을 마련했다.
미국에서도 변화가 감지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미국노동총연맹(AFL-CIO)과 협약을 맺고 AI 도입 과정에 노동자의 시각을 반영하기로 했다. 할리우드 작가·배우 노조 역시 장기 파업을 통해 AI 활용 범위를 단체협약에 포함시키며 기술 사용에 대한 기준을 설정했다. 기업이 일방적으로 기술을 적용하기보다, 협의를 통해 기준을 만들어가는 흐름이 나타난 것이다.
반면 한국은 관련 논의가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최근 시행된 ‘AI 기본법’은 산업 경쟁력 확보와 기술 진흥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며, 노동자 참여나 사전 협의 절차에 대한 규정은 제한적이다. 한국고용정보원 전용석 연구위원은 “기술 도입이 작업장에 미치는 영향을 체계적으로 검토하는 장치가 부족하다”며 “노동자 보호와 전환 지원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 역시 AI 전환이 노동시장에 미칠 영향을 인식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회의에서 기술 변화에 따른 불안과 충격을 언급하며 대응 필요성을 강조했다. 다만 정책 방향은 재교육과 소득 보전 등 개인의 적응에 무게가 실려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기술 도입 과정 자체를 조율하는 장치보다는 결과에 대한 보완책에 가까운 접근이라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기술 도입의 속도만큼 ‘도입 방식’을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전용석 연구위원은 “에너지 전환과 마찬가지로 디지털 전환에서도 노동자의 숙련이 단절되지 않도록 보호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며 “노동자 참여 없이 진행되는 전환은 갈등을 키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번 논란은 ‘기술을 도입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도입할 것인가’의 문제를 드러낸 사례로 평가된다. 노조의 반발을 거부로만 볼 것인지, 아니면 협의 요구로 해석할 것인지에 따라 논쟁의 방향도 달라진다.
AI 확산은 피하기 어려운 흐름이지만, 그 과정에서 이해당사자가 배제될 경우 갈등 비용은 더 커질 수 있다. 기술과 노동이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조정과 협의의 대상으로 전환되고 있다는 관점으로 바라보면 어떨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