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불법촬영은 줄고 합성범죄는 늘고…디지털 성범죄가 바뀌고 있다

디지털 성범죄를 떠올릴 때 많은 사람은 여전히 몰래카메라나 불법 촬영을 먼저 생각한다. 하지만 이제 현실은 그보다 훨씬 복잡하고 더 음습해졌다. 기술은 빠르게 바뀌었고, 범죄의 얼굴도 함께 변했다. 인공지능 기반 합성·편집, 이른바 딥페이크 범죄가 확산하는 사이, 피해자는 더 어려지고 가해자는 더 가까워졌다. 디지털 성범죄가 더 이상 낯선 누군가의 일탈이 아니라, 일상과 관계 속으로 깊숙이 침투하고 있다는 뜻이다.
최근 발표된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 보고서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친밀한 관계’의 가해자가 늘었다는 점이다. 피해자에게 가장 안전해야 할 관계가 오히려 위협의 통로가 되고 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연인, 전 연인, 지인, 혹은 신뢰를 나눴던 누군가가 디지털 성범죄의 가해자가 되는 순간, 피해는 단순한 불법 촬영이나 유포를 넘어선다. 그 안에는 배신감과 공포, 관계 붕괴, 일상 전체의 붕괴가 함께 들어 있다. 피해자는 영상이나 이미지 때문에만 고통받는 것이 아니다. 믿었던 사람에게 당했다는 감정이 훨씬 더 깊은 상처를 남긴다.
동시에 범죄의 수법은 점점 더 비대면화, 비가시화되고 있다. 불법 촬영이 줄어든 자리를 합성·편집 범죄가 빠르게 메우고 있다는 점은 결코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예전에는 ‘직접 찍은 이미지’가 범죄의 출발점이었다면, 이제는 가해자가 피해자를 직접 만나지 않아도 된다. 얼굴 사진 몇 장, SNS에 남겨진 흔적 몇 개만으로도 범죄가 가능해진 시대다. 기술은 편리함을 위해 발전했지만, 디지털 성범죄에서는 그 기술이 가장 비열한 방식으로 먼저 활용되고 있다.
특히 10대와 20대에 피해가 집중된 현실은 우리 사회가 아직도 디지털 공간을 안전한 생활 공간으로 만들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 젊은 세대에게 온라인은 더 이상 부수적인 공간이 아니다. 공부하고, 관계 맺고, 자신을 표현하고, 일상을 기록하는 삶의 중심이다. 그런데 바로 그 공간이 가장 손쉽게 착취와 조롱, 협박이 벌어지는 장소가 되고 있다. 디지털 성범죄는 더 이상 인터넷상의 범죄가 아니다. 그것은 현실의 인간관계를 파괴하고, 현실의 정신건강과 사회적 삶을 무너뜨리는 폭력이다.
문제는 범죄가 정교해진 속도에 비해 대응은 여전히 뒤따라간다는 점이다. 피해 영상 삭제 지원이 늘고 국제 공조가 확대되는 것은 분명 필요한 조치다. 그러나 삭제는 어디까지나 사후 대응이다. 이미 만들어지고, 이미 퍼지고, 이미 저장된 뒤에야 작동하는 체계만으로는 피해를 따라잡기 어렵다. 디지털 성범죄는 유포 그 자체보다 ‘유포될 수 있다’는 공포만으로도 사람을 무너뜨린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삭제 속도만이 아니라 차단의 속도, 신고의 접근성, 플랫폼의 즉각 대응, 반복 게시자에 대한 실질 제재다.
더 근본적으로는 사회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아직도 많은 사람은 디지털 성범죄를 기술 문제로만 본다. 하지만 본질은 기술이 아니다. 여성의 얼굴과 몸을 마음대로 소비해도 된다고 여기는 왜곡된 문화, 친밀한 관계에서 상대를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권력 감각, 온라인에서 타인의 인격을 쉽게 지워버리는 집단적 무감각이 문제의 핵심이다. 딥페이크는 새로운 기술이지만, 그 기술을 범죄로 바꾸는 것은 결국 오래된 여성혐오와 왜곡된 지배욕이다.
특히 ‘가까운 가해자’의 증가는 우리에게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디지털 성범죄를 너무 오랫동안 낯선 괴물의 범죄로 상상해온 것은 아닌가. 진짜 위험은 어쩌면 피해자 곁에 가장 자연스럽게 서 있는 사람일 수 있다. 그래서 예방 교육도 단순히 낯선 사람을 조심하라는 수준에서 멈춰서는 안 된다. 동의, 경계, 관계 안에서의 권리, 이미지 자기결정권, 디지털 공간에서의 폭력이 무엇인지에 대한 교육으로 훨씬 더 넓어져야 한다.
디지털 성범죄는 이제 한 장의 영상이나 사진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기술을 매개로 한 관계 폭력이고, 인격 말살이며, 일상을 겨누는 범죄다. 피해자가 평범한 삶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삭제 지원만이 아니라 긴 시간의 법률적, 심리적, 사회적 회복 지원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분명하다. 이 범죄를 ‘온라인 해프닝’ 정도로 가볍게 보는 사회적 태도부터 버리는 일이다.
가까운 사람이 더 위험해지고, 얼굴 사진 한 장만으로도 범죄가 가능한 시대다. 디지털 성범죄는 이미 달라졌다. 이제 바뀌어야 할 것은 피해자의 경각심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대응 수준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