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의 표면 위에 쌓인 반복, 지근욱 개인전 《금속의 날개》 프리뷰

지근욱의 개인전 《금속의 날개》는 회화를 하나의 이미지보다 표면의 구조로 다시 보게 만드는 전시다. 작품들은 멀리서 보면 정제된 기하학으로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갈수록 화면은 예상보다 훨씬 불균질하다. 촘촘하게 쌓인 점과 선, 미세하게 흔들린 간격, 일정한 듯 미세하게 달라지는 압력과 결이 화면 전체를 살아 있게 만든다. 이번 전시의 핵심은 무엇을 그렸는가보다, 어떻게 화면을 밀도 있게 구축했는가에 있다. 학고재는 이번 전시에 회화 59점을 선보이며, 작가는 반복적인 선 긋기와 금속성 질료를 통해 회화의 물리적 표면과 광학적 인상을 함께 실험한다.
전시 제목에 들어 있는 ‘금속’은 단순한 소재 명칭으로만 읽히지 않는다. 실제 작품에서 먼저 다가오는 것은 차갑고 단단한 인상보다는, 빛에 따라 달라지는 표면의 태도다. 정면에서는 안정된 면처럼 보이던 화면이 측면에서는 선의 결을 더 또렷하게 드러내고, 보는 위치에 따라 밀도와 깊이도 달리 읽힌다. 금속성은 이때 장식적 효과가 아니라 회화를 고정된 평면에서 떼어내는 장치로 작동한다. 보도자료 역시 금속성 표면이 빛과의 관계 속에서 단일한 화면 인상을 거부하고, 관람자의 위치에 따라 다른 층위를 발생시킨다고 설명한다.
이번 전시에서 눈여겨볼 지점은 반복의 방식이다. 지근욱의 작업은 오랫동안 선을 긋는 수행적 태도를 기반으로 해왔지만, 이번 작업에서는 그 반복이 단순한 규칙의 증명으로 머물지 않는다. 화면은 규칙적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작은 오차와 떨림을 그대로 품고 있다. 이 때문에 작품은 차가운 패턴으로 닫히지 않고, 손의 시간이 남아 있는 표면으로 남는다.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려는 의지와 그것이 끝내 완벽해질 수 없다는 사실이 동시에 보인다는 점에서, 이번 전시는 기하학적 안정감보다 그 안의 긴장을 더 강하게 드러낸다.
출품작들을 보면 사각형 구조의 연작과 원형 구조의 연작이 함께 놓이며 화면의 리듬을 다르게 만든다. 사각형 계열 작품들은 중심과 주변의 관계, 밀도의 중첩, 구조적 압축을 더 분명하게 보여준다. 반면 원형 구조의 작품들은 화면을 순환하는 시선과 호흡의 감각을 강조한다. 이 차이 덕분에 전시는 단순한 반복으로 보이지 않는다. 같은 어법 안에서도 확산과 침잠, 직선적 긴장과 부드러운 회전, 중심의 응축과 표면의 분산이 변주된다. 작품 소개에서도 학고재는 이번 전시가 ‘딥필드’ 이미지처럼 무수한 데이터 조각을 편집해 하나의 거대한 성단을 시각화하는 방식과 유사하다고 설명하며, 개별 작품들이 거리와 방향성을 가진 집합 구조로 설치된다고 밝히고 있다.
이번 전시를 프리뷰하는 데서 중요한 것은 개별 화면의 미세한 떨림과 전시장 전체의 구조를 함께 보는 일이다. 작품 하나만 볼 때는 표면의 밀도와 재료의 반응이 먼저 읽히지만, 여러 점이 놓인 전시장 안에서는 반복되는 구조들이 서로를 반사하며 더 큰 리듬을 만든다. 특히 이번 전시는 화면을 감싸는 스틸 프레임과 한옥 공간의 대비도 함께 제시한다. 보도자료에 따르면 차가운 산업적 프레임과 한옥의 장소성이 서로 다른 시간감을 불러오도록 배치돼 있으며, 이는 전시를 단순한 평면 감상이 아니라 공간적 경험으로 넓히는 요소가 된다.
지근욱의 이번 전시는 회화를 다시 무겁게 보게 만든다. 여기서 무게는 화면이 크거나 재료가 두텁다는 뜻이 아니다. 작은 차이를 반복적으로 밀어붙여 끝내 하나의 표면을 만들어내는 노동의 밀도, 그리고 그 표면이 빛과 관람자의 움직임 속에서 조금씩 다른 얼굴을 드러내는 긴장을 뜻한다. 화면은 절제돼 있고, 색도 과도하지 않다. 그러나 바로 그 절제가 이번 전시의 집중도를 높인다. 과장된 서사 없이도 작품 자체의 구조와 물성이 관람자를 오래 붙들 수 있다는 점이 《금속의 날개》의 가장 큰 힘이다.
결국 이 전시는 회화를 보는 일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묻는다. 이미지를 빠르게 소비하는 데 익숙한 시선 앞에서, 지근욱의 화면은 한 번에 읽히기를 거부한다. 대신 표면의 밀도, 중심의 흔들림, 반사의 미세한 차이를 따라 천천히 보기를 요구한다. 《금속의 날개》는 새로운 형상을 발명했다기보다, 회화의 표면이 얼마나 오래 시선을 붙잡을 수 있는지를 묻는 전시에 가깝다. 그런 점에서 이번 개인전은 개별 작품의 성취를 넘어, 지근욱이 자신의 조형 언어를 얼마나 집요하게 밀어붙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자리로 읽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