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 백병동 별세…한국 현대음악 한 시대를 이끈 거장 떠나

한국 현대음악의 흐름을 이끌어온 작곡가 백병동 전 서울대 작곡과 교수가 세상을 떠났다. 향년 90.
1936년 만주에서 태어난 고인은 서울대 작곡과를 졸업한 뒤 독일 하노버 음악대학에서 윤이상에게 작곡을 배웠다. 이후 1971년 귀국해 이화여대에서 후학을 가르쳤고, 1976년부터는 서울대에 재직하며 교육과 창작 활동을 이어갔다. 오랜 시간 대학 강단과 음악 현장을 오가며 한국 현대음악의 저변을 넓히는 데 힘쓴 인물로 평가받는다.
백병동은 특정 장르에 머무르지 않고 가곡과 관현악, 실내악, 오페라, 칸타타, 무용음악, 국악 등 폭넓은 분야에서 100곡이 넘는 작품을 남겼다. 대표작으로는 가곡 ‘푸른 묘비들이여!’, ‘진혼가’, ‘바다와 나비’와 관현악곡 ‘진여’, ‘변용’, ‘여울목’, ‘진혼’ 등이 꼽힌다.
그의 음악은 서구 현대음악 기법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한국적인 정서와 감각을 자연스럽게 녹여낸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현대적 어법과 한국적 울림을 함께 품은 작품 세계는 동시대 한국 작곡계에서 독자적인 위치를 차지했다.
문학과의 만남도 인상적이었다. 그는 시인 신동엽과 함께 작업하며 오페레타 ‘석가탑’을 만들었고, 신동엽의 죽음에 영향을 받아 추모의 뜻을 담은 작품도 남겼다. 음악을 통해 시대와 인간, 죽음과 기억을 함께 사유해온 작곡가였다는 점에서 그의 작업은 단순한 작곡을 넘어서는 의미를 지닌다.
백병동은 창작뿐 아니라 교육자로서도 큰 족적을 남겼다. 서울대 작곡과 교수와 명예교수, 천안대 석좌교수 등을 지내며 많은 현대음악 작곡가를 길러냈다. 수많은 제자들이 한국 음악계 각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영향력은 작품뿐 아니라 사람을 통해서도 이어지고 있다.
그는 또 음악 이론 교육에도 큰 기여를 했다. 저서 ‘화성학’은 오랜 시간 국내 음악 전공자들이 널리 참고해온 대표 교재로 자리잡았고, 이 밖에도 ‘음악이론’, ‘현대음악의 흐름’, ‘일곱 개의 페르마타’ 등 여러 저술을 통해 음악에 대한 사유를 꾸준히 남겼다.
생전 그는 신인예술상을 시작으로 대한민국 작곡상과 서울시 문화상, 한국음악상 등 여러 상을 받았고, 2011년부터는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으로 활동했다. 이는 작곡가이자 교육자, 이론가로서 그의 공로가 폭넓게 인정받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유족으로는 부인 우화자 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15일 오전 엄수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