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공연 전시

여성의 고통은 왜 ‘기분 탓’이 됐나…신간’여성의 몸에 대한 의학의 배신’의학이 만든 기준 다시 묻다

[표지:여성의 몸에 대한 의학의 배신. 제공:생각의힘]

진료실에서 환자가 먼저 사과한다. “불편을 드려 죄송하다”는 말이 반복된다. 통증보다 미안함이 앞서는 장면이다. 유방암 환자를 진료해 온 의사 엘리자베스 코멘은 이 장면을 수없이 목격했다. 그는 이런 태도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의학이 형성해 온 기준과 연결돼 있다고 본다.

신간 「여성의 몸에 대한 의학의 배신」은 이 질문에서 출발한다. 왜 여성은 자신의 증상 앞에서 스스로를 낮추는가. 코멘은 임상 경험과 의학사 연구를 결합해 여성의 몸이 어떻게 해석돼 왔는지를 추적한다.

코멘은 미국에서 종양내과 전문의로 활동해 온 의사다. 의학사를 함께 연구하며 여성 환자 진료 경험을 기록해 왔다. 책은 환자 사례와 과거 의료 기록을 함께 제시하는 방식으로 구성됐다. 여성의 신체와 질병이 어떤 기준으로 설명돼 왔는지를 단계적으로 정리한다.

핵심 문제는 기준 설정에 있다. 현대 의학은 오랜 기간 남성을 신체 기준으로 삼아 왔다. 여성의 몸은 이 기준에서 벗어난 ‘변수’로 취급됐다. 이 과정에서 여성의 증상은 과소평가되거나 다른 방식으로 해석됐다.

대표 사례로 심장 질환이 제시된다. 19세기 말 의사 윌리엄 오슬러는 심장마비를 남성적 질환으로 규정했다. 여성의 흉통이나 피로감은 심리적 문제로 해석되는 경향이 확산됐다. 저자는 이 인식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실제 의료 현장에서도 유사한 문제가 보고된다. 여성은 남성보다 심혈관 질환 진단까지 더 긴 시간이 걸리는 경우가 많다는 연구 결과가 제시돼 왔다. 동일한 증상을 호소해도 원인 규명이 지연되는 사례가 반복된다는 것이다. 책은 이러한 차이가 단순한 개인 문제가 아니라 의료 체계의 해석 방식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이 같은 구조는 진단 과정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 여성 환자의 통증이 질병이 아닌 감정 문제로 처리되는 사례가 이어졌다. 저자는 이를 ‘학습된 해석 방식’으로 설명한다. 특정 집단의 증상을 일관된 방식으로 축소하는 경향이 누적됐다는 의미다.

책은 인체 기관별로 이러한 문제를 정리한다. 외피계, 골격계, 내분비계 등 각 장에서 오해가 형성된 과정을 설명한다. 저자가 직접 만난 환자 사례와 의학사 기록을 함께 제시해 현재와 과거를 연결한다.

과거 사례도 포함됐다. 19세기 서구에서는 자전거를 타면 여성의 생식 기능에 문제가 생긴다는 주장이 퍼졌다. 과학적 근거 없이 확산된 인식이었다. 저자는 이러한 사례를 통해 의료 지식이 사회적 편견과 결합해 형성됐다고 설명한다.

책은 문제 제기에 그치지 않는다. 환자의 대응 방식 변화도 강조한다. 코멘은 “여성들이 자신의 증상을 더 명확히 인식하고 필요한 치료를 요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의료 환경 안에서 적극적인 의사 표현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이 책은 의학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의학이 설정해 온 기준을 다시 점검해야 한다고 본다. 여성의 몸을 해석하는 방식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진단과 치료의 격차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문제의식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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