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업

AI 콘텐츠에 1500억 투입…콘진원, ‘기술 중심 K-컬처’로 방향 틀었다

정부가 콘텐츠와 인공지능(AI) 결합을 위한 연구개발에 역대 최대 규모 자금을 투입한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은 2026년 문화체육관광 연구개발 사업에 총 1499억 원을 배정하고, 이 가운데 신규 과제에 약 692억 원을 투입한다고 밝혔다. 전년 대비 약 454억 원이 늘어난 규모로, 문화기술 연구개발 예산이 가장 큰 폭으로 확대된 사례다.

이번 사업은 총 86개 신규 과제를 대상으로 하며, 1차 공고에서만 약 581억 원 규모의 52개 과제를 우선 선정한다. 지원 분야는 문화예술·콘텐츠, 저작권, 스포츠, 관광 등 전 영역을 포괄하지만, 실제 사업 구성은 인공지능을 중심으로 재편됐다. 문화공간 인공지능 전환, 문화예술 데이터 기반 대규모 언어모델(LLM) 연계, 인공지능 기반 관광 기술 등 신규 과제가 다수 포함됐다.

문화체육관광기술진흥센터 김명하 센터장은 “인공지능 중심 문화기술 연구개발이 국가 경쟁력의 원천인 만큼 지원 규모를 확대했다”며 “산업 성장과 국민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할 수 있도록 체계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예산 확대는 콘텐츠 산업의 중심이 이동하고 있다는 신호다. 기존에는 영화, 음악, 게임 등 장르별 제작 역량이 경쟁력의 핵심이었다면, 현재는 제작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과 데이터가 산업의 중심으로 올라오고 있다. 특히 생성형 AI가 콘텐츠 생산 과정에 본격적으로 들어오면서 기획, 제작, 편집, 유통까지 전 과정이 동시에 재편되고 있다.

현장에서도 변화는 이미 진행 중이다. 게임 개발에서는 캐릭터 동작과 배경 생성이 자동화되고, 영상 제작에서는 편집과 색보정, 자막 생성이 빠르게 기계화되고 있다. 음악 분야에서도 멜로디 초안과 리듬 구성이 자동 생성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사람은 전체를 만드는 역할에서 결과를 선택하고 수정하는 역할로 이동하고 있다.

변화는 제작 속도와 구조를 동시에 바꾼다. 과거에는 한 작품에 자원을 집중해 완성도를 높였다면, 지금은 여러 콘텐츠를 동시에 제작하고 반응을 통해 선별하는 방식이 가능해졌다. 제작 비용이 분산되고 실패 부담이 줄어들면서 콘텐츠 생산 방식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

콘진원이 이번 사업에서 ‘소버린 AI’를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국어와 한국 문화 데이터를 반영한 인공지능을 확보하지 못하면 글로벌 플랫폼 의존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콘텐츠 경쟁이 단순 제작 경쟁에서 데이터 경쟁으로 이동하는 상황에서, 데이터 주권 확보가 산업 경쟁력과 직결되는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도 유사한 흐름이 나타난다. 미국은 플랫폼 기업이 콘텐츠 제작과 유통을 동시에 장악하고 AI 기반 제작 도구를 확대하고 있으며, 중국 역시 자체 모델을 기반으로 영상과 게임을 동시에 생산하는 구조를 구축하고 있다. 콘텐츠 기업과 기술 기업의 경계가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한국은 아직 이 전환의 중간 단계에 있다. 제작 역량은 유지하고 있지만 핵심 기술은 외부 플랫폼에 의존하는 비중이 높다. 글로벌 플랫폼을 통해 콘텐츠가 유통되는 구조에서 기술 주도권을 확보하지 못하면 수익 구조에서 밀릴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이번 연구개발 확대는 이러한 구조적 한계를 줄이기 위한 시도로 해석된다.

자금 흐름 역시 변화하고 있다. 과거에는 제작비가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모델 개발과 데이터 구축 비용이 핵심이 된다. 한 번 구축된 기술은 여러 콘텐츠에 반복 적용할 수 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더 큰 가치를 만들어낸다. 콘텐츠 자체보다 기술이 자산으로 작동하는 구조다.

다만 과제도 남아 있다. 콘텐츠와 기술을 동시에 이해하는 인재가 부족하고, 연구개발 단계에서 만들어진 기술이 실제 제작 현장에 적용되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기술이 산업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현장과의 연결이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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