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기 별세…영화인·정치권 추모 이어져 “한국 영화와 함께한 삶”

배우 안성기가 5일 별세했다. 향년 74세.
한국 영화 산업의 형성과 성장 과정 전반을 함께해 온 배우의 죽음에 영화계와 정치권에서 추모가 이어졌다.
한국영화협회 등에 따르면 안성기는 이날 오전 서울 용산구 순천향대학교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숨졌다. 지난달 30일 자택에서 쓰러진 뒤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아왔다. 2019년 혈액암 진단 이후 치료를 이어오다 재발로 투병 중이었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조문 첫날인 5일 영화계 인사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배우 박상원이 가장 먼저 빈소를 찾았고, 박중훈, 신현준 등 동료 배우들이 조문했다.
박중훈은 “40년 동안 함께 작업하며 많은 영향을 받았다”며 “배우로서뿐 아니라 인간적으로도 존경하는 분이었다”고 말했다. 가수 조용필도 빈소를 찾아 “갑작스럽게 떠나 안타깝다”며 “성기야 또 만나자”고 말했다.
영화계 원로와 제작자, 감독들도 조문 행렬에 동참했다. 임권택 감독과 강우석 감독,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등이 빈소를 찾았다. 배우 이정재와 정우성은 조문객을 맞으며 빈소를 지켰다.
정치권에서도 애도가 이어졌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어린 시절부터 그의 영화를 보고 자랐다”며 “그 자체로 한국 영화사를 상징하는 인물”이라고 밝혔다.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도 “오랫동안 기억될 배우”라고 말했다. 이재명 대통령 등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애도의 뜻을 전했다.
정부는 고인에게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했다. 대중문화예술 분야 최고 등급 훈장이다.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이날 빈소를 찾아 훈장을 전달했다. 최 장관은 “한국 영화의 대중적 도약과 산업 성장을 상징하는 인물”이라며 “세대를 아우르는 연기로 영화의 외연을 확장했다”고 말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추서 배경에 대해 “고인은 1990~2000년대 한국 영화 산업 성장 과정에서 상징적 역할을 한 배우”라고 설명했다. 앞서 고인은 2005년 보관문화훈장, 2013년 은관문화훈장을 받은 바 있다.
안성기는 1957년 영화 ‘황혼열차’로 데뷔했다. 아역 시절 약 70편에 출연하며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학업과 군 복무를 거쳐 1980년 이장호 감독의 ‘바람 불어 좋은 날’로 성인 연기자로 복귀했다. 해당 작품으로 대종상영화제 남자신인상을 수상했다.
1980년대에는 한국 영화의 흐름을 이끈 주요 감독들과 작업을 이어갔다. 특히 배창호 감독과 협업한 ‘고래사냥’, ‘깊고 푸른 밤’ 등은 당대 청년 서사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평가된다. 이후 장선우, 이명세 감독 등의 작품에도 출연했다.
1990년대 이후에는 상업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확보한 작품에서 활약했다. ‘투캅스’,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실미도’ 등은 한국 영화 시장 확대 과정에서 주요 흥행작으로 기록됐다. 특히 ‘실미도’는 한국 영화 최초로 관객 1000만명을 돌파한 작품이다.
총 출연작은 170편 이상이다. 다양한 계층과 직업을 넘나드는 역할을 맡으며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보여줬다. 영화계에서는 특정 이미지에 고정되지 않는 배우로 평가됐다.
작품 선택에서도 기준을 유지했다. 1970~1980년대 상업영화 중심 환경에서도 주제 의식이 있는 작품을 선별해 출연했다. 영화계에서는 이를 두고 배우 직업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데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가 나온다.
고인은 영화 산업 현안에도 참여했다. 스크린쿼터 유지 운동에 나섰고, 시네마테크 건립 추진에도 관여했다. 영화 제작 환경과 산업 기반 확대에 기여했다는 평가다.
광고와 대중문화 영역에서도 활동을 이어갔다. 커피 브랜드 광고 모델로 장기간 활동하며 대중적 인지도를 유지했다. 영화 외 활동에서도 안정적인 이미지를 구축했다.
생전 인터뷰에서는 “영화는 운명적으로 해온 일”이라며 “작품을 할 때마다 새로운 여행을 떠나는 느낌”이라고 밝혔다. 2022년 대종상영화제 공로상 수상 당시에는 “가능한 오래 연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장례는 영화인장으로 진행된다. 신영균예술문화재단과 한국영화배우협회가 주관한다. 일반 추모 공간도 별도로 운영된다. 발인은 9일 오전이며 장지는 경기 양평 별그리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