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7세 고시’를 법으로 금지하는 나라

이른바 ‘7세 고시’ 금지법이 국회 교육위원회 논의를 통과했다. 유아를 모집하는 학원과 교습소, 개인과외가 합격·불합격을 가르는 선발시험을 치르지 못하게 하자는 취지다. 교육위는 이후 전체회의에서도 관련 학원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논란이 컸던 입학 후 수준별 반 편성 시험 금지 조항은 수정 과정에서 빠졌다.
이 법안을 둘러싼 가장 씁쓸한 지점은, 이런 법이 이제야 필요해졌다는 사실이다. 만 3세에서 초등학교 입학 전 아이들에게 입시처럼 시험을 치르게 하고, 그 결과로 줄을 세우는 현실이 너무 당연해져버린 끝에 국회가 나서야 했다. 원래라면 법으로 막기 전에 사회가 먼저 부끄러워했어야 할 일이다.
‘7세 고시’라는 말은 우스갯소리처럼 소비돼 왔지만, 실은 웃을 일이 아니다. 그 말 속에는 아이를 한 명의 성장하는 인간이 아니라 조기에 선점해야 할 입시 자원처럼 보는 시선이 숨어 있다. 놀고 쉬고 관계를 배우며 몸과 마음을 키워야 할 시기에, 아이들은 이미 “붙는 아이”와 “떨어지는 아이”로 나뉜다. 유엔 아동권리협약은 아동이 휴식과 여가, 놀이를 누릴 권리를 분명히 규정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올해 이 문제를 두고 아동의 휴식·여가·놀이 권리에 반한다고 우려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교육부 역시 사교육 과열이 아동 인권 침해가 아닌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7세 고시’는 단지 교육 방식의 문제가 아니라, 아이를 대하는 사회의 윤리 문제라는 뜻이다. 아이가 견뎌야 할 경쟁의 시작점을 계속 앞당기는 사회는 교육열이 높은 사회가 아니라, 불안을 아이에게 전가하는 사회다.
물론 법이 통과된다고 현실이 곧장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일부 현장에서는 외부 영어평가 점수 제출이나 스피킹 영상 요구처럼 변칙적인 방식이 거론되고 있다. 이름만 바꾼 시험, 형식만 바꾼 선발은 언제든 생겨날 수 있다. 그래서 이 법은 종착점이 아니라 출발점이다. 법 하나로 사교육 시장의 욕망을 이길 수는 없고, 부모들의 불안을 없앨 수도 없다.
그럼에도 이 법이 의미 없는 것은 아니다. 최소한 국회가 “유아 대상 선발시험은 정상적인 교육이 아니다”라고 공식 선언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어떤 사회든 금지하는 법은 결국 그 사회가 더는 용인할 수 없다고 판단한 선을 보여준다. 이번 입법은 아이를 너무 일찍 경쟁장에 밀어 넣는 관행에 대해 공적 기준을 세웠다는 데 의미가 있다.
더 중요한 과제는 그 다음이다. 왜 부모들은 7세 아이를 시험장에 보내는가. 왜 영어유치원과 유아학원이 사실상 입시기관처럼 작동하는가. 왜 한국의 부모는 놀이보다 선행학습이, 성장보다 선발이 더 안전하다고 믿게 됐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면 ‘7세 고시’는 사라지지 않고 이름만 바꿔 되살아날 것이다.
결국 ‘7세 고시’ 금지법은 아이들을 위한 법인 동시에, 어른들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우리는 정말 아이를 위한 교육을 하고 있는가. 아니면 아이를 통해 어른들의 불안을 관리하고 있는가.
아이에게 시험을 치르게 하는 사회는 아이가 조급한 것이 아니라 어른이 조급한 사회다. 법은 그 조급함에 처음으로 제동을 걸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입법의 박수보다, 왜 이런 법이 필요해졌는지에 대한 집단적 반성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