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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소년범의 과거는 언제까지 현재형이어야 하나

배우 조진웅. 키위컴퍼니 제공

배우 조진웅은 최근 미성년 시절 범행에 일부 연루됐다는 의혹이 제기된 뒤, 소속사를 통해 잘못된 행동이 있었음을 인정했다. 다만 소속사는 성폭행 관련 행위는 사실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고, 며칠 뒤 조진웅 본인은 “모든 활동을 중단하고 배우의 길에 마침표를 찍겠다”며 사실상 은퇴를 선언했다.

이 사안을 두고 대중의 비판이 나오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공인은 이미지로 소비되는 직업이고, 대중은 그 이미지에 윤리적 기대를 덧씌운다. 조진웅 스스로도 “지난 잘못에 대해 마땅히 책임을 지겠다”고 말했으니, 그의 사과와 활동 중단을 전적으로 부당하다고만 말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여기서 멈추지 말고 더 불편한 질문 하나를 던질 필요가 있다. 미성년 시절의 잘못은 성인이 된 뒤 언제까지, 어떤 방식으로, 어느 정도까지 그 사람의 삶을 규정해야 하는가.

소년사법의 핵심은 응징보다 교화와 재사회화에 있다. 그래서 소년 사건 기록은 일반 형사 사건과 달리 엄격히 보호되고, 이를 둘러싼 조회·공개 역시 강하게 제한된다. 실제로 조진웅의 과거를 처음 보도한 기자들을 상대로 소년법 제70조 위반 혐의를 적용한 고발장까지 접수됐다. 해당 고발은 “30년 전 고등학생의 과오를 파헤치는 것이 과연 지금 대중이 반드시 알아야 할 알 권리인가”라는 질문을 정면으로 제기한다.

이 대목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조진웅 개인에 대한 호의가 아니라 제도의 일관성이다. 소년법은 사회가 미성년자의 잘못을 영구 낙인으로 남기지 않겠다는 최소한의 합의다. 그런데 성인이 되어 수십 년을 살아온 뒤, 봉인됐어야 할 과거가 어느 날 갑자기 대중적 처벌의 근거로 호출된다면, 우리는 소년사법의 취지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셈이 된다. 소년에게 다시 살아갈 기회를 준다고 말하면서, 정작 사회는 그 기회를 언제든 박탈할 수 있는 폭탄을 품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물론 과거의 잘못이 완전히 지워진다고 말할 수는 없다. 피해가 있었다면 사과와 성찰은 필요하고, 공인이라면 더 높은 도덕적 검증을 감수해야 한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그러나 그와 별개로, 미성년 시절의 과오를 성인이 된 뒤의 존재 전체와 동일시하는 태도는 위험하다. 그것은 반성과 변화의 가능성을 믿지 않는 사회이고, 교화라는 제도적 약속을 공허한 수사로 만드는 사회다. 조진웅의 은퇴가 자발적 결단이었는지, 여론에 떠밀린 사실상의 퇴장이었는지는 더 지켜볼 문제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이번 사안이 한 배우의 몰락담으로만 소비돼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배우는 환상을 파는 직업이라는 말이 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배우 이전에 한 사람의 삶이 있다. 그리고 그 삶이 오직 최악의 과거로만 환원된다면, 우리는 너무 손쉽게 인간을 단죄하는 쪽으로 기울게 된다. 조진웅을 무조건 감싸자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더 냉정하게 묻자는 것이다. 소년범의 재사회화는 진심으로 믿으면서도, 그가 사회적으로 성공하거나 주목받는 순간엔 다시 과거를 꺼내 영구 추방해도 된다고 생각하는가. 만약 그렇다면 우리가 믿는 것은 교화가 아니라 유예된 낙인일 뿐이다.

조진웅 사건이 남긴 진짜 질문은 은퇴의 적절성보다 더 크다. 한 사람이 미성년 시절의 잘못을 안고도 이후의 삶으로 자신을 다시 증명할 수 있는 사회인지, 아니면 한 번의 과오를 평생의 자격 박탈로 연결하는 사회인지에 관한 질문이다. 소년법이 존재하는 이유는 단순한 관용이 아니라, 인간은 바뀔 수 있다는 공동체의 믿음 때문이다. 그 믿음이 없다면 소년사법도, 재사회화도, 두 번째 기회도 모두 말뿐인 제도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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