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BTS의 ‘아리랑’이 묻는다, 세계화란 무엇인가

[방탄소년단 공식 엑스(X·옛 트위터).
방탄소년단(BTS)의 두 번째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 대상 수상은 단순한 트로피 하나의 의미로만 읽히지 않는다. 이미 이들은 빌보드 차트와 월드투어, 글로벌 팬덤을 통해 세계 대중음악 시장에서 자신들의 위치를 증명해왔다. 그럼에도 이번 수상이 유독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이들이 다시 정상에 오른 방식 때문이다. 영어 팝 문법에 완전히 기대기보다 한국적 정서와 상징을 전면에 세운 앨범으로 미국 대중음악의 중심 무대에서 인정받았다는 점이 핵심이다.
K팝이 세계 시장에서 성공하기 시작한 이후 오래된 질문이 있었다. 세계적인 음악이 되기 위해서는 얼마나 ‘한국적’이어야 하고, 또 얼마나 ‘글로벌’해야 하는가. 한때 그 답은 비교적 단순해 보였다. 영어 가사, 세련된 프로덕션, 숏폼 플랫폼에 최적화된 후렴, 서구 팝 시장의 유행을 빠르게 흡수한 사운드가 성공의 조건처럼 여겨졌다. 실제로 그런 전략은 효과적이었다. BTS 역시 영어 싱글을 통해 미국 대중과 더 넓게 만났고, K팝의 진입 장벽을 낮췄다.
하지만 이번 행보는 그다음 단계의 질문을 던진다. 세계화란 과연 자신을 지우고 상대의 언어로만 말하는 일인가. 아니면 자신이 가진 고유한 감각을 세계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번역하는 일인가. BTS가 ‘아리랑’이라는 이름을 앞세워 다시 미국 시상식의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른 장면은 후자에 더 가깝다. 한국적인 것을 고집스럽게 박제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동시대 팝의 언어로 다시 움직이게 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아리랑’은 한국인에게 익숙하지만, 동시에 너무 익숙해서 종종 낡은 상징처럼 취급되기도 했다. 그러나 세계 시장에서 이 이름은 다르게 작동한다. 그것은 지역적 색채이자 정체성의 선언이고, 동시에 상실과 그리움, 회복과 이동의 감정을 담은 보편적 코드가 된다. BTS가 이 소재를 선택했다는 것은 자신들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숨기지 않겠다는 태도다. 글로벌 스타가 된 뒤에야 비로소 가능한 자신감이기도 하다.
물론 한국적 요소를 사용했다는 사실만으로 작품의 가치를 보장할 수는 없다. 전통은 장식으로 쓰일 때 가장 쉽게 소비되고, 가장 빨리 진부해진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지금 이 시대의 감정과 어떻게 연결되는가다. BTS가 계속해서 세계 팬들과 관계를 맺어온 방식은 바로 이 지점에 있었다. 국적과 언어가 달라도 청춘의 불안, 고립감, 자기 증명의 욕망, 연대의 감각은 통한다. ‘아리랑’이 힘을 얻는다면, 그것은 한국적 상징이 세계적 감정과 만났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수상은 팬덤 ‘아미’의 결속력을 다시 확인시킨 사건이기도 하다. AMA는 대중적 지지와 팬 투표의 영향력이 큰 시상식이다. 군 공백기 이후에도 팬덤이 흩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BTS의 경쟁력이 단순히 활동량이나 화제성에만 있지 않음을 보여준다. 팬들은 이들을 기다렸고, 복귀 이후에는 기다림을 다시 행동으로 전환했다. 오늘날 팝스타의 힘은 노래 한 곡의 흥행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아티스트와 팬이 함께 축적한 시간, 서사, 신뢰가 곧 영향력이 된다.
이제 관심은 자연스럽게 그래미로 향한다. 그러나 그래미는 다른 문제다. AMA가 대중과 팬덤의 선택을 강하게 반영한다면, 그래미는 음악 산업 내부의 평가와 상징 자본이 더 크게 작동하는 무대다. BTS에게 그래미는 오랫동안 마지막 관문처럼 여겨져 왔다. 이미 세계적 인기를 얻었지만, 미국 음악계의 가장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시스템 안에서 완전히 인정받았느냐는 질문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래미 수상 여부만으로 BTS의 성취를 재단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그래미는 중요한 시상식이지만, 그래미가 곧 음악의 최종 심판자는 아니다. 오히려 더 흥미로운 것은 BTS가 그래미를 향해 가는 과정에서 어떤 음악적 선택을 하느냐다. 상을 받기 위해 자신들의 색을 희석할 것인가, 아니면 자신들의 정체성을 더 정교하게 밀고 나갈 것인가. 지금까지의 흐름을 보면 BTS는 후자를 택하고 있는 듯하다.
BTS의 현재 위치는 K팝 산업 전체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K팝은 더 이상 ‘한국에서 만든 서구식 팝’이라는 설명에 머물 수 없다. 이제는 한국적 제작 시스템, 팬덤 문화, 시각적 연출, 언어와 정서가 복합적으로 결합한 독자적 문화 양식으로 봐야 한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과제는 무조건 더 영어답게, 더 미국답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한국에서 출발한 감각을 얼마나 설득력 있게 세계적 문맥으로 확장하느냐다.
BTS의 두 번째 AMA 대상은 그래서 하나의 답이 아니라 새로운 질문에 가깝다. 한국적이라는 것은 세계 시장에서 한계인가, 아니면 가장 강력한 차별점인가. 이 질문에 BTS는 적어도 지금까지는 후자라고 말하고 있다. ‘버터’가 세계 시장의 문을 여는 열쇠였다면, ‘아리랑’은 그 문 안으로 들어간 뒤 자신이 누구인지를 다시 밝히는 이름이다.
글로벌 팝의 중심에서 ‘아리랑’이 울려 퍼진다는 것은, K팝의 다음 단계가 단순한 인기 경쟁이 아님을 보여준다. 이제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이 팔렸느냐를 넘어, 어떤 문화적 기억과 감정을 세계와 나눌 수 있느냐다. BTS가 그래미까지 갈 수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이미 분명한 것은 있다. 이들은 세계화의 의미를 바꾸고 있다. 자신을 지우는 방식이 아니라, 자신을 더 선명하게 드러내는 방식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