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 여 사이에 갇히지 않는 정체성…폴 B 프레시아도의 급진적 선언

남성과 여성, 이성애와 동성애라는 익숙한 구분 바깥에서 자신을 다시 정의하려는 목소리가 한 권의 책으로 번역·출간됐다. 폴 B 프레시아도의 신간 ‘천왕성에 집 한 채’는 성별과 섹슈얼리티, 정치와 언어의 경계를 가로지르며 정상성의 질서에 정면으로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이 책은 스페인 출신의 철학자이자 성정치학자인 폴 B 프레시아도가 2013년부터 2018년까지 프랑스 진보 일간지 ‘리베라시옹’ 등에 기고한 글을 시간순으로 묶은 산문집이다. 국내에는 문경자 번역으로 출간됐다. 저자는 미셸 푸코와 주디스 버틀러 이후 가장 강렬한 문제의식을 보여준 성정치학자로도 평가받는다.
책의 제목은 19세기 독일 법률가 카를 하인리히 율리히스가 스스로를 ‘우라니스트’라 부른 데서 출발한다. ‘우라니스트’는 오늘날의 성소수자 정체성 개념이 등장하기 이전, 기존 성 규범 바깥에 있는 자신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된 말이다. 프레시아도는 이를 끌어와 지구의 규범 질서 바깥, 곧 ‘천왕성에 집을 갖고 싶다’는 상상으로 확장한다.
다만 책은 과거 개념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는다. 19세기적 우라니스트 개념이 결국 남성과 여성이라는 이분법 안에 머문다는 한계를 짚으면서, 저자는 자신을 어느 하나의 고정된 범주로 규정하기를 거부한다. 남자와 여자, 이성애자와 동성애자 가운데 하나를 택하는 대신, 스스로를 “이분법적 체제 안에 갇힌 우주의 다양체”로 선언한다.
이 책에서 특히 중요한 시간적 분기점은 2016년 11월이다. 저자가 법적 성전환 절차를 통해 이름을 바꾸고, 사회적·법적 성별의 경계를 건너간 시기이기 때문이다. 프레시아도는 그 과정을 통해 몸의 변화와 사회적 분류 사이에서 생겨나는 간극, 그리고 경계에 선 존재로 살아가는 감각을 집요하게 기록한다. 책 전반에는 이른바 ‘젠더 이주민’으로서의 경험이 짙게 배어 있다.
프레시아도의 문장은 결코 온건하지 않다. 직설적이고 급진적이며 때로는 전투적이다. 그러나 그 급진성은 단순한 도발에 머물지 않는다. 섹슈얼리티와 국경, 정치와 언어를 가로지르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사회가 너무 쉽게 정상과 비정상, 중심과 주변을 가르는 방식을 해체하려는 사유로 이어진다.
‘천왕성에 집 한 채’는 정체성을 둘러싼 질문을 개인의 고백에 머물지 않게 한다. 오히려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온 분류 체계가 누구를 배제하고, 어떤 삶을 보이지 않게 만들었는지를 되묻게 한다. 성별 이분법 바깥의 삶을 사유하는 독자에게는 물론, 오늘의 사회가 정상성이라는 이름으로 무엇을 강요해왔는지 돌아보게 하는 책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