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

‘역사는 어떻게 진보하고 왜 퇴보하는가’…자유주의의 전진과 역주행을 함께 짚다

역사는 어떻게 진보하고 왜 퇴보하는가

파리드 자카리아의 신간 ‘역사는 어떻게 진보하고 왜 퇴보하는가’는 냉전 이후 세계가 맞이한 자유주의의 확장과 그에 대한 반동을 함께 짚는 책이다. 세계화와 민주주의가 더 넓게 퍼질 것이라는 낙관이 왜 흔들렸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포퓰리즘과 권위주의가 어떻게 다시 힘을 얻었는지를 분석한다.

책의 출발점은 1990년대의 낙관론이다. 소련 붕괴 이후 미국 중심의 일극 체제가 굳어지면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사실상 최종 승리를 거뒀다는 기대가 확산됐다. 기술 발전과 세계화 역시 국가 간 경계를 낮추고 더 개방된 질서를 만들 것이라는 전망을 뒷받침했다. 그러나 저자는 이후의 현실이 이 같은 기대를 정면으로 수정하게 만들었다고 본다.

9·11 이후 미국이 벌인 ‘테러와의 전쟁’,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각국의 보호무역 강화는 자유주의 질서가 생각만큼 단단하지 않았음을 보여줬다. 특히 미국의 군사적·경제적 우위가 흔들리면서, 냉전 이후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되던 국제질서도 균열을 드러냈다는 것이 책의 문제의식이다.

저자는 이런 변화의 한복판에서 포퓰리즘의 부상을 주목한다. 세계화의 혜택이 고르게 분배되지 못하고, 경제적 불안이 커지는 과정에서 많은 유권자가 과거의 안정과 질서를 이상화하는 정치에 끌렸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미국과 유럽의 우파 포퓰리즘은 이민자, 유색인종, 국제 경쟁 등을 불만의 대상으로 삼으며 세를 키웠다. 자유주의가 약속했던 개방과 번영이 일부 대중에게는 오히려 상실과 불안의 언어로 받아들여졌다는 분석이다.

책은 좌우 정치지형의 변화도 함께 짚는다. 중도화된 좌파가 기존 지지층의 불만을 충분히 대변하지 못하는 사이, 우파가 반엘리트·반세계주의·민족주의 정서를 효과적으로 흡수했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선거 전략의 문제가 아니라, 자유주의 체제가 내부적으로 누적해 온 불평등과 대표성 위기의 결과로도 읽힌다.

소셜미디어에 대한 저자의 평가는 특히 오늘의 정치 환경과 맞닿아 있다. 한때 SNS는 민주화와 시민 참여를 확대할 도구로 기대를 모았지만, 저자는 오히려 그것이 분열과 과잉 동원, 감정적 정치의 확산 통로가 됐다고 본다. 빠른 동원에는 유리하지만, 지속 가능한 정치 변화나 제도화된 개혁으로 이어지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익명성과 군집성, 즉각적 반응 구조가 반자유주의적 정서와 결합하기 쉽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 책의 장점은 자유주의의 위기를 외부 적대세력 탓으로만 돌리지 않는다는 데 있다. 자유주의 진영이 스스로 만들어낸 경제적 불평등, 정치적 소외, 제도적 오만이 결국 반동의 토양이 됐다는 점을 함께 본다. 역사의 진보를 말하면서도 그것이 자동적이거나 불가역적이지 않다는 점을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다만 책의 시각은 비교적 큰 흐름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만큼, 개별 국가의 복잡한 맥락이나 비서구 세계의 특수성은 다소 단순화될 여지도 있다. 자유주의의 후퇴를 설명하는 틀은 설득력이 있지만, 각국의 정치 현실을 모두 같은 패턴으로 읽을 수 있는지는 별도의 검토가 필요해 보인다.

그럼에도 이 책은 지금의 세계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질문을 분명하게 던진다. 왜 자유주의는 스스로를 방어하지 못했는가, 왜 진보는 직선이 아니라 후퇴를 동반하는가, 그리고 민주주의는 어떤 조건에서 쉽게 흔들리는가 하는 질문들이다. 책은 역사가 앞으로 나아간다는 믿음을 완전히 버리지는 않지만, 그 전진이 늘 저항과 역풍, 퇴행의 가능성을 동반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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