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의에 대하여’ 3주째 1위…문형배, 판결문 밖으로 꺼낸 ‘생활의 언어’

문형배 전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의 에세이 ‘호의에 대하여’가 주요 서점 종합 베스트셀러 1위를 3주 연속 유지했다. 공직자 출신 저자의 에세이가 단기간을 넘어 지속적으로 상위권을 유지하는 흐름은 최근 출판 시장에서 이례적이다.
교보문고가 9월 셋째 주 발표한 종합 베스트셀러 순위에 따르면 ‘호의에 대하여’는 전주에 이어 1위를 기록했다. 출간 직후 순위에 진입한 뒤 하락 없이 상단을 유지하고 있다. 출판유통통합전산망 기준 월간 집계에서도 상위권을 유지하며 판매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이 책은 문형배가 법관 재직 시절부터 축적해온 글 가운데 약 120편을 선별해 구성한 에세이다. 일상적 경험과 사유를 중심으로 관계, 태도, 책임, 공공성에 대한 생각을 풀어냈다. 제목으로 제시된 ‘호의’는 타인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최소 단위이자 사회를 지탱하는 감각으로 제시된다. 법적 판단이 아니라 개인의 태도에서 출발한 문제의식이 책 전반을 관통한다.
문형배의 이력은 책의 독자층 형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는 2019년 헌법재판관에 임명돼 2025년 4월까지 임기를 수행했고, 퇴임 직전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을 맡았다. 부산고등법원 수석부장판사, 부산가정법원장 등을 거친 법관으로, 주요 헌법 판단 과정에 참여한 인물이다. 공적 판단의 중심에 있던 인물이 퇴임 이후 개인적 사유를 전면에 내세운 글을 내놓았다는 점이 독서 수요를 자극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법률가로서 축적된 문체와 에세이 형식의 결합이 차별화 요소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판결문과 결정문에서 사용되던 간결하고 단정적인 문장이 에세이에서도 유지되면서 독자에게 낯설지 않은 읽기 경험을 제공한다는 평가다. 동시에 법적 논리를 벗어나 일상 언어로 전환된 서술이 접근성을 높였다는 반응도 이어지고 있다.
초기 구매층도 뚜렷했다. 교보문고가 2025년 9월 초 발표한 판매 분석에 따르면 40대와 50대 비중이 과반을 넘었고, 여성 독자 비율이 60% 이상을 차지했다. 공직 경험과 사회 이슈에 관심이 높은 중장년층이 주요 독자층으로 형성된 구조다. 이후 순위 유지 과정에서는 30대 독자 유입도 점차 확대되는 흐름이 나타났다.
책의 판매 흐름은 당시 사회적 이슈와도 맞물렸다. 사법 제도와 관련된 논의가 이어지면서 저자에 대한 관심이 자연스럽게 책으로 이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다만 업계에서는 이 책의 장기 흥행을 단순한 시사성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고 보고 있다. 공적 인물의 경험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일상적 감각을 중심에 둔 서사가 독립적인 독서 수요를 형성했다는 분석이다.
출판 시장에서는 최근 몇 년간 시사서와 자기계발서의 경계가 흐려지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특정 사건이나 인물을 중심으로 한 책이 초기 판매를 이끌고, 이후 내용의 확장성이 독자층을 넓히는 구조다. ‘호의에 대하여’ 역시 공적 이력에서 출발했지만 관계와 태도라는 보편적 주제로 확장되며 독자층을 유지한 사례로 꼽힌다.
대형서점 관계자는 9월 판매 동향 설명에서 “최근 독자들은 강한 주장보다 신뢰 가능한 인물의 경험과 태도에 주목하는 경향이 있다”며 “공적 권위를 가진 저자가 개인적 언어로 전환할 때 반응이 크게 나타난다”고 말했다.
문형배의 서사는 이 지점에서 분명해진다. 그는 법률가로서 규범을 다루던 인물이었지만 이번 책에서는 개인의 선택과 태도를 중심에 놓았다. 제도와 판단의 언어를 다루던 경험이 관계와 일상의 언어로 이동한 구조다. 공적 영역에서 형성된 신뢰와 사적 서사의 결합이 책의 핵심 경쟁력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평가다.
같은 기간 베스트셀러 2위는 멜 로빈스의 ‘렛뎀 이론’이 차지했다. 감정 관리와 선택의 기준을 제시하는 자기계발서로 일정한 독자층을 유지하고 있다. 신간 가운데서는 송길영의 ‘시대예보: 경량문명의 탄생’이 10위권에 진입하며 기술 변화와 노동 환경에 대한 관심을 반영했다.
최근 베스트셀러 흐름은 정치·사회, 자기계발, 기술 전망 도서가 동시에 상위권에 포진하는 양상을 보인다. 특정 장르 중심에서 벗어나 독서 수요가 다층적으로 분화되는 구조다. ‘호의에 대하여’의 상위권 유지 여부는 사회 이슈의 지속성과 별개로, 공적 인물의 개인 서사가 어느 수준까지 독자층을 확장할 수 있는지와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