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위험 치료제도 끊긴다…경제논리에 필수의약품 공급 불안
급성 불안장애 치료제와 소아 당뇨 환자용 인슐린 등 필수의약품의 국내 공급이 잇따라 흔들리면서 의료 현장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제약업계에 따르면 일동제약은 올해 초 식품의약품안전처에 항불안·발작 치료 주사제 ‘아티반’(성분명 로라제팜)의 생산 중단 계획을 통보했다. 생산은 올해 말까지, 재고 공급은 내년 상반기까지 가능하다. 설비 노후화와 낮은 수익성이 주요 이유로 꼽힌다. 해당 약은 1982년부터 국내에 공급돼 온 신경정신과 필수 의약품이다.
의료계는 대체재 부족을 이유로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자살 위험 환자나 발작 환자 치료에 사용되는 약으로 공급이 중단되면 현장 혼란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소아 1형 당뇨병 환자에게 필수적인 인슐린 역시 공급 불안이 제기되고 있다. 국내 유통 과정에서 품질검사를 맡고 있는 SLS바이오가 식약처로부터 재지정 불허 통보를 받으면서 공급 차질 가능성이 거론됐다. 한국1형당뇨병환우회는 “품질관리 기준은 중요하지만 환자 치료 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대안이 선행됐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 같은 문제는 개별 품목에 국한되지 않는다.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에 따르면 2024년 기준 필수의약품 473개 가운데 225개(47.6%)가 실제로는 공급되지 않고 있다. 품목허가를 받지 못한 의약품이 102개, 허가는 받았지만 유통되지 않는 품목이 123개에 달한다.
공급 중단 사례도 이어지고 있다. 2020년부터 2024년 7월까지 공급이 중단된 필수의약품은 108개로 집계됐다. 원인으로는 판매 부진(18건), 제조 문제(18건), 수익성 악화(17건) 등이 꼽혔다.
핵심 원인은 약가 구조와 공급망 집중이다. 필수의약품은 가격이 낮게 유지되는 반면 원가 상승 부담은 커지면서 제약사가 생산을 지속하기 어려운 구조가 형성돼 있다. 특정 업체에 공급이 집중된 품목은 한 곳에서 문제가 발생할 경우 전체 공급이 흔들리는 취약성을 드러낸다.
실제 사례도 반복돼 왔다. 2018년 백신 유통 과정에서 일부 필수 백신 공급이 지연되면서 접종 일정이 차질을 빚은 바 있다. 2023년에는 항생제와 해열제 일부 품목의 수급 불안이 발생해 병원 현장에서 처방 변경이 이어졌다. 특정 품목의 생산 중단이나 유통 문제로 의료 현장이 직접 영향을 받는 구조가 반복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구조 개선 필요성을 지적한다. 대한소아청소년병원협회는 필수의약품 공급 불안과 관련해 약가 구조 개선과 안정적 공급 체계 마련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해외에서는 공공 개입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대응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필수의약품 부족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공동 조달과 생산 기반 확대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도 전략 비축 의약품 목록을 운영하며 공급 중단에 대비하고 있다.
정부는 업체 간 위탁생산 논의와 행정 지원을 통해 공급 공백을 최소화하겠다는 입장이지만, 단기 대응만으로는 반복되는 공급 불안을 해소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필수의약품 공급 문제는 특정 기업의 생산 중단이 아니라 제도와 시장 구조가 맞물린 결과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환자 생명과 직결된 의약품을 시장 논리에만 맡겨둘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가 다시 불붙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