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전시

“우주 거리 측정의 출발점”…차별 속 발견 남긴 천문학자 레빗 조명

[사진:사일런트 스카이. 제공: 알마)

20세기 초 천문학 연구의 방향을 바꾼 여성 과학자의 삶과 업적을 다룬 희곡이 국내에 번역 출간됐다. 제한된 연구 환경 속에서 도출된 발견이 이후 우주론 발전의 기반으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과학사적 의미가 재조명되고 있다.

출판사 알마는 로렌 군더슨의 희곡 ‘사일런트 스카이’를 출간했다고 밝혔다. 작품은 미국 하버드 천문대에서 활동한 천문학자 헨리에타 레빗의 연구 과정을 바탕으로 구성됐다.

레빗은 당시 여성 연구자에게 주어졌던 제한된 역할 속에서 연구를 수행했다. 망원경을 활용한 직접 관측이 아닌, 별빛이 기록된 사진 자료를 분석하는 업무에 배치됐다. 관측과 이론 연구의 중심에서 배제된 구조였다.

이 같은 조건 속에서 도출된 성과가 이후 천문학의 기준으로 자리 잡았다. 레빗은 세페이드 변광성의 밝기와 주기 사이에 일정한 관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주기가 길수록 밝기가 커지는 규칙을 확인한 것이다. 이 관계는 천체까지의 거리를 계산할 수 있는 기준으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이 발견은 관측 천문학의 범위를 확장하는 계기가 됐다. 기존에는 별의 상대적 위치만 파악할 수 있었지만, 거리 계산이 가능해지면서 우주의 규모를 수치로 측정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 이후 에드윈 허블은 이 관계를 활용해 외부 은하까지의 거리를 계산했고,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관측 결과를 제시했다. 레빗의 연구가 현대 우주론 형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셈이다.

현재까지도 세페이드 변광성은 우주 거리 측정의 ‘표준 촛불’로 활용된다. 허블우주망원경과 제임스웹우주망원경 등 최신 관측 장비에서도 동일한 원리가 적용되고 있다. 초기 발견이 기술 발전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활용되는 사례다.

당시 하버드 천문대의 연구 구조도 함께 주목된다. 여성 연구자들은 ‘컴퓨터’로 불리며 계산과 분류 작업을 담당했다. 정규 연구자로서의 권한은 제한됐지만, 데이터 분석을 통해 주요 발견이 축적되는 구조였다. 동료였던 애니 점프 캐넌은 항성 분류 체계를 정립하며 현대 별 분류 기준을 확립했다.

이 같은 환경은 개인 성취와 제도적 제약이 동시에 존재했던 연구 구조를 보여준다. 연구 기회는 제한됐지만 데이터 분석 영역에서는 상대적으로 높은 집중도가 형성됐고, 이는 특정 발견으로 이어졌다. 과학 발전이 개인 능력뿐 아니라 연구 환경과 역할 분배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다.

작품은 이러한 과학사적 맥락을 바탕으로 개인의 삶과 사회 구조를 함께 다룬다. 특정 과학자의 성과를 서사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당시 연구 환경과 성별 분업 구조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구성됐다.

이 희곡은 미국에서 꾸준히 공연된 작품이다. 셰익스피어 이후 가장 많이 공연되는 극작가로 꼽히는 로렌 군더슨의 대표작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과학사를 소재로 한 공연 콘텐츠가 지속적으로 제작되는 흐름과도 맞물린다.

국내에서는 2024년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에서 초연됐다. 공연은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과학과 인간 서사를 결합한 소재가 관객 반응으로 이어졌다는 평가가 나왔다.

레빗의 사례는 제한된 조건에서 도출된 발견이 이후 수십 년에 걸쳐 과학 체계를 바꾸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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