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전시

호추니엔 택한 광주비엔날레…차기 전시 화두는 ‘위기 시대 예술의 변화’

[사진:싱가포르 시각예술가겸 기획자 호추니엔. 제공: 광주비엔날레]

내년 9월 개막하는 제16회 광주비엔날레가 4월 23일 싱가포르 작가 겸 기획자 호추니엔(Ho Tzu Nyen)을 예술감독으로 선임하면서, 2026년 비엔날레 구상이 본격적인 실행 단계에 들어갔다. 지난해 30주년을 맞은 제15회 광주비엔날레가 30개국 72명의 작가를 모았고 개막 한 달 만에 관람객 15만명을 기록한 데 이어, 차기 감독으로 동남아시아 동시대 미술 담론을 대표해온 인물을 택했다는 점에서 이번 인선은 광주비엔날레의 방향성을 보여주는 신호다.

광주비엔날레재단은 이날 호추니엔 선임 사실을 발표하며, 그가 제안한 핵심 축을 ‘예술의 변화 가능성’과 동시대 위기 대응의 동력으로 설명했다. 재단은 기후위기, 팬데믹, 민주주의 후퇴 같은 복합 위기 속에서 예술이 집단적 실천과 연대를 어떻게 다시 조직할 수 있는지를 이번 차기 전시의 주요 문제의식으로 제시했다. 1995년 출범한 광주비엔날레는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의 역사적 기억 위에서 출발한 아시아 최고(最古) 수준의 동시대 미술 비엔날레로 평가받아 왔는데, 이번 인선은 그 역사성과 동시대 아시아 미술 네트워크를 다시 접속하려는 시도로도 해석된다.

호추니엔은 1976년생으로 영화, 영상, 퍼포먼스, 몰입형 설치를 가로지르는 작업을 해온 미디어 아티스트다. 그의 작업은 동남아시아의 역사, 정치, 식민 경험, 신화와 아카이브를 뒤섞어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잘 알려져 있다. 광주비엔날레재단은 그를 “아시아의 근대성을 예리하게 탐구해온 작가”로 소개했고, 아트선재센터는 2024년 서울 전시 소개에서 그의 작업이 서구 중심의 역사 틀 안에서 균질하게 소비돼 온 동남아시아를 다시 복합적인 지역으로 읽어내려는 시도라고 설명했다.

국내 미술계와의 접점도 이미 적지 않다. 그는 2018년 제12회 광주비엔날레 ‘상상된 경계들’에 참여했고, 2021년 제13회 광주비엔날레에는 커미션 작업을 선보였다. 2024년에는 서울 아트선재센터에서 ‘시간과 클라우드’ 전을 열었고, 같은 해 도쿄현대미술관(MOT)에서 개인전 ‘A for Agents’를 개최했다. 싱가포르아트뮤지엄과 아트선재센터가 공동 기획한 순회전은 서울, 도쿄, 뉴욕, 룩셈부르크로 이어졌고, 룩셈부르크 무담(Mudam)은 올해 전시 소개에서 호추니엔을 도쿄현대미술관, 아트선재센터, 해설뮤지엄, 구겐하임 빌바오 등 주요 기관에서 개인전을 연 작가로 정리했다. 이번 광주비엔날레 감독 선임이 한국 미술 현장에 갑자기 등장한 이름이 아니라는 뜻이다.

국제적 평판도 최근 더 가팔라졌다. 영국 미술계 매체 아트리뷰는 2025년 ‘파워 100’에서 호추니엔을 5위에 올렸고, 지난해 72위에서 크게 뛰어올랐다고 밝혔다. 같은 매체는 그의 작업이 아시아의 역사와 시간을 허구와 다큐멘트, 알고리즘과 설치 형식으로 다시 엮어내는 데 강점을 보여 왔다고 평가했다. 싱가포르아트뮤지엄과 무담, 아트바젤이 소개한 최근 전시 설명에서도 그의 핵심 관심사는 선형적 시간이 아니라 반복과 굴절, 귀환으로 이루어진 시간 개념, 그리고 그 시간 속에서 재출현하는 호랑이·구름·유령 같은 상징에 맞춰져 있다.

작가로서의 이력만이 아니라 기획자로서의 이력도 이번 인선의 배경으로 보인다. 그는 2019년 대만 국립대만미술관이 연 제7회 아시아미술비엔날레를 공동 기획했다. 광주비엔날레재단은 당시 전시가 주변부 지역과 가변적인 경계를 비추며 “지속적인 변형과 생성의 비전”을 제시했고 비평적 호응을 얻었다고 평가했다. 이는 호추니엔이 자신의 작업 세계를 전시장 안에 옮겨놓는 수준을 넘어, 지역성과 역사, 경계의 문제를 전시 문법으로 조직할 수 있는 인물이라는 근거로 읽힌다.

이번 선임은 광주비엔날레의 현재 위치와도 맞물린다. 재단은 지난해 제15회 비엔날레를 86일 일정으로 운영했고, 본전시와 파빌리온을 포함해 역대 최대 규모의 국제 교류 구조를 내세웠다. 공식 자료에 따르면 2024년 파빌리온에는 약 30개국 참여가 예고됐고, 재단은 이를 두고 2018년 시작된 파빌리온 체제 이후 최대 규모라고 밝혔다. 여기에 개막 한 달 만에 15만명이 찾았다는 집계는 광주비엔날레가 여전히 지역 축제를 넘어 국제 미술 플랫폼으로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상황에서 동남아시아 서사와 포스트식민 담론, 기술기반 영상 설치에 강한 감독을 세운 것은, 광주비엔날레가 유럽 중심 미술 문법만으로는 다음 단계를 만들기 어렵다고 판단한 결과에 가깝다.

관건은 호추니엔식 문제의식이 광주의 역사성과 어떻게 접속하느냐다. 재단은 그가 광주의 지역 맥락에 깊이 공명하는 인물이라고 설명했고, 호추니엔 본인도 지난 20년간 자신을 움직여온 에너지와 명제들이 민주화의 변화를 이끈 도시 광주와 어떻게 만나는지 확인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차기 비엔날레가 성과를 내려면 감독 개인의 국제적 명성만으로는 부족하다. 광주비엔날레가 축적해온 민주주의·인권·평화의 서사를 동시대 아시아의 기술매체, 지정학, 생태 위기, 알고리즘적 현실과 어떻게 연결할지, 그리고 그것을 관객이 체감할 수 있는 전시 문법으로 풀어낼 수 있을지가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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