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정책

궁·종묘 ‘정부행사 예외’ 삭제 착수…김건희 종묘 논란 이후 제도 손질

[사진: 눈내린 종표. 출처:궁능유적본부 홈페이지]

종묘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 여사가 외부 인사들과 비공개 차담회를 진행한 사건 이후, 궁궐과 종묘 등 문화유산 공간 사용 기준을 둘러싼 제도 개편이 행정 절차에 들어갔다. 국가유산청이 ‘정부 행사 자동 허가’ 예외 조항 삭제 등을 담은 규정 개정안을 행정예고하고 다음달 13일까지 의견 수렴을 진행하면서, 논란으로 드러난 운영 관행이 제도 정비로 이어지는 흐름이다.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는 4월 22일 ‘궁·능 관람 등에 관한 규정’ 일부 개정안을 행정예고했다. 개정안에는 국가유산청장 또는 궁능유적본부장이 주최·주관하는 행사, 국가원수 방문 등 정부 행사에 대해 별도 허가 없이 장소 사용을 가능하도록 간주해 온 조항을 삭제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궁궐과 종묘 내 공간 사용에 동일한 허가 기준을 적용하겠다는 취지다.

현행 규정은 궁궐과 종묘 안에서 촬영이나 장소 사용을 하려면 원칙적으로 본부장의 허가를 받도록 하고 있으나, 제34조에서 정부 행사 등에 대해 예외를 인정해 왔다. 국가유산청은 해당 조항이 적용 과정에서 기준의 일관성을 해칠 수 있다고 보고 삭제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관리·감독 체계도 함께 정비된다. 개정안은 국내외 주요 인사 방문 시 운영 결과를 14일 이내 국가유산 전자행정시스템에 등록하도록 의무화하고, 기존의 등록 예외 규정을 폐지하는 내용을 담았다. 촬영 기준 역시 상업용과 비상업용으로 구분하고, 드론 등 무인기를 활용한 항공 촬영 기준을 명문화하는 방향으로 정리됐다.

논란의 출발점이 된 사건은 지난해 9월 종묘에서 진행된 비공개 차담회였다. 김건희 여사가 외부 인사들과 종묘에서 비공개로 만남을 가진 사실이 알려지면서 문화유산의 사적 사용 여부를 둘러싼 논쟁이 확산됐다. 해당 행사는 일반 관람이 제한된 상태에서 진행된 것으로 전해지며, 공적 공간 운영 기준을 둘러싼 문제 제기로 이어졌다.

이후 2024년 12월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현안 질의에서 궁능유적본부장이 “사적 사용이 맞다”고 인정하면서 논의는 제도 문제로 확대됐다. 국가유산청은 같은 달 공식 사과를 발표했지만, 문화유산 공간 사용 기준과 예외 적용 범위를 둘러싼 관리 체계에 대한 재정비 필요성이 제기돼 왔다.

이번 개정은 단일 사건에 대한 대응을 넘어, 문화유산 운영 구조 전반을 조정하는 성격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문화유산 공간은 법적으로 공공재에 해당하지만, 외교·의전 행사나 정부 일정에 활용되는 과정에서 예외 규정이 폭넓게 적용돼 왔다. 행정 편의와 상징 공간 활용이라는 필요가 공공성 원칙과 충돌해 온 구조가 이번 논란을 통해 드러났다는 평가다.

이동현 한국전통문화대학교 문화재관리학과 교수는 2025년 4월 관련 논의에서 “정부 행사 예외 조항은 의전 수요를 반영해 만들어졌지만, 실제로는 허가 기준을 이중화하는 결과를 낳았다”며 “문화유산은 이용 주체와 관계없이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관리 원칙에 부합한다”고 말했다. 문화재청 자문위원을 지낸 보존 분야 전문가는 “궁궐과 종묘는 국가 상징 공간이면서 동시에 시민이 공유하는 자산이라는 점에서, 활용보다 관리 기준이 우선된다는 원칙이 제도와 현장에서 함께 작동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해외 주요 문화유산 관리 체계도 유사한 방향을 보인다. 영국의 왕실 궁전 관리 기관인 히스토릭 로열 팰리스는 궁전 내 행사와 촬영에 대해 상업 여부와 규모에 따라 사전 승인 절차와 사용 조건을 적용하고 있으며, 프랑스 베르사유궁 역시 촬영과 행사 허가를 별도의 심사 체계 아래 두고 운영한다. 공적 성격이 강한 공간일수록 예외를 두기보다 절차를 명확히 하는 방식이 일반적이라는 평가다.

국가유산청은 행정예고 기간 동안 접수된 의견을 반영해 규정 개정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다만 예외 조항 삭제가 곧바로 운영 방식 변화로 이어질지는 별도의 과제로 남는다. 제도 정비 이후에도 현장 적용 과정에서 기준이 일관되게 유지될 수 있을지, 그리고 문화유산 공간의 공공성 원칙이 관행을 넘어 실질적인 관리 기준으로 작동할 수 있을지가 향후 핵심 쟁점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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