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그룹 멤버 첫 커밍아웃…K팝 산업, 다양성 수용 시험대

[사진저스트비 배인 인스타]

미국 로스앤젤레스 공연장에서 나온 저스트비 배인의 한마디는 파장이 컸다. 배인은 4월 22일 저스트비 월드투어 ‘JUST ODD’의 LA 공연 도중 “나는 LGBTQ 커뮤니티의 일원이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고, 현장에서는 환호와 박수가 이어졌다. 한국 보이그룹의 현역 멤버가 공개적으로 성소수자 정체성을 밝힌 것은 이례적이라는 점때문이다.
배인의 개인 이력도 이 사건의 무게를 키운다. 배인은 2001년 5월 4일생으로, 블루닷엔터테인먼트 소속 6인조 보이그룹 저스트비 멤버다. 소속사 소개에 따르면 저스트비는 음악과 퍼포먼스로 MZ세대의 고민에 공감하는 팀을 표방해왔고, 2021년 ‘JUST BURN’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올해는 ‘JUST ODD’ 투어를 일본과 북미에서 이어가던 중 LA 공연에서 배인의 커밍아웃이 나왔다. 말하자면 이번 사건은 무명 개인의 돌발 발언이 아니라, 이미 글로벌 투어를 도는 현역 아이돌 시스템 내부에서 발생한 공개 선언이었다.
정(正)의 측면에서 보면, 이번 사건은 K팝의 ‘보이지 않던 존재’를 가시화한 순간이다. 한국 연예계에서 공개 커밍아웃의 상징적 출발점으로는 2000년 홍석천이 자주 거론된다. 이후 하리수, 와썹 출신 지애, 트로트 가수 권도운, ‘아이돌학교’ 출신 솜해인 등 사례가 이어졌지만, 한국 보이그룹 현역 멤버의 공개 커밍아웃은 드물다. 올해 3월에는 하이브의 미국 현지화 걸그룹 캣츠아이의 라라가 위버스를 통해 퀴어 정체성을 밝혔고, 4월 배인의 사례까지 이어지며 K팝 내부의 성소수자 가시성은 이전보다 분명히 넓어졌다.
해외 사례와 비교하면 차이는 더 선명해진다. 미국에서는 릴 나스 엑스가 2019년 프라이드 기간 공개적으로 커밍아웃했고, 이후 퀴어 정체성 자체를 음악과 퍼포먼스 전략의 중심에 놓았다. 트로이 시반 역시 공개적으로 게이 정체성을 드러낸 채 팝 시장에서 커리어를 확장해온 사례로 자주 언급된다. 즉 서구 팝 시장에서는 성정체성 공개가 곧바로 퇴출로 이어지기보다, 아티스트 서사와 브랜드 정체성의 일부로 통합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배인의 발언이 해외 공연장에서 나왔다는 사실은, K팝이 이미 그런 글로벌 문화 규범과 직접 맞닿아 있다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반(反)의 측면도 분명하다. 한국 사회의 제도와 여론은 아직 완전히 달라지지 않았다. 퓨리서치센터의 2023년 조사에서 한국의 동성결혼 합법화 찬성은 41%, 반대는 56%였다. 휴먼라이츠워치는 2025년 한국 관련 보고서에서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여전히 제정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입법은 더디지만, 같은 보고서는 2024년 대법원이 동성 파트너의 건강보험 피부양자 지위를 인정하는 판단을 확정한 점을 중요한 진전으로 평가했다. 사회 인식과 제도 변화가 엇갈리는 과도기라는 뜻이다.
산업 내부의 보수성은 더 직접적이다. 한국문화평론가 정덕현은 더코리아타임스 인터뷰에서 K팝 비즈니스 모델이 오랫동안 ‘이상화된 판타지’에 기반해왔고, 기획사들이 팬 대상 매력을 유지하기 위해 연애조차 통제해온 구조라고 짚었다. 그 연장선에서 성적 지향 문제는 오래도록 금기시됐다는 것이다. 다만 그는 K팝이 점점 더 글로벌해지면서 국제적 가치와 한국의 전통적 규범 사이 긴장이 커지고 있고, 이제는 판타지 중심 마케팅에서 현실 기반 전략으로 이동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이 지점이 이번 사건의 핵심이다. 배인의 커밍아웃은 개인 용기의 서사이면서 동시에, K팝 산업이 더는 예전 방식만으로는 글로벌 팬덤과 호흡하기 어렵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합(合)의 지점은 그래서 ‘찬반’의 단순 대립이 아니다. 오히려 K팝이 이제 어느 시장을 기준으로 자신을 설명할 것인가의 문제에 가깝다. LA 공연장의 환호, 캣츠아이 라라 사례, 윤여정이 해외 인터뷰에서 아들의 동성 결혼을 자연스럽게 언급한 뒤 국내에서도 지지 반응이 이어진 일은 분명 변화의 징후다. 더코리아타임스 인터뷰에서 성소수자 인권단체 활동가 이호림은 최근 사례들에서 환영과 지지가 많이 보인다고 평가했고, 배인 소속사의 “개인적인 사안”이라는 반응 역시 과잉 해석이나 거리두기보다 절제된 대응으로 읽힌다고 볼수있다. 사회 시각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말하긴 이르지만, 최소한 ‘말할 수 없는 구조’에서 ‘말해도 되는 구조’로 조금씩 이동하고 있다는 점은 확인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