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대중문화

흑인 배우 늘었지만…할리우드 ‘주연 구조’는 여전히 좁다

[사진:신시아 에리보. 애플TV플러스 제공]

애플TV플러스 다큐멘터리 ‘콜시트 넘버 원(Number One on the Call Sheet)’은 할리우드에서 활동해온 흑인 배우들의 경험을 통해 산업 내부의 변화를 짚는다. 배우 덴절 워싱턴, 할리 베리, 윌 스미스 등 주요 인물의 증언을 따라가다 보면, 최근 확대된 대표성과 여전히 남아 있는 구조적 장벽이 동시에 드러난다.

할리우드는 과거에 비해 다양한 인종의 배우를 전면에 내세우는 흐름을 강화해왔다. 비올라 데이비스, 이드리스 엘바 등은 주요 작품에서 중심 역할을 맡으며 글로벌 시장에서도 존재감을 확대했다. OTT 플랫폼 확산 이후 콘텐츠 공급이 늘어나면서 캐스팅 다양성 요구도 함께 커진 결과로 해석된다.

그러나 성과의 확대가 곧 구조 변화로 이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시드니 포이티어가 1964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은 이후, 두 번째 흑인 남우주연상 수상자인 덴절 워싱턴이 등장하기까지 30년 이상이 걸렸다. 수상 사례 자체가 드문 것은 흑인 배우의 주연 기회가 제한적으로 제공돼 왔음을 보여주는 단면으로 평가된다.

흑인 여성 배우의 경우 구조적 제약은 더욱 두드러진다. 할리 베리는 2002년 ‘몬스터 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지만, 이후 동일 부문에서 수상자는 나오지 않았다. 그는 당시 수상 소감에서 “이 순간은 나 혼자가 아닌 더 많은 여성들을 위한 것”이라고 언급하며 대표성의 한계를 짚었다.

이러한 흐름은 최근 사례에서도 이어진다. 배우 신시아 에리보는 영화 ‘해리엇’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지만 수상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에리보는 이후 인터뷰에서 흑인 여성 배우가 맡을 수 있는 역할의 폭이 여전히 제한적이라는 점을 여러 차례 언급한 바 있다. 이는 단순한 수상 여부를 넘어, 역할 기회 자체가 구조적으로 제한돼 왔다는 문제를 보여주는 사례로 해석된다.

할리우드가 흑인 주연 영화를 기피해온 배경에는 시장 논리가 자리해 왔다. 흑인 배우 중심 작품은 해외 시장에서 흥행이 어렵다는 인식이 오랫동안 유지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에디 머피가 ‘비버리힐스 캅’ 시리즈로 글로벌 흥행에 성공하면서 이러한 인식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캐스팅 구조 자체는 빠르게 바뀌지 않았다. 흑인 배우들은 오랜 기간 특정 역할에 제한되거나, 주연보다 조연 중심으로 배치되는 경향을 겪어왔다. 이는 단순한 기회 부족을 넘어 산업 내 의사결정 구조와 연결된 문제로 분석된다.

실제 데이터에서도 이러한 간극은 확인된다. UCLA Hollywood Diversity Report가 2024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주요 영화에서 유색인 주연 비율은 증가했지만, 제작·투자 등 의사결정 권한을 가진 상위 구조에서는 여전히 백인 비중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캐스팅 단계의 다양성 확대가 산업 전반의 권력 구조 변화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현장에서도 유사한 지적이 이어진다. 미국 배우노조 SAG-AFTRA는 2023년 입장에서 “화면에 등장하는 다양성은 일정 부분 진전됐지만, 프로젝트 기획과 투자 단계에서는 여전히 불균형이 존재한다”고 밝혔다.

이 같은 구조 속에서 흑인 배우들의 성장은 개인의 성취를 넘어 축적된 변화의 결과로 이어져 왔다. 선배 배우들의 성과가 후속 세대의 기회를 넓히는 방식으로 작동해왔지만, 산업의 핵심 의사결정 구조는 여전히 제한적으로 유지되고 있다는 평가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