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업

영화와 드라마의 경계 붕괴…K콘텐츠 흥행 배경에 ‘제작 시스템 재편’

사진:카카오엔터가 바람픽쳐스, 영화사월광과 공동제작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악연’의 한 장면으로 ‘사채남'(이희준 분)과 길용. 사진 제공=넷플릭스

영화와 드라마의 경계가 무너진 자리에 새로운 제작 방식이 자리 잡고 있다.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 이후 ‘무빙’, ‘최악의 악’, ‘악연’까지 글로벌 성과를 작품들은 공통적으로 영화 제작사와 드라마 제작사가 결합한 구조에서 만들어졌다. 최근 K콘텐츠의 연속된 흥행은 개별 작품의 성과라기보다 제작 시스템이 재편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변화의 출발점은 ‘오징어 게임’이었다. 영화 연출 경험을 바탕으로 장르 구성과 대규모 제작비가 결합된 작품은 기존 드라마 문법을 넘어서는 완성도를 구현하며 글로벌 시장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이후 디즈니+ ‘무빙’, ‘최악의 악’, 넷플릭스 ‘악연’ 후속 작품들도 영화 제작사와 드라마 제작사가 공동으로 참여하는 구조를 채택하며 유사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성공을 만들어내는 방식 자체가 공유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제작 구조의 변화는 개별 프로젝트를 넘어 기업 전략으로 확장되고 있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영화 제작사와 드라마 제작사를 동시에 확보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재편하며 내부 공동 제작 체계를 구축했다. 영화사 월광, 사나이픽처스, 영화사 영화 제작 라인과 바람픽쳐스 드라마 제작 라인을 동시에 운영하면서 콘텐츠 제작 역량을 통합하는 구조다. 이는 과거 외주 중심 협업과 달리, 기획 단계부터 제작·유통까지를 하나의 체계 안에서 운영하는 방식에 가깝다.

이러한 통합 구조는 콘텐츠의 성격 자체를 변화시키고 있다. 영화 제작사는 장르적 완성도와 시각적 밀도를 강화하고, 드라마 제작사는 서사 구조와 캐릭터 축적을 담당하며 각각의 강점을 결합한다. 결과 편의 콘텐츠 안에서 영화 수준의 영상미와 드라마 특유의 장기 서사가 동시에 구현된다. 이는 글로벌 OTT 플랫폼이 요구하는 ‘완성도 높은 장편 콘텐츠’ 기준에 부합하는 형태로 평가된다.

플랫폼 환경 역시 이러한 변화를 가속하는 핵심 변수다. 넷플릭스와 디즈니+ 글로벌 OTT국가 단위가 아닌 세계 시청자를 기준으로 콘텐츠를 평가한다. 과정에서 제작 규모와 완성도에 대한 기준이 높아졌고, 단일 제작사 중심 구조로는 이를 충족하기 어려워졌다. 결과적으로 다양한 제작 주체가 결합하는 복합 제작 구조가 표준으로 자리 잡게 됐다.

데이터에서도 이러한 흐름은 확인된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2024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콘텐츠 산업 수출액은 133달러 규모로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으며, 가운데 방송·영상 콘텐츠가 주요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OTT통한 유통 비중이 확대되면서 글로벌 동시 공개를 전제로 제작 방식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이는 콘텐츠가 기획 단계부터 국내가 아닌 글로벌 시장을 목표로 제작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산업 환경의 변화도 구조 재편을 촉진했다. 코로나19 이후 영화 산업은 극장 관객 감소로 타격을 받았고, 드라마 제작 역시 제작비 상승과 투자 위축이라는 이중 압박에 직면했다. 개별 제작사가 모든 리스크를 감당하기 어려운 환경에서, 제작사 협업은 비용 분산과 안정성 확보를 위한 현실적 선택으로 자리 잡았다.

현장에서도 이러한 인식은 공유된다. 조성진 중앙홀딩스 커뮤니케이션담당 상무는 “영화와 드라마의 경계가 흐려진 데다 업계 불황이 이어지면서 제작사들이 다양한 협업 방식을 통해 시너지를 만들어내고 있다”설명했다. 이는 협업이 선택이 아니라 생존 전략으로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같은 변화는 단순한 협업 확대를 넘어 산업 구조 재편으로 이어지고 있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와 같은 기업은 영화와 드라마 제작사를 동시에 보유한 ‘멀티 스튜디오’ 형태로 진화하고 있으며, 플랫폼과 제작을 동시에 통제하는 수직 통합 구조도 강화되고 있다. 콘텐츠 제작이 독립된 과정이 아니라 자본과 유통이 결합된 시스템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해외에서도 유사한 흐름이 나타난다. 넷플릭스는 자체 제작 스튜디오를 확대하며 제작과 유통을 동시에 통제하는 구조를 구축했고, 디즈니 역시 영화와 드라마를 하나의 IP 체계로 묶어 운영하고 있다. 콘텐츠를 개별 작품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확장 가능한 자산으로 관리하는 전략이다. 이는 제작 방식뿐 아니라 콘텐츠 소비 방식까지 변화시키고 있다.

결국 K드라마의 글로벌 흥행은 특정 작품의 경쟁력만으로 설명되기 어렵다. 영화와 드라마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제작 방식이 재편됐고, 자본과 플랫폼이 결합된 새로운 생산 구조가 성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개별 콘텐츠의 완성도는 여전히 중요하지만,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시스템이 변수로 작동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영화와 드라마라는 구분은 점점 의미를 잃고 있다. 대신 하나의 콘텐츠를 중심으로 다양한 제작 역량과 자본, 플랫폼이 결합하는 구조가 자리 잡고 있다. K콘텐츠의 경쟁력은 이상 작품 단위에 머물지 않는다. 이를 지속적으로 생산하고 확장할 있는 제작 시스템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점이 산업 전반에서 확인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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