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여성 의병은 기록되지 않았나…윤희순이 드러낸 ‘지워진 전투 주체’

[사진:윤희순의병장. 출처:공훈전자사료관]

조선 말기 의병 활동을 이끈 윤희순은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의병으로 기록된다. 그러나 그의 이름과 활동은 남성 중심의 의병 서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왔다. 여성은 항일운동의 주변이 아니라 전투와 조직의 주체였지만, 그 존재는 역사 속에서 충분히 드러나지 않았다.
1895년 명성황후 시해 이후 강원 춘천 일대에서 활동한 윤희순은 여성들을 규합해 의병 조직을 이끌었다. 군자금 모집과 무기 제작, 첩보 활동까지 수행하며 여성 의병을 조직적으로 운영했다. 일부는 남장을 하고 정보 수집에 나섰고, 집단 훈련을 진행한 기록도 남아 있다.

윤희순은 특히 한글 의병가를 만들어 여성들의 참여를 확산시켰다. ‘왜놈 앞잡이들아’와 같은 직설적인 표현은 여성이 단순한 지원자가 아니라 행동 주체로 나섰음을 보여준다. 그의 가사집에는 “안사람과 노소가 함께 훈련하고 화약을 만들었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해당 자료는 2019년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윤희순의 활동은 단일 인물의 특수 사례에 머물지 않는다. 1919년 3·1운동 당시 유관순은 만세운동 조직과 확산 과정에 참여했고, 1920~30년대 만주에서는 남자현이 무장 투쟁과 의거를 시도했다. 1930년대 중국 관내 지역에서 활동한 박차정은 의열단과 조선의용대에 참여해 군사 조직에 관여했으며, 1920년대 초 김마리아는 애국부인회를 조직해 여성 독립운동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이처럼 여성 독립운동은 시기별로 조직, 선전, 무장 투쟁 등 다양한 형태로 이어졌지만, 이후 역사 서술에서는 제한적으로 다뤄졌다. 전문가들은 그 배경에 언어와 기록 구조가 작용했다고 본다. 정진성 서울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2021년 여성사 연구 강연에서 “근대 이전 기록은 남성 중심으로 생산되면서 여성의 공적 활동이 사적 영역으로 축소되는 경향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의병 서사 역시 전투 중심으로 구성되면서 여성의 역할이 부차적으로 처리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박찬승 한양대 사학과 교수는 2020년 근대사 연구에서 “군수 지원과 조직 활동은 전투 못지않은 핵심 기능이지만 기존 서술에서는 낮게 평가되는 경향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여성 의병을 둘러싼 언어 또한 이러한 구조를 반영한다는 해석이다. ‘안사람’, ‘아낙’과 같은 호칭은 여성의 활동을 가정 내부 역할로 한정하는 효과를 낳았고, 전투와 조직 활동까지 수행한 주체를 보이지 않게 만드는 방식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윤희순의 사례가 ‘최초’의 의미를 넘어선다고 본다. 김경일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2022년 독립운동사 세미나에서 “여성 의병은 존재했지만 기록과 서사에서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며 “윤희순 사례는 기존 역사 인식의 공백을 보여주는 단서”라고 말했다.
최초의 여성 의병으로 기록된 윤희순. 그의 존재는 예외적인 영웅 서사가 아니라, 기록과 서사에서 충분히 드러나지 않았던 여성 독립운동의 출발점이라는 점에서 다시 읽힐 필요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