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이 만든 집단 서사…민주주의 제도를 넘어 문화적 현상으로 작동
윤석열 대통령 파면으로 이어진 약 4개월의 정치 과정은 법적 제도적 사건을 넘어 하나의 집단적 경험으로 기록되고 있다. 광장에 모인 시민과 이를 지켜본 대중의 감정이 결합되면서 민주주의가 제도를 넘어 문화적 현상으로 작동했다.
한국 사회에서 민주주의는 이미 제도적 틀을 넘어서는 방식으로 작동해 온 경험이 있다. 2017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당시 전국적으로 약 1000만 명 이상의 시민이 광장에 참여하며 정치 과정에 직접 개입했다는 연구가 발표된 바 있다. 이러한 대규모 참여는 기존 대의민주주의를 보완하는 ‘참여 민주주의’의 사례로 평가됐다.
이후 촛불집회는 하나의 정치 행위를 넘어 반복 가능한 사회적 양식으로 자리 잡았다. 2018년 한국정치연구 논문에서 장우영 대구가톨릭대 교수는 촛불집회를 “비관습적 정치참여를 일상화한 사례”로 분석하며, 시민 참여가 제도 밖에서 제도를 통제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고 설명했다.
이번 탄핵 과정에서도 유사한 구조가 반복됐다. 국회 표결, 헌법재판소 심리 등 제도적 절차가 중심에 있었지만, 그 과정 전반에는 광장 집회와 시민 행동, 그리고 이를 둘러싼 감정의 흐름이 함께 작동했다. 정치 사건이 아니라 ‘참여 경험’으로 소비되는 구조가 형성된 것이다.
문화적 관점에서 보면 이러한 현상은 ‘집단 서사’의 형성과도 연결된다. 특정 사건이 시작과 전개, 갈등, 결말을 갖춘 이야기 구조로 인식되면서 대중은 이를 하나의 드라마처럼 경험한다. 실제로 탄핵 과정은 계엄령 논란, 국회 표결, 헌재 심리, 선고라는 단계적 흐름을 거치며 전개됐고, 이는 서사적 구조를 갖춘 사건으로 받아들여졌다.

학계에서는 이러한 흐름을 민주주의의 문화적 확장으로 해석한다.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2017년 연구에서 촛불집회를 “정치적 요구를 넘어 예술적·문화적 행위가 결합된 광장의 문화역동”으로 설명하며, 민주주의가 감정과 표현을 통해 구현된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광장은 정치 공간을 넘어공연과 상징, 집단 감정이 결합된 문화적 공간으로 기능해 왔다. 응원봉, 노래, 퍼포먼스 등 다양한 표현 방식이 결합되며 참여 자체가 하나의 문화 경험으로 확장됐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감정’이다. 기존 정치 분석이 제도와 권력 구조에 초점을 맞췄다면, 최근 연구들은 집단 감정이 정치 참여를 촉발하는 핵심 요소라고 본다. 분노와 불안, 연대와 희망이 결합되며 참여를 이끌고, 이러한 감정이 다시 사회적 행동으로 이어지는 구조다.
또한 디지털 환경 역시 이러한 변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생중계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정치 과정이 실시간으로 공유되면서 시민들은 사건을 ‘관찰’하는 동시에 ‘참여’하는 이중적 위치에 놓인다. 정치가 경험이자 콘텐츠로 소비되는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 같은 현상은 한국만의 특수한 사례로 보기도 어렵다. 다만 한국의 경우 시민 참여가 대규모로 조직되고 반복되면서 민주주의가 하나의 문화적 패턴으로 자리 잡았다는 점에서 차별성이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서울대 사회학과 송호근 명예교수는 2023년 민주주의 관련 강연에서 “민주주의는 제도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며 “시민의 참여와 집단적 감정, 그리고 공공적 경험이 결합될 때 비로소 살아 움직이는 체제가 된다”고 설명한 바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이번 탄핵 과정은 법적 정치적 결론을 넘어, 시민 참여와 집단 감정이 결합된 하나의 사회적 경험으로 기록될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사진:여의도 탄핵집회에 참가한 시민들 24년 12월 14일 출처:파르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