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것 너머를 찍다…이정진, PKM갤러리서 ‘언씬/씽’으로 귀환

사진가 이정진이 서울 PKM갤러리에서 개인전 ‘언씬/씽(Unseen/Thing)’을 연다. 전시는 4월 15일부터 5월 23일까지 이어지며, 2020년 ‘보이스(VOICE)’ 이후 6년 만의 PKM갤러리 개인전이다. 이번 전시는 아이슬란드에서 촬영한 최신작 ‘언씬’(2024)과 2003~2007년 작업한 ‘씽’ 연작을 함께 선보이며, 서로 다른 시기의 작업을 통해 작가가 오래 탐구해 온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의 감각”을 한자리에서 보여준다.
전시의 중심에는 사진을 기록이 아닌 사유의 매체로 다뤄온 이정진의 작업 태도가 있다. PKM갤러리는 이정진의 사진을 단순히 대상을 남기는 수단이 아니라, 대상과 작가 자신이 맞닿는 찰나를 보여주는 하나의 “창”에 가깝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작가는 전통 한지에 붓으로 감광 유제를 바른 뒤 인화하는 독자적 방식을 발전시켜 왔고, 이 수공적 과정은 화면의 깊이와 물성을 함께 드러내며 작품을 이미지이자 오브제로 만든다.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역시 이정진 작업의 특징으로 한지 위 인화가 만들어내는 섬세한 질감과 물성을 짚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국내 처음 소개되는 ‘언씬’은 2024년 아이슬란드에서 제작한 연작이다. 런던 허슬리-팔러(Huxley-Parlour)의 전시 소개에 따르면 이 시리즈는 아이슬란드의 광막하고 원초적인 풍경을 바탕으로 하되, 풍경의 외형을 충실히 재현하는 대신 그 장소와 마주한 작가의 감정적·내면적 반응을 화면으로 옮긴 작업이다. 직설적인 재현을 비껴 가며 풍경은 비재현적 형태와 추상적 표면으로 녹아들고, 화면은 서정성과 기하학적 긴장 사이를 오간다. PKM갤러리 역시 이 연작이 아이슬란드의 격렬하고 원초적인 자연을 담아내며, 관람자를 “보이는 것과 그 너머 심연의 세계”로 이끈다고 소개한다.
‘씽’ 시리즈는 그와는 반대로 작가 곁의 익숙한 사물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이 작업 또한 단순한 정물 사진과는 거리가 있다. PKM갤러리는 이 연작에서 작가가 사물의 부수적인 요소를 덜어내고 형상의 일부를 확대함으로써 대상의 본질에 더 가까이 다가간다고 설명한다. 일상의 사물이 용도를 설명하는 대상이 아니라, 침묵 속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독립된 실체로 다시 태어나는 셈이다. 최신작 ‘언씬’이 광대한 자연을 통해 비가시의 감각을 더듬는다면, ‘씽’은 손 닿는 사물 안에서 같은 질문을 밀도 높게 반복한다.
두 연작 사이에는 약 20년의 시간차가 있지만, 전시는 오히려 그 간극보다 지속성을 부각한다. 자연과 사물, 원경과 근경, 풍경과 정물이라는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정진의 시선은 늘 대상의 표면 아래 잠든 기운과 본질을 향해 있었다는 점에서다. 그래서 ‘언씬/씽’은 신작 소개에 그치지 않고, 작가가 오랜 시간 구축해 온 사진 미학의 축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자리로 읽힌다.
이정진의 작업 세계는 국제 미술계에서도 꾸준히 조명돼 왔다. PKM갤러리에 따르면 그는 대학에서 도예를 전공한 뒤 다큐멘터리 사진으로 사진예술에 입문했고, 1988년 미국으로 건너간 뒤 ‘미국의 사막’ 시리즈를 계기로 현재의 독자적 인화 방식을 발전시켰다. 2010~2011년에는 프레데릭 브레너가 기획한 ‘디스 플레이스(This Place)’ 프로젝트에 아시아 작가로 참여해 국제적 주목을 받았고, 2016년 스위스 포토뮤지엄 빈터투어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연 데 이어 그 순회전이 2018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으로 이어졌다.
작품 소장처 역시 작가의 위상을 보여준다. PKM갤러리와 작가 소개 자료에 따르면 이정진의 작품은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 휘트니미술관, 로스앤젤레스 카운티미술관, 파리 국립현대미술기금(FNAC) 등 세계 주요 기관에 소장돼 있다. 메트 소장품 페이지에서는 이정진을 1961년생 한국 작가로 소개하며, 전통 서예와 도예 훈련이 사진의 수공적 질감과 결합한다고 설명한다.
전시 기간 중인 4월 25일에는 작가가 직접 방한해 ‘작가와의 대화’도 진행한다. PKM갤러리는 이번 전시를 위해 작가가 서울을 찾으며, 관람객이 작품 세계를 보다 깊게 만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된다고 밝혔다. 이번 ‘언씬/씽’은 새로운 연작의 국내 첫 공개이자, 이정진이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 어떻게 내면의 감각과 세계의 본질을 오래 붙들어 왔는지를 확인하는 자리라는 점에서 더 주목된다.

